▣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지난호에 소개한 <혁명과 웃음>을 읽으면서 1961년 1월1일치 <동아일보>에 2000년의 우리 사회를 예측한 기사가 실렸다는 사실을 알았다. 거금 100원을 투자해 <동아일보> 사이트에서 당일 신문의 PDF판을 샀다. 제목인즉 ‘21세기 사회 만태-앞으로 우리는 이렇게 살 수 있다’이다. 시대가 시대인지라 전문가 멘트 하나 없이 기자의 상상력으로 시나리오를 전개해나간다. 일단 한번 읽어보자.
“서기 2000년 정초, 즉 지금으로부터 40년 후가 되는 21세기 초. 서울 시민은 여전히 황인종이로되 성형수술이 발달하여 백인 행세쯤은 쉬울 것이고, 인공위성과 원자력의 발전으로 세계는 무척 좁아졌다.” 백인 행세가 쉽진 않고 좀 비싸다는 점을 빼면 이 무슨 놀라운 예측인가. “1주 5일의 출근. 실업이란 옛날 책에서나 찾을 수 있다.” 주5일제가 도래했으나, 실업은 요즘 책에서도 차고 넘친다. “자가용을 타는데, 소형차가 유행이다.” 물론 놀라운 예측이다. 이 문장 뒤의 적황녹청백의 아름다운 포장도로에 누워서도 차가 저절로 달린다느니 하는 ‘컬트적’ 예측은 생략한다. “커피도 마음대로 마실 수 있고 담배는 몸에 해롭지 않다.” 마음대로 마시고 피울 수 있으나, 몸에 해롭지 않다고 주장하는 쪽은 담배 회사뿐이다.
“살기 좋은 세상이다. 자동화가 극단으로 발달되어 노동시간이 더욱 짧아졌다.” 맞는 말이다. 저 기계들을 다 때려부수고 싶을 만큼. “인구 문제는 증가된 평균연령, 사망률의 감소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산아제한으로 간단히 해결되었다.” 딩동댕! 너무 간단히 해결돼서 출산율 최저국가가 될 판이다. “연탄값과 김장 걱정 없어진 지 오래다. 시민의 수입이 급격히 증가되기도 했지만 옛날과는 생활방식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때는 1961년, 서민들의 가장 큰 고통이 연탄값과 김장 걱정이다. 이 굴레에서 벗어나길 얼마나 바랐을까. “미혼남녀가 합격배우자 선택의 희망사항을 상세히 카드에 적는다. 전자제품에 넣고 스위치를 누르면 ‘아무 데 사는 누구’라고 가장 알맞은 배우자를 골라준다.” 기자는 중매업체의 번성을 예견하고 있나 보다.
기사를 읽고 난 뒤 나는 정말, 정말로 비탄에 빠졌다. ‘이렇게 살 수 있다’고 외친 기자의 예측이 대부분 맞았는데도, 우리는 왜 살기 힘들다고 이 난리부르스들인가. 젠장. 우리가 여전히 불행하다면 그 40년 동안 어떤 진보를 이룩했단 말인가. 신문 하단에 미래 예측 만화를 그린 ‘김이구’는 소설가 김승옥이다. 만화 속에서 2000년의 우리들은 삼삼오오 연애질만 하고 애인수집 경쟁대회가 열린다. 이 예측도 맞았으나… 우린 여전히 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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