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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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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온난화 사조직

등록 2005-11-18 00:00 수정 2020-05-03 04:24

▣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지구온난화를 걱정하는 모임’(가칭)이라는 단체가 얼마 전 비밀리에 결성됐다. 결성식에 온 사람들은 이것저것 근심이 많은 사람들이었다. 나이가 많은 것 같지 않은데 모두 미간에 주름이 깊게 잡혀 있었다. 회의가 끝날 때쯤 정한 심벌이 미간의 주름을 상징하는 8자였음은 어쩌면 당연했다. 멤버 면면을 소개하는 요량하고, 그들의 미간이 언제 찌푸려졌고 그것이 어떻게 풀렸는가에 대한 예를 하나 들자. 김씨는 비싸게 주고 산 볼펜에 똥이 많아 불편함을 겪은 뒤 시중에 생산되는 모든 볼펜을 모아 볼펜 똥을 연구했다. 그는 책상머리에 스톱워치를 0:00으로 맞춘 뒤에 볼펜으로 펜글씨 연습하듯 글자를 써내려가다가 똥이 나오는 때에 스톱워치를 눌렀다. 장기 프로젝트였기에 하루에 하나의 볼펜만 조사했다. 밥도 먹어야 하기에 한계 시간을 5시간으로 잡았다. 결론은 대부분의 볼펜이 5시간 연속해서 써도 괜찮다는 것이었고, 자신을 배신했던 볼펜은 같은 종의 볼펜과 비교할 때 지극히 불량했다는 것. 이제 볼펜 똥 시작 시점을 탐구했으니 이 똥으로 얼마나 많은 종이를 채울 수 있나를 연구했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생략.
무엇보다 김씨를 비롯한 이들의 최대 고민은 지구온난화였다. 회장으로 추대된 임씨는 기조연설문에서 여름의 자외선이 피부암을 유발한다는 뉴스를 접하고 밖에 나갈 때는 자외선 차단지수 30 이상의 선크림을 노출 부위에 발랐는데, 이런 높은 자외선 차단지수가 되레 피부암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뉴스를 접한 뒤 ‘지구온난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회원들의 지구온난화에 대한 고민은 정 회장의 실천전략의 실패에 따른 경험과는 달리 현실적이었다. 자유발언에서 정씨는 철이 들 때부터 24절기의 날씨와 온도, 습도를 기록했는데 이 기록이 1990년대 들어 확연하게 달라졌다고 말했다. 걱정, 걱정, 걱정이 이어졌다. 그때 팔을 바싹 귀에 붙여서 발언을 신청한 서씨가 당당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지구 궤도를 수정하면 됩니다.” 여전히 걱정으로 이마의 주름이 물결치는 얼굴들이 서씨를 향했다. “제가 계산한 결과에 따르면 지금 지구와 태양과의 거리인 1억5천만km에서 10km만 이동시켜도 지구의 온도가 상승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허황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방법도 있습니다.” 이마의 주름이 조금 풀리는 듯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미간은 찌푸려져 있었다. “전세계 폭발하고 있는 인구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중국인이 한꺼번에 발을 굴리면 지구가 깨진다고 하지 않습니까? 지구의 궤도를 바깥쪽으로 수정하는 방향으로 일시에 조금씩 힘을 주는 것입니다. 지구의 사람들이 자전 방향으로 움직여 지구의 원심력을 늘여서 바깥쪽으로 튕기는 것입니다. 전세계 방송 네트워크를 이용해 일정 시간에 한 번씩 지구를 위해서 운동하는 시간을 지정하면 됩니다. 지구온난화 문제는 전세계인의 동참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그래도 지구는 돌아 걱정스런 밤은 끝나고 창밖으로 뿌옇게 동이 터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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