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인터넷의 댓글놀이 중 ‘기사 안 읽고 여기 온 사람 손 들기’가 있다. 기사가 긴 경우에 이런 말을 꺼내는 사람들이 많다. 많은 이들이 이 말에 동조해 “저요, 저요” 하고 손을 든다. 댓글에 나타난 반응을 본 뒤 그에 대해 몇 마디 쓰고 나서 “그런데 이 기사 내용이 뭐래요” 하고 묻는 경우도 자주 본다. “제목에 낚였다”는 말도 나온다. 제목에 유명인 등이 거론돼 클릭했는데 기사가 (단지) ‘길다’. 인터넷 순위에 오른 기사도 궁금증을 만족하고 싶은 욕구가 강하다. 스크롤을 내리며 기사를 읽어내리는 것보다 댓글로 바로 건너뛰어서 ‘사람들이 왜 이리 많이 보았지’ ‘뭐가 그리 재밌어’를 살핀다. 슬기롭고 명민하고 영악하다.
학력고사 세대인 내가 수능 시험지를 보게 되었을 때 ‘뜨악’했다. 시험지를 반으로 나눈 단을 가득 채운, 혹은 거의 두 단에 육박하는 긴 지문. 시험 시간 안에 이걸 어찌 다 읽어 싶었다. 기우 그대로 지문을 시험 시간에 읽고 있다가는 낭패 난다. 선생님들은 모두 “문제를 보고 지문으로 돌아가 찾으라(‘읽어라’가 아니다)”고 충고한다. 문제가 처음부터 끝까지 읽기를 요구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이럴진대 지문을 먼저 읽는 건 바보다. 문제를 먼저 읽는 건 편법이 아니라 정공법이다.
‘난자 의혹 문제’를 지적한 〈PD수첩〉(11월22일 방송)은 지난 한 주간 네티즌 총공세에 시달렸다. 문제의 〈PD수첩〉은 프로그램 초반 이 방송을 내보내야 하나 하는 고심을 거듭했으며 그걸 알아보기 위해 설문조사도 했다. 고심의 일단을 비친 뒤 “부디 끝까지 봐달라”는 당부도 한다. 제작진은 자신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대로 〈PD수첩〉은 자극적이지만 전개는 깔끔하다. 네티즌이 총공세를 펼치는 데에도 내용이 허위라는 비판은 없다. 비판의 내용은 제작 의도가 무엇인가, 꼭 방송했어야 하나, 니 땜에 모든 파국이 벌어졌으니 책임져라, 이다. 그리고… 여기서도 ‘보지 않고 게시글 올리기 놀이’를 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안 봐도 뻔해 아예 보지 않았다. 의도가 불순해 보고 싶지 않다.” 실제로 이런 사람은 의외로 많을 것 같다. 문제의 〈PD수첩〉 시청률은 아주 낮았다. 평균 7.3%라는데 22일 방영분은 4.8%였다고 한다. 그러니 문제의 〈PD수첩〉을 토·일요일 낮에 재방송하는 건 어떤가. 그리고 또 다른 폭로가 있을 2탄이 있다는데, 그건 밤늦게 하지 말고 일일 연속극이나 9시 뉴스에 붙여서 하는 건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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