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수현 기자 groove@hani.co.kr
서울 용산CGV극장에 가려면 쇼핑몰의 외부 계단을 밟고 6층으로 올라가야 한다. 이 계단은 건물의 규모와 용도에 비해 비교적 높은 단 높이와 짧은 단 너비를 가지고 있어 만만한 대상이 아니다. 숨차는 경험을 몇 번 한 나는 1층 구석에 숨겨진 엘리베이터를 이용한다. 건축가들이 말하는 ‘천민 자본주의’가 이런 건가. 손가락 한마디만큼의 길이가 아쉽다. ‘광장’이 되지 못한 계단은 ‘벼랑’이 됐고 ‘내시’를 보지 못한 사람들은 용산에서 거대한 괴물을 만난다.
계단의 공공성을 논하기 전에 상인의 셈법을 꺼내는 게 현명할 터. 장사하려는 건물이 이렇게 사람을 내쳐도 되는지 의문스러웠다. 아니나 다를까 2004년 10월에 문을 연 이 쇼핑몰은 2005년 8월 ‘위기의 쇼핑몰, 백화점처럼 바뀐다’라는 기사의 주인공이 됐다. “최동주 현대역사 사장은 ‘상호를 스페이스9에서 아이파크몰로 바꾸고 부동산개발 주체인 현대산업개발의 현대역사가 매장을 직접 운영하는 서구식 쇼핑몰로 전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매일경제> 2005년 8월25일) 계단 면적을 최소화해 분양·임대 면적을 최대한 확보하려는 이윤 추구 정신의 과속이 ‘계단의 폐단’을 낳은 데에 매출 감소의 원인이 일부 있지 않을까.
그런데 현대역사라는 말이 암시하듯, 이곳은 단순한 쇼핑몰이 아니다. 용산 민자역사다. 고속철도 이용객이 들락날락하는 공공장소로, 대한민국을 유통과 물류의 공식으로 이해할 때 필요한 상수의 하나다. 그러나 민간자본의 유치를 허락한 민자역사는 개발업자에게 숨가쁜 계단을 설계해 자본을 회수할 권리를 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의 수도에 자리한 고속철도 역사의 계단에 미감은 없다. 볼썽사나운 공공 공간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보행 도로의 보폭, 좌석의 간격, 화장실의 너비. 2cm 부족해 몸을 옴짝달싹 못하게 만드는 곳은 널렸다. 신체를 구속하는 디자인은 복지 인프라의 허상을 보여준다. 그리고 너비는 계급성을 지닌다. 그래서 가끔 난 윤택한 공공 공간을 생산하는 일이 양극화 해법의 한 가지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보지만 2cm를 확보하는 이 일은 관료들의 생색내기에 부적합하므로 실현 가능성이 낮다. 20cm도 아니고 딱 2cm이면 되는데. 20cm는 공간을 망가뜨려 다시 몸을 불편하게 만드는 너비다. 그저 효용과 이윤에 2cm 찌그러지지 않으면 될 뿐이다. ‘세계공공공간기구가 권장하는 표준 너비’와의 오차를 합산한 ‘공공공간 너비지수’를 만들자고 1인시위라도 할까. ‘2cm’가 해결돼야 돈 발라 시립회관 짓지 말고 달동네 쌈지공원이나 만들어 빨래와 아이들에게 봄볕을 주자는 얘기를 시작할 수 있을 텐데. 봄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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