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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기획폐업·표적감사…삼성의 ‘노조 소진전략’

본사 부장이 부산까지 가서 대표이사에게 협력사 직원 차량 동선 보고…
2013~2014년 협력사 노조 결성 와해 전략
등록 2020-02-22 16:07 수정 2020-06-26 16:07

표지이야기


판도라 상자가 열리다

2013년 7월14일 민주노총 전국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가 창립총회를 열었다. 한겨레 김정효 기자

2013년 7월14일 민주노총 전국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가 창립총회를 열었다. 한겨레 김정효 기자

2013년 5월23일 저녁 7시14분. 삼성전자서비스에서 노사 업무를 담당하던 윤아무개 부장이 박상범 당시 대표이사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낸다.

“신○○의 동선 확인 결과, (중략) 차 소리는 들리는데 내비게이션 소리는 안 들렸고, 자세한 결과는 월요일 출근해서 (협력사 사장과) 이야기하겠다고 함. 또한 위○○ 확인도 5시 약속 건 변경 후 협력사 사무실 건너편에 있다가 차량이 없어진 것으로 보아 퇴근한 것으로 보임. 위○○도 신○○과 같은 내용을 이야기하여, 자택 귀가를 확인하고 지속적으로 동선을 파악하겠습니다.”

‘선 폐업’ 후 주동자 2명 재채용에서 제외

두 시간 뒤 윤 부장은 문자를 하나 더 보낸다. “금일 저녁 약속이 있어 만나기 어려우니 내일 아침에 (협력사 사장과) 면담하자고 얘기해서, 혹시 거짓말일 것을 대비해 귀가하는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거주지 주변에서 대기하고 있음. 약 10시30분까지 대기했다가 둘 다 귀가하는 경과를 지켜보고 철수할 예정입니다.”

<한겨레21>이 2월 입수한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와해 사건 1심 재판기록에 담긴 박 대표이사의 검찰 휴대전화 포렌식(데이터 복원) 기록 일부다. 박 대표이사의 문자메시지 내역은 2019년 12월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와해 사건 재판에서 임직원들이 실형을 비롯한 유죄를 선고받는 데 유력한 증거가 됐다.

다시 윤 부장의 ‘잠복 보고’로 돌아와보자. 신씨와 위씨는 삼성전자서비스 부산 동래프리미엄 협력사에서 일하는 가전제품 수리기사였다. 두 사람은 2013년 1월께 협력사 사장에게 미지급 휴일근로수당을 달라고 했다. 4월24일엔 노무사를 선임해 협력사 사장에게 협력사 직원 35명에 대한 근로계약서·급여명세서 등 자료를 달라고 요청했다. 그 뒤 협력사 직원인데도 삼성전자서비스가 관리하는 ‘문제인력’이 됐다.

미지급 임금을 주면 될 일인데, 경기도 수원에서 근무하는 본사 직원이 협력사 직원의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부산까지 간 이유는 무엇일까? 이날 신씨가 휴가를 내고 서울에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권영국 변호사를 만나기로 했다는 첩보를 입수했기 때문이다. 당시 신세계 이마트 불법파견 문제가 불거졌고 권 변호사는 이에 관여한 바 있다. 삼성은 협력사 직원의 ‘외부세력과의 연계’를 두려워한 것이다.

삼성은 이미 아예 협력사를 폐업하기로 결정한 상황이었다. 5월21일 삼성전자서비스 인사팀이 작성한 문서에서 밝힌 이유는 이렇다. “노동부 진정으로 인한 미지급금 지급 명령 땐, 전 협력사 이슈화 (우려가 있으므로) 사전 차단이 중요하고, 집단행동 와해, 타 협력사 확산 방지를 위해 선(先) 협력사 폐업이 중요함. 다만 주동자 2명은 채용에서 제외함.”

이후 상황은 삼성의 바람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6월5일 전국금속노조 부산지부 활동가가 협력사 직원 19명을 만나 노조 가입을 권유했다. 이틀 뒤인 6월7일 삼성은 애초 6월 말로 예정된 폐업을 앞당기기로 하고, 협력사 사장이 직원들을 면담하게 한 뒤 인근 협력사로 재취업시켰다. 위씨와 신씨 두 사람은 계획대로 제외됐다. 사실상 해고다. 삼성전자서비스 모회사인 삼성전자는 이를 ‘고립화’라고 표현했다. 삼성전자는 삼성전자서비스에서 수시로 내용을 보고받았다. 삼성전자의 6월7일과 6월11일 ‘일일 주요 이슈’에는 주요 사건 경과와 함께 두 사람이 트위터를 통해 부당해고의 문제점을 알렸으며, 이들의 트위트에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와 이외수 작가가 응답해 “일부 네티즌의 관심을 모았다”고 평가했다.

2011년 미리 짜둔 계획에 따라

그러나 관심은 일부 네티즌에 그치지 않았다. 윤 부장은 6월16일 오후 2시께 박상범 대표이사에게 다급한 문자메시지를 보낸다. “전자서비스 불법파견 관련 국회 기자회견 첩보 입수.” 실제 다음날인 6월17일 은수미·장하나 당시 의원을 비롯한 민주당 을지로위원회가 국회 정론관에서 삼성전자서비스의 위장도급(불법파견) 의혹을 제기하는 기자회견을 연다. 6월19일 삼성전자서비스 수리기사로 구성된 네이버 밴드가 개설됐고 동시에 민주노총 금속노조 가입 신청이 쇄도했다. 고용노동부는 한 달 일정으로 6월24일부터 수시근로감독에 착수했다. 7월11일 지회 조합원을 중심으로 삼성전자서비스를 상대로 한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이 제기됐고, 7월14일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가 창립총회를 연다. 위씨와 신씨는 지회장과 사무국장이 된다. 7월19일부터 금속노조는 협력사를 상대로 단체교섭을 요구했다.

그러나 삼성은 계획이 있었다.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수리기사들은 ‘비노조 사수’를 내건 삼성이 이미 파악한 ‘약한 고리’였다. 이 때문에 협력사 노조 설립에 대응하려는 계획을 미리 짜둔 상태였다. 2011년 7월7일 삼성전자가 작성한 ‘서비스 복수노조 대응태세 점검결과’에는 “수리·상담 협력사를 통한 노동계의 우회 침투 가능성이 있어 위장도급 리스크 해소 및 협력사 조직관리 강화 필요”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 삼성전자서비스 인원보다 협력사 인원이 7배 가까이 많아, 노조가 설립되면 파급효과가 크다는 이유에서다. 2013년 1월에는 협력사에 노조가 설립되면 어떻게 대응할지 상황별 시나리오를 정리했다. 여기엔 협력사 직원이 노조에 가입하면 대응팀을 가동해 노조에서 탈퇴시키고, 삼성전자서비스와 협력사의 계약 해지를 유도하며, 교섭 창구 단일화 제도를 이용해 단체교섭을 지연하면서 노조를 와해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삼성은 계획대로 움직였다. 국회 기자회견이 열린다는 첩보를 입수한 6월16일, 삼성전자는 삼성전자서비스에 종합상황실을 설치하고 ‘서비스 대응 TF’를 가동했다. 7월30일 완성된 ‘서비스 안정화 마스터플랜’은 대응방안을 4개 항목으로 구성했다. 고용부 근로감독은 “총력대응을 통해 적법도급 판정을 유도”하고, “(고용부에 대한) 전방위 압박을 통해 신속한 조사 결과 발표를 유도”하기로 했다. 구체적으로 언론을 통해 ‘극성수기에 고용부의 장기간 근로감독으로 영업손실’ ‘일부 국회의원이 노동계와 결탁해 기업 압박’ 등의 기획기사를 내보내게 하거나, 협력사 대표에게 “우리는 바지사장이 아니다”라는 기자회견을 열게 했다. 이 기자회견은 7월21일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주관으로 열린 것으로 돼 있으나, 실제 기자회견문은 삼성전자 인사팀 노무사가 썼다. 지역구 국회의원 사무실도 매주 2회 이상 항의방문을 하게 했는데, 면담에 불응하면 1인시위로 대체하게 했다. 깨알같이 “1인시위는 용역 활용”이라는 내용도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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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업 일자를 디데이로, 폐업 공고문도 작성

헌법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 따라 보장되는 단체교섭 요구에 대해선 ‘지연전술’을 썼다. 성수기를 지나 8월 말에 상견례를 하되, 단체교섭권을 경총에 위임했다는 사실을 늦게 공지하기로 했다. 이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 규정하는 ‘단체교섭 해태’ 부당노동행위다. 궁극적 목표는 삼성전자서비스지회의 ‘와해’였다. 불법도 꺼리지 않았다. 협력사의 ‘문제적 인사’는 감사로 비위 사실을 걸러내 징계하도록 했다. 지회가 ‘불법파업’을 하도록 유도해 법적 압박도 가하기로 했다. 또한 협력사 대표들이 경영 포기 선언, 즉 자진 폐업을 하도록 유도했다.

특히 2014년 1월 노동운동가 출신에 노동부 장관 보좌관을 지낸 송아무개씨와 노조 와해 자문계약을 한 삼성전자는 신속대응팀(QR팀)을 만들어 노조 세력을 약화하기 위해 적극 나섰다. 그해 1월 부산·경남 지역 협력사 노조가 파업에 들어가자, 그룹 차원에서 대응하기 위해 삼성전자서비스를 “총력 지원하라”는 지시가 나왔기 때문이다. 1월17일 작성된 ‘전자서비스 QR팀 운영계획안’을 보면, “협력사의 반납 물량을 전자서비스 제휴인력(전자서비스가 직접 계약하는 인력)이 처리하게 해 파업 참여자의 근무 복귀 후 임금 손실 만회 가능성을 차단”하고, ‘무노동 무임금’ ‘징계 조치 가능성’을 언급한 가정통신문을 파업 참가자 집으로 발송해 가족을 통한 압박도 시도했다.

‘표적 감사’는 수리기사들이 3년 동안 수행한 서비스 가운데, 수리비를 과다 청구하거나 자재를 허위 교체한 행위를 골라내 진행됐다. 그런데 감사 대상자를 노조 조합원으로 함으로써, 삼성전자 인사팀 소속 박아무개 변호사도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2014년 2월24일 관련 보고 문건에서 “객관적 기준으로 검증 대상자를 선정한 것이 아니라 (노조) 주동 인력 중심으로 대상자를 선정하고 이를 희석시키기 위해 일부 비조합원을 포함한 것”이라며 고용부 근로감독관이 대상자 선정 방식에 의심을 품을 수 있다고 봤다. 당시 노조는 감사를 부당노동행위 혐의로 고소한 상태였다.

또한 삼성은 조합원이 많은 협력사의 폐업을 유도해 “노조 활동은 실직이라는 불안감을 조성”하고, 조합원을 대상으로 ‘고용승계 없는 폐업 추진’ 소문을 유포해 2월28일부터 순차적으로 협력사를 폐업시키기로 했다. “투쟁을 통한 실익이 없다는 회의감 확산을 유도”한 것이다. 삼성전자는 폐업 일자를 ‘디데이’(개시일)로 삼은 시나리오를 짰고, 폐업 공고문까지 써줬다. 그 결과 해운대와 아산 협력업체가 폐업했다. 해운대 협력업체는 사장의 건강상 이유와 노조 조합원과의 관계 악화를 명분으로 삼았다. 그는 검찰 조사에서 “폐업의 명분을 쌓기 위해 삼성의 지시에 따라 입원·수술했다”고 말했다. 경영 악화에 따른 폐업이었다는 삼성의 주장에 대해서도 “내가 황금알을 낳는 직장을 왜 버리겠나. 비용 모두 제외하고 한 달에 순이익으로 가져가는 게 최소 500만원이 넘었다”고도 진술했다.

그리고 정동진에서 숨진 채 발견된 분회장

삼성은 노조 세력 약화 계획을 ‘그린화’ ‘안정화’라는 이름으로 바꿔가며 최근까지 지속해왔다. 그럼에도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해고와 임금 손실, 차별을 이겨내며 투쟁을 이어갔다. 노조는 2014년 4월24일 경총과 교섭하는 과정에서 결렬을 선언하고 파업투쟁 등을 지속했다. 삼성전자 서울 서초사옥과 수원 본사에서 노숙집회를 벌였다. 이들의 주장은 ‘원청과의 직접교섭’과 ‘위장폐업 규탄’이었다. 그러다 5월17일 경남 양산분회장이던 염호석씨가 강원도 강릉 정동진 근처에서 숨진 채 발견된다. 단체협약 체결이냐, 협력사 추가 폐업을 통한 강경 대응이냐를 저울질하던 삼성은 ‘경찰과 돈’을 동원해 위기 모면에 나선다. 이 이야기는 다음호에서 다룬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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