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장의 함성에 감춰진 정치를 파헤치는 <축구는 어떻게…>
▣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축구는 스포츠로부터 뚝 떨어져나와 스포츠가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저 너머의 영역에, 존재하는 스포츠다. 그것은 축구의 불행한 운명이며 지구상의 절반의 인구가 축구에 미치는 이유다. <축구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했는가>(프랭클린 포어 지음, 안명희 옮김, 말글빛냄 펴냄)는 축구장의 함성 밑에 감춰진 민족주의, 인종주의, 거대 자본을 들춰내고 이들이 어떻게 축구를 부패와 증오의 동력으로 이용하는지를 폭로하는 책이다. 지은이는 시종일관 ‘세계화’라는 문제를 화두로 쥐고 있는데, 결론적으로 세계화는 축구의 역사가 지녀온 폭력을 없애지 못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강화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이런 이야기라면 자칫 딱딱한 사회과학의 틀에 갇히기 십상이지만, 언론인 출신인 지은이는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화제의 인물을 만나고 숨겨진 이야기를 발굴해내 매우 흥미진진하게 펼쳐 보인다.
축구가 인종주의자들의 폭력에 이용당한 가장 극단적인 사태는 냉전 붕괴 뒤 피 칠갑을 한 발칸반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축구팀 레드 스타 베오그라드의 팬클럽들은 세르비아의 민족주의가 부활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 사태의 중심에는 전설적인 인종주의자 아르칸이 있다. 전 유럽을 돌아다니며 범죄를 일삼던 아르칸은 레드 스타의 팬클럽들을 하나의 조직으로 정비하고 자신이 그 조직의 지도자가 되었다. 세르비아 정부는 정식 군대를 움직이기보다는 아르칸의 ‘훌리건 스타일’을 더 좋아했다. 아르칸이 정비한 팬클럽 ‘델리제’는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인들을 싹쓸이하기 위한 준군사부대를 조직하기 시작했다. ‘훌리건’이라는 전통적인 문화가 정치권력에 의해 학살로까지 이용된 사례인 것이다.
이 악명 높은 훌리건 문화는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에서 종파간의 갈등에도 개입한다. 스코틀랜드의 글래스고 레인저스 축구단을 응원하는 개신교 신도들과 가톨릭 셀틱 축구단의 팬들 사이에는 오래된 폭력의 역사가 존재한다. 대공황기 레이전스의 ‘악당’들로 이루어진 빌리 보이스 갱은 셀틱의 맥그로리 보이스 등과 맞붙어 총칼을 동원해 닥치는 대로 싸움을 벌였다. 세계화의 물결 속에 레인저스가 남미의 가톨릭 신자 선수들을 대거 영입한 뒤에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가톨릭 출신 선수들은 자신의 믿음을 욕되게 하는 개신교도들의 노래를 불러야 했다. 근대화를 맞아 인종차별이 퇴조하는 흐름 속에서도 이 지역에서 유난히 축구 분파주의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은이는 “종파주의가 일종의 포르노그래피 같은 쾌락을 선사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이탈리아는 축구공이 어떻게 자본가의 야심에 따라 굴러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유벤투스는 피아트사를 소유하고 있는 ‘아넬리’라는 이탈리아의 전통적 자본가 집안의 ‘장난감’이다. 이에 반해 AC밀란은 실비오 베를루스코니라는 신흥재벌의 소유였다. 이탈리아 리그는 실수나 득점 기회가 적은 ‘카테나치오’라는 독특한 게임 방식 때문에 심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아넬리 집안은 심판에게 은밀한 뇌물을 제공하며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런 관행은 이탈리아 검찰이 대대적인 부패 수사에 나서면서 격퇴됐다. 베를루스코니는 자신의 거대한 미디어 제국을 이용해 심판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며 자신의 정치적 야욕도 충족시켰다. 그는 자신의 정당을 만들며 AC밀란의 수백만 팬들을 교묘히 이용했다. 당의 이름도 축구장의 구호를 따와 ‘포르자 이탈리아’(가자 이탈리아!)로 지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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