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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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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삼성에게 VIP는 ‘간첩’…노조와해 용어사전

2011년 복수노조 허용 법 시행 뒤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대응전략 펼쳐
등록 2020-02-22 16:00 수정 2020-06-26 16:06
표지이야기
판도라 상자가 열리다

<한겨레21>이 입수한 삼성전자서비스 부당노동행위 1심 재판기록 가운데 노조 와해 계획을 담은 삼성 내부 문건 표지들.

<한겨레21>이 입수한 삼성전자서비스 부당노동행위 1심 재판기록 가운데 노조 와해 계획을 담은 삼성 내부 문건 표지들.

2011년 7월1일, 한국 노사관계 역사에서 꽤나 의미 있는 날이다. 이날부터 복수노조 허용 내용이 담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 세 차례 유예 끝에 시행된다. 같은 사업장에 기존 노조가 있다는 이유로 노동삼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침해당했던 노동자들은 새로운 노조를 만들 수 있게 됐고, 기존 ‘강성노조’에 불만이 있던 사용자들은 ‘어용노조’를 만들 수 있었다. ‘노조 파괴의 대명사’로 불리는 유성기업이 대표적인 예다. 물론 이는 불법이다.

“2009년 유예시에도 결정적인 역할”

삼성에는 어땠을까? 계열사에 노조가 없거나 있어도 ‘페이퍼(유령)노조’가 많았던 삼성은 새로운 노조 설립을 위기로 받아들였다. 안 그래도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진 노조는 안 된다”는 선대 회장의 유훈을 떠받드는 삼성그룹에 노조가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중요 사안이니 그룹 ‘오너’한테도 보고됐다. 2011년 3월9일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은 이건희 회장에게 ‘복수노조 시행에 따른 대응 방안’을 보고한다. <한겨레21>이 입수한 이 문건을 보면, “복수노조 시행을 재차 유예하는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며 “복수노조를 반대하는 한국노총을 잘 활용하겠다”고 적혀 있다. 배경은 이렇다. “(한국노총이) 2009년 말 복수노조 유예시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한 바 있다. …2012년 총선·대선을 고려하면 정책연대를 하고 있는 한국노총의 요구를 (정부가) 완전히 무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위기 상황에 맞서 한국노총이나 정부, 국회를 움직여 얼마든지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엿보인다. 이는 첫 번째 대응 방안이었다.

두 번째 대응 방안은 내부 단속 전략이었다. 앞 문건에서 삼성은 “그룹 내부적으로는 금년 7월1일 복수노조가 시행된다고 가정하고 만반의 준비를 하겠다”며 “전 임직원 노사교육·현장조직 관리를 강화해 원천적으로 노조 설립 가능성을 차단하겠다”고 적었다. 이 문건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향후 만약의 경우 소수 문제인력에 의한 노조가 생기더라도 조기에 노조를 와해시키도록 하고, 여의치 않을 경우 시간을 끌면서 상대 노조를 고사화시키거나 친사 노조를 설립해 무력화시키는 방안도 강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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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건 첫 페이지에는 창과 방패를 든 전사

나중에 삼성이 계획한 첫 번째 대응 방안은 무위로 돌아갔고, 두 번째 대응 방안은 우리가 모두 알고 있듯 실행에 옮겨졌다. 그리고 세상에 드러나 마침내 삼성그룹 임직원 30명이 1심 재판에서 노조법 위반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았다. <한겨레21>이 입수한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와해 사건 재판기록을 보면, 두 번째 대응 방안이던 삼성의 노조 와해 전략은 치밀하고 계획적이었다. 삼성은 최소 2003년부터 그룹 차원의 ‘노사전략’을 매년 작성하고,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나 인사 담당 임원들을 교육했다. 문건에는 전년도 노조 설립 시도 사례와 이를 어떻게 ‘분쇄’했는지에 대한 성과가 나와 있고, 노조를 막기 위한 전략을 구체적으로 적고 있다.

2011년 7월 복수노조 시행을 앞두고 삼성의 그룹 노사전략 문건에 나오는 단어는 더욱 과격해졌다. 2010년이 “흔들림 없는 비노조 견지”였다면, 2011년 노사전략은 “확고하고 견실한 비노조 조직문화 구축을 통한 복수노조 위기 극복”이 전체적인 기조였다. 2011년 삼성전자가 그룹 노사전략을 바탕으로 작성한 ‘삼성전자 노사전략’ 자료에는 “복수노조 위기 극복은 사느냐 죽느냐를 결정하는 조직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 지금부터 10년은 100년으로 나아가는 도전의 시기”라는 비장한 문구가 적혀 있다. 문건 첫 페이지에는 창과 방패를 든 ‘전사’의 사진이 배경으로 깔려 있다.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대응 방안은 크게 3단계로 구성된다. 1분기에는 ‘비노조 분위기’를 조성하고, 2분기에는 ‘복수노조 대응체계 완비’, 그리고 복수노조가 허용되는 7월 이후인 3~4분기에는 ‘조기 문제 해결 및 노조 와해 추진’으로 돼 있다. 노조 설립 시도 같은 비상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워룸’(War Room)을 만들고, 노사 업무 인력의 24시간 ‘상황대기’를 하며, 월 1회 응신(발신에 응하는 것), 소집 훈련도 계획했다. 실제 상황에서 초동 조치를 담당하는 직원들을 SWAT(Special Weapons Attack Team·특공대)나 RRT(Rapid Response Team·신속대응팀)로 명명하기도 했다. ‘패트롤’(정찰병)이란 단어도 등장한다. HNC(한국노총)·MNC(민주노총) 지부와 노조 설립 신고서를 내는 시청, 고용노동부 등이 삼성이 매일 정찰해야 할 대상이었다. 군대, 경찰, 정보기관 등에서 쓰는 용어와 전략 등을 차용해 작전을 펴듯 실제 노조 파괴에 치밀하게 적용했다.

심지어 노조에 침투해 “노조의 동향을 파악해 와해”하는 ‘간첩’도 양성했다. 이들의 이름은 ‘VIP’다. ‘Very Important Person’이 아니라 회사의 ‘Value(가치)를 Insure(보장)하는 People(사람)’이었다. 2010년 기준으로 삼성전자에는 355명의 VIP가 있었다. 문제인력과 마찬가지로 등급이 있다. A급 40명이 노조가 생기면 바로 가입해 동향을 파악하고 노조의 주도권을 확보한다. B급 60명은 노조 안팎에서 A급 주도세력을 돕고, C급 255명은 노조 교란 목적으로 노조에 단순 가입했다가 탈퇴하는 임무가 주어졌다. 이들에게는 경조사비 5만원과 두 달에 한 번 외부 모꼬지(MT), 인사고과 때 특전을 주도록 했다. 최지성 당시 삼성전자 부회장은 복수노조 시행 대비사항 가운데 이 VIP와 같은 우군화 인력 관리를 첫 번째 지시로 삼았다. “조직 내 우군화 인력관리 철저: 활동비 지원계획 등 우군 인력 관리 방안 수립.”

“‘삼역모’ 중 7명은 퇴직처리 44명은 안정화”

군대에선 상황별 대응 조처에 대한 반복숙달 훈련이 필수적이다. 삼성의 미래전략실 주관으로 각 계열사에서 다양한 도상훈련, 즉 모의훈련을 했다. “현 상황을 판단·분석한 후 대책을 수립하시기 바랍니다”라는 문장으로 끝나는 ‘모의훈련 케이스(사례)’는 28가지 다양한 상황을 가정했다. 예를 들어 ‘승진 누락자가 인사 정책을 비판하는 글을 게시한 뒤 노조 설립이 필요하다는 유인물을 배포했다’ ‘사내 협력업체 사원 30명이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고용노동부 진정과 노동계 세력과 연대한 사내집회 등 집단행동을 예고했다’ ‘산별노조가 단체교섭을 요청하며 CEO가 교섭대표로 참여할 것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다’ ‘사무직 사원 30명이 노조를 설립한 뒤 정기적으로 사모임을 갖고 있다는 첩보가 입수됐다’ 등이다. 이러한 훈련 결과를 포함할 뿐만 아니라 복수노조에 대비한 다양한 지표가 계열사와 계열사 CEO를 평가하는 항목이 됐다.

취업규칙과 시설도 미리 손봤다. 2011년 1월 미래전략실은 전략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사내 조합활동 대응을 위한 취업규칙 및 물적 시설 사전보완 방안’이라는 문건을 보고한다. 노조 세력 약화를 위해 조합원을 징계할 수 있는 조항을 미리 만들어놓으려는 것이다. 외부 집회와 기자회견 참석을 막기 위해 사전 신청하지 않은 연차를 불허하고 이를 어기면 징계하도록 했다. 노조 가입을 권유하기 위한 사내 전자우편 발송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활동을 막기 위해 업무 외적으로 인터넷을 사용할 때도 징계할 수 있게 했다. 근무시간에 노조 조끼나 리본·명찰 착용을 막으려고 회사 승인 없는 기장(리본·명찰·표지 등) 착용도 징계 대상이 됐다. 사업장 울타리를 높게 쌓고 폐회로텔레비전(CCTV) 감시도 삼엄하게 했다. CCTV는 노조가 생긴 뒤 설치되면 부당노동행위 제소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미리 설치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됐다.

삼성에서 노조 설립 시도는 번번이 좌절됐다. 2007년 4월 삼성SDI, 전자, 정밀유리에서 ‘삼성 역사를 만드는 모임’(삼역모)이 결성됐지만, 삼성은 “개인별 집중면담을 통해 탈퇴·내부와해를 유도해 삼역모 모임을 해체시키고 노조 설립 기도를 차단했다”(2008년 그룹 노사전략). 이 모임에 참여한 51명 가운데 7명은 퇴직 처리됐고, 44명은 ‘안정화’됐다. 안정화는 “더 이상 노조 설립 기도를 하지 않고 회사 방침에 따르게 된” 것을 말한다. ‘삼역모’뿐만이 아니라, 삼성에서 ‘노조’를 언급한 이들은 모두 ‘문제인력’으로 분류돼 삼성의 회유나 압박의 대상이 됐다. 2011년 11월 삼성SDI에서 노조 설립을 시도했던 ‘문제인력’ ㄱ씨는 인사팀장과 면담한 뒤 노조 설립 시도를 중단했다. 회사는 그 대가로 ㄱ씨의 장남을 단기계약직으로 채용하기로 약속했다. 이후 ㄱ씨가 희망하는 해외 출장을 통해 노조 설립을 최종 포기시켰다. 희망퇴직 등 노사관계 이슈가 많았던 삼성SDI는 삼성일반노조나 금속노조 관계자와 자신의 직원들이 밥을 먹은 사실과 밥을 먹으면서 나눈 대화 내용까지 모두 파악했다.

인수한 회사 노조는 해산시켜

노조 설립 시도를 차단해왔던 만큼, 인수한 회사의 노조를 해산시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삼성은 2010년 12월 메디슨을 인수했다. 메디슨에는 노조가 있었다. 인수 뒤 삼성은 ‘메디슨 ○○(노조를 지칭) 해산 추진’을 업무계획에 포함했다. 이후 2013년 12월 삼성전자 인사팀장 업무보고에는 이런 표현도 나온다. “메디슨 ○○ 해산 추진은 잠정 중단된 상태이나, 의료기기 분할 후 재추진 예정(재추진 시기 15년 2~5월).” 실제 메디슨에서는 노조가 해산됐다. 2015년 11월 작성된 삼성전자 인사지원그룹장이던 김아무개 상무의 임원업적평가 파일에는 “메디슨 ○○ 해산”이 ‘공적’으로 적혀 있다.

‘사고’가 잦았던 삼성SDI에서 짠 ‘2011년 하반기 조직안정화 전략’은 처연할 정도다. 노조 와해 내용을 담은 문건의 마지막에는 ‘전사 인사 담당자 일동’의 다짐이 적혀 있다. “100년 기업 삼성의 역사 속에 부끄러운 인사인(인사업무 담당자)으로 기억되지 않게 목숨을 걸겠습니다.” 삼성에서 ‘비노조’는 인사 담당자가 목숨을 걸고 지켜야 했던 성역이었다.

헌법상 기본권인 노동삼권을 파괴하기 위해, 직원들이 목숨을 걸겠다고 약조해야 했던 삼성 때문에, 노조 조합원이 목숨을 잃었다. 삼성의 노조 와해 전략이 통하지 않았던 민주노총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에서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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