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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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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모욕

등록 2006-02-10 00:00 수정 2020-05-03 04:24

▣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역도산 신화는 북한·남한·일본에서 각기 제멋대로 쓰였다. 북한은 일본에 강제로 끌려갔으나 북조선에 대한 애정과 충성을 간직한 영웅으로, 일본은 국민을 패전의 수렁에서 벗어나도록 격려한 불굴의 영웅으로, 한국은 한-일 수교 뒤 찾아낸 위대한 한국인의 표상으로 번지르르하게 한 인간의 일생을 각색해냈다. 이 영웅담에서, 북한은 일본을 지우고 싶어했고, 일본은 조선을 지우고 싶어했고, 한국은 둘 다를 지우고 싶어했다. 어쨌든.
역도산은 그저 여자 없이는 한순간도 살지 못하고, 허풍을 쳐대고, 씨름밖엔 재주가 없어서 스모계의 1인자가 되고 싶어했던 한 인간이었을 뿐이다. 어느 저녁, 알코올 때문에 몽롱해진 정신으로 TV를 켜니 영화 <역도산>이 방영 중이었다. 이 영화의 흥행가도에 가장 치명적인 요소는 영웅이 아닌 인간을 살짝 보여줬다는 점이다. 대중이 절대 보고 싶어하지 않는 그의 진짜 얼굴 말이다. 진실은 결코 돈이 되지 않는 법이다.
<효자동 이발사>의 주인공은 권력자도 권력에 저항하는 민중도 아니다.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 이 땅에 태어난” 소시민이다. 이발사는 권력에 충성하면서, 그리고 끊임없이 권력에 배반당하면서, 권력의 채찍질에 저항하기는커녕 바들바들 떨면서 어찌어찌 살아남는다.
<그때 그사람들>을 나는 매우 놀라운 영화라고 생각한다. 물론 나는 영화의 완성도에 대해 왈가왈부할 식견이 없다. 그러나 나는 독재자도 독재자의 목을 친 암살자도 그저 “철부지들”이었을 뿐이라는 이 대담한 시선의 이동이 놀랍다. 청와대에서 벌어지는 온갖 에피소드들과 독재자의 죽음을 슬퍼하는 민중들의 눈물은 한판의 코미디다. 여기에는 권력의 엄숙함과 저항의 비장함이 생략돼 있다. 근대사에 대한 탈근대적 접근?
<이야기된 역사>에서 신형기 교수는 남한과 북한에서 권력만이 아니라 저항의 역사도 민족주의나 국가주의로 수렴됐다고 지적한다. 4·19는 “우리(국민, 민족)는 하나다”라는 구호로 민중을 단일화했으며, 부패한 친일 정부를 뒤엎고 강력한 위로부터의 개혁을 염원했다고 말한다. 그래서 쉽게 군사혁명을 용인한다. <장길산> 같은 대하소설은 가혹하게 진행된 산업화에 대항해 ‘민중’이라는 상상적 공동체를 보여준다. 민중이라는 이름의 도덕적 통합은 배제를 요구하게 마련이다. 한국전쟁 뒤 남한과 북한은 대하소설을 통해 민족사를 다시 썼고, 국가주의적으로 전유됐다.
역사는 다시 상상되어야 한다. 근대가 만들어놓은 온갖 엄숙한 것들에 대한 모욕이 계속될 것이다. 일단 이 불쾌함의 시간을 통과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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