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수현 기자 groove@hani.co.kr
스무 살 즈음부터였을까. 무언가에 꽁해질 때면 종종 ‘우주’를 떠올리며 마음을 안정시켰다. 쌍둥이자리를 꿰맞추고 쿼크와 퀘이사를 운운하며 으슥거렸던 어린 시절의 천문반 활동이 남긴 잔해이다. 과학에 볼록렌즈를 갖다대면 천문학이 탈 거라 생각했던 시절은 사라지고 심신의 노곤함을 풀어주는 ‘우주적 주술’만이 내게 남아 있다.
이 주술은 꼬리를 물면서 우주의 크기를 짐작해보는 작업이다. 육체가 인식할 수 있는 최소한의 너비에서 시작한다. 터덜터덜 걸으며 귀가하는 밤길, 우리 동네의 크기를 짐작해본다. 그리고 동네에서 회사가 있는 공덕동까지 버스로 50분이 걸린다는 사실로 서울의 면적을 상상해본다. 서울에서 여수까진 기차로 7시간이 걸리니 한국은 그만하고, 한국에서 터키까지 비행기로 10시간이라 지구는 고만한 거다. 태양과 지구 사이의 거리는 빛으로 8분20초. 시간과 공간이 결합된다. 머릿속 로켓이 태양과 명왕성 사이를 광속으로 왕복하고 지구로 돌아오면 ‘태양계가 참 크다’는 감격적인 사실과 마주친다. ‘수금지화목토천해명’을 보여준 반(半)현실적인 교과서 그림도 여전히 함께한다.
하지만 그 다음 단계부터 감당하기 어려워진다. 주술의 묘미는 여기에 있다. 태양계 같은 게 수백억 개 이상 모여야 ‘우리 은하’가 된단다. 짐작 불가능. 우리 은하의 지름은 10만 광년이고 태양계는 중심에서 3만 광년 떨어진 곳에 위치한단다. 그런데 우리 은하 바깥엔 안드로메다니 마젤란 같은 다른 은하계가 있고, 이들이 밀집되면 은하단, 또 밀집되면 초은하단…. 으악. 이즈음에서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다’고 선언하고, 우주 명상법은 ‘빅뱅’으로 끝난다. 어제와 오늘, 내일을 무의미하게 만들고 나의 이름과 내가 아는 이들의 이름을 모두 삼켜버리는 우주의 감당 못할 크기. 무력한 고독감은 주술이 주는 선물이다. 그리고 난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고 말하거나 ‘케 세라 세라’(될 대로 되라지)라고 중얼거리면서 일상의 괴로움을 조금씩 덜어낸다. 지구가 먼지 같은데 먼지보다 가벼운 일로 괴로워할 필요가 있느냐라고.
하지만 우주의 절대적 무한성이 주는 고독감은 의외로 공포스럽다. 그래서 요즘은 우주를 상상하는 일이 줄었고, 대신 ‘나무’를 쳐다보며 길을 걷는다. 이상적인 우주론을 단선적으로 전개하기보단 땅에 뿌리박은 나무와 얽힌 추억으로 나의 오늘을 위로하는 게 더 따뜻하고 보편적인 방식인 것 같다. 나, 정상인이 됐는가? 그러나 우주를 완전히 버릴 수 없다. 세상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걸 정직하게 증명해주는 모순된 존재가 아니던가. 10만 광년 떨어진 별과 100만 광년 떨어진 별을 동시에 바라보며 두 개의 과거를 목격하는 나는 굴절된 ‘현재’에 살고 있다. 또한 낮에는 8분20초 전에 생성된 태양빛에 의지하여 ‘현재’를 일궈내니, 밤과 낮, 이 두가지 외에 가진 게 없는 지구에 절대적인 존재란 있을 수 없지 않을까. 이런 궤변이 주는 또 다른 위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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