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글 이강훈
문을 두드린 것은 열두어 살 남짓한 작은 여자아이였다.
눈앞의 작은 생명체가 나와 같은 인간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기까지
적잖은 시간이 필요했다. 마지막으로 사람을 만난 것이 언제였더라.
아마도 여자아이의 나이만큼은 되었을 것이다.
르네상스.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아이의 행색은 평탄치 않았던 여정을 고스란히 품고 있었다.
“여길 어떻게 찾아왔지?”
여자아이는 작지만 다부진 목소리로 말했다.
“책을 구하러 왔어요. 이곳에 책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누굴까. 아직도 내 존재를 기억하는 사람이 남아 있다니.
“책이라면 여기 얼마든지 있지. 하지만 모두 빈 껍데기일 뿐이란다.
이미 오래전 글자들이 모두 사라져버렸거든. 이제 이 지구상에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곤 단 한 권도 남아 있지 않아.”
소녀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조용히 나를 바라보았다.
“그런 거라면 저도 알고 있어요. 인간들에게 글자를 선물했던 그분이
그것을 다시 거두어갔어요. 하지만 제가 찾는 책은 종이 위에 박힌 글자들이
아니어요. 설령 글자가 남아 있다 하더라도 전 읽을 수도 없는걸요.”
“그럼 네가 찾는 책이라는 게 뭐지?”
여자아이는 작은 입술을 앙다물었다. 커다란 눈동자가 내 얼굴을 구석구석 핥았다.
“제가 찾던 책은 바로 할아버지예요. 할아버지의 주름살 사이에 담긴 그것들,
이제 저에게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나는 소녀가 무엇을 말하는지 금세 깨달았다.
“춥지? 여기 난로 곁에 앉거라.”
나의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슬 같은 기대를 잔뜩 머금은, 맑고 어린 눈망울 속에서
다시 책이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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