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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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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죽음이 치안부담?’ 경찰권력 주무른 삼성

삼성 노조 와해 재판기록 2만 쪽 분석, 조력자들 ① 강원경찰청과 경남 양산서
염호석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양산분회장 주검 탈취 사건의 전말
등록 2020-02-29 13:45 수정 2020-06-26 07:07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저희 내부적으로 정부 부처와 컨택 포인트가 있습니다. 상생협력센터는 국회·산업부와, 인사팀은 경찰·(고용)노동부와 연락선이 있었습니다.”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와해 사건 당시 삼성전자 경영지원실장이던 이상훈의 피의자신문조서 일부다. 삼성은 노조 와해, 특히 염호석 노조 양산분회장 자살 때 이 연락선을 구체적으로 활용했다. 삼성은 ‘노조장’으로 치러달라는 고인의 뜻 대신 ‘가족장’을 치르도록 유족을 회유했고, 경찰은 정보·형사·경비 등 모든 자원을 동원해 삼성을 도왔다. 삼성의 돈심부름을 했고, 삼성에서 돈을 받았다.
연락선이 작동했던 것은 삼성이 ‘전관’을 채용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노조 와해 사건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이들 가운데 3명(삼성그룹 미래전략실 강경훈 부사장·김아무개 상무·배아무개 부장, 당시 직책 기준)이 경찰대 출신이다. 삼성은 1990년 이건희 회장의 지시에 따라 경찰대 출신을 계속 채용했고, 채용된 이들은 대부분 인사·노사 업무를 맡았다. 2009~2018년 삼성전자·삼성전자서비스에 입사한 퇴직경찰도 24명이나 된다. 대부분 ‘법무컨설턴트’로 일한다.
고용부도 마찬가지다. 고용부 출신 황아무개 상무는 삼성전자에서 인사 업무를 하며 노조 와해에 관여했다. 자신의 후배 공무원에게 개인적으로 전자우편을 보내 “삼성전자서비스는 불법파견이 아니”라고 항변하며 “나중에 소주 한잔 하자”고 한다. 삼성은 고용부가 발표하기도 이전에 근로감독 결과를 받아냈고 이를 노조 와해 전략에 활용했다.
삼성을 대신해 뒤에서 노조와 교섭에 나섰던 정보경찰 김아무개 경정은 후배 경찰들과 함께 정기적으로 강경훈 부사장과 술을 마셨다. 그는 강 부사장을 화투장의 ‘광’에 빗댔고, 나머지 참석자들을 ‘열끗’ ‘다섯끗’ ‘피’라고 표현했다. 이번호에선 ‘광’이 점수를 내기 위해 도운 열끗, 다섯끗, 피의 이야기를 다룬다.

“형한테 빚도 있는데 갚지 못하고 이렇게 떠납니다. (…) 이 싸움 꼭 이길 겁니다. 그렇게 될 것입니다.”

2014년 5월15일 새벽 3시59분. 민주노총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양산분회장이던 염호석은 자신의 친한 동료인 같은 분회 조합원 염태원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낸다. 아침에 메시지를 확인한 염태원은 평소 자주 왕래하던 염호석 집을 찾았으나 그는 집에 없었다. 염태원은 조합원들에게 염호석의 행방을 수소문하다 저녁 6시 양산경찰서를 찾아 실종신고를 했다. 그러나 경찰은 직계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실종신고를 받아주지 않다가, 다음날 염태원에게 ‘실종신고를 하라’고 연락했다. 염태원은 16일 오전 10시43분 실종신고를 마쳤다.

유서 내용 알고도 ‘가족장’ 이야기부터

5월16일 오전 양산경찰서 정보보안과 하아무개 경사는 출근하자마자 염호석 실종사건 정보상황보고서를 경남지방경찰청에 올린다. 하 경사는 오전 9시30분 삼성 쪽에 염호석씨 휴대전화 위치추적 결과를 알려줬다. 염태원이 실종신고를 완료하기도 전에 삼성 쪽에 휴대전화 위치추적 결과를 알려준 것이다. 염태원은 이날 점심 무렵에야 염호석의 휴대전화 위치추적 결과가 강원도 강릉이라는 것을 알고 곽형수(현 삼성전자서비스지회 통합지회장)와 함께 차를 몰고 강릉으로 떠났다. 이들은 밤새워 정동진 곳곳을 샅샅이 뒤졌다.

이에 반해 삼성은 사실상 경찰과 수사를 함께했다. 염호석을 찾기보다는 그의 실종 원인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오후 1시 경찰과 함께 염호석이 살던 원룸의 문을 뜯고 들어가 사진을 찍었고, 실종 직전 염호석이 원룸을 나설 때 찍힌 폐회로텔레비전(CCTV) 영상까지 경찰에게서 받았다. 이날 저녁 경찰이 염호석의 친모에게 전화한 내용, 양산경찰서 형사가 염호석의 여자친구와 대화한 내용까지 삼성전자서비스는 물론 삼성전자에까지 전달됐다.

이튿날인 5월17일 오후 2시10분, 염호석이 자신의 차량에 번개탄을 피우고 숨진 채 발견된다. 2시30분 유서 4장도 발견됐다. 그는 유서에 노조 앞으로 “더 이상 누구의 희생도 아픔도 보질 못하겠으며, 조합원들의 힘든 모습도 보지 못하겠기에 절 바칩니다. 저 하나로 지회의 승리를 기원합니다. 저의 주검을 찾게 되면, 우리 지회가 승리할 때까지 안치해주십시오”라고 적었고, 아버지에게는 “제가 속한 삼성전자서비스지회가 좋은 결과가 나온다면 그때 장례를 치러주세요. 그리고 저의 유해는 남김없이 해가 뜨는 이곳 정동진에 뿌려주세요”라고 적었다. 노조에 장례를 맡겨달라는 취지다.

염태원은 강릉경찰서로부터 정동진 인근에서 주검이 발견됐다는 소식을 전달받고 현장으로 갔다. 경찰은 염태원에게 유서가 있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염호석의 아버지 염아무개씨는 아들과 왕래가 거의 없었기에 실종 사실도 경찰을 통해 알았다. 17일 아버지 염씨는 오전 양산서에서 실종신고를 하고 돌아갔다가, 주검이 발견됐다는 소식을 듣고 오후 4시께 양산서를 다시 찾았다. 이때 염씨는 하아무개 정보보안과장과 김아무개 정보계장을 만난다. 하 과장은 아버지 염씨에게 “좌우지간 가족장으로 치러야 편하다. 노조장으로 하지 말고 가족장으로 장례를 치르는 것이 낫다”는 말을 꺼냈다. 이들은 염호석의 유서 내용을 알고 있었지만, 내용을 알려주지 않고 ‘가족장’ 얘기를 먼저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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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문건 “열사가 아님을 부각시켜야 한다”

앞선 내용은 <한겨레21>이 입수한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와해 재판기록과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 보고서, 양산서 하 과장과 김 계장의 뇌물사건 판결문을 재구성한 것이다. 노조는 2014년 1월 파업에 들어가는 등 투쟁 수위를 높였고 이에 따라 삼성은 노동운동권 출신에 노동부 장관 정책보좌관을 지낸 송아무개씨를 ‘자문위원’으로 영입한 뒤 노조 와해 목적의 협력사 기획폐업, 노조 소진 전략 등 다양한 전술로 노조를 압박했다. 노조는 4월 한국경영자총협회와 진행하던 교섭 결렬을 선언하고 ‘5월 총력투쟁’을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염호석이 숨진 것이다.

삼성은 염호석 사망으로 노조의 투쟁이 격화할 것을 우려했다. 삼성 내부 문건에는 “열사가 아님을 부각시켜야 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고, 박상범 삼성전자서비스 대표이사는 최아무개 전무에게 이렇게 문자메시지도 보냈다. “언론전 대응을 위해 철저히 부친이 반노조 편에 서야 한다. (중략) 부친이 아들을 죽게 한 것은 노조라는 것을 알게 해야 한다. 노조에 이용당했다라고.” 삼성은 “장례를 노조장으로 치러달라”는 유언에도 6억원 넘는 합의금을 지급하며 염호석 부친을 회유했고, 경찰은 정보·경비 등 모든 경찰력을 동원해 삼성의 바람대로 ‘가족장’을 치르게 도왔다. 경찰은 그 대가로 돈을 받았다.

이 사건은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와해 사건 전반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노조는 사건 발생 직후 “삼성과 경찰의 시신 탈취”를 주장해왔으나, 아버지 염씨의 위증과 수사기관의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진실이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검찰 수사와 경찰청 진상조사위의 조사로 사건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게 됐다.

염호석의 주검이 발견됐을 때로 돌아가보자. 박상범 당시 삼성전자서비스 대표이사는 5월17일 오후 6시32분 이상훈 삼성전자 경영지원실장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낸다.

박상범 양산 서비스센터 기사 사망건 관련 진행 상황을 보고드리려 전화드렸습니다. 오후 7시께 서비스센터 사장이 부모를 만나 확산되지 않도록 설득 예정입니다.

이상훈 유서는 있나요?

박상범 유서는 4장이 있습니다. 아직 노조는 모르고 경찰에서 넘기지 않게 조치하고 있습니다.

이상훈 서비스 혼자 처리하지 말고 인사(삼성전자 인사팀)와 상의하세요.

박상범 네, 본사에서 강원경찰청장에게 연락해 강릉경찰서로 지시가 내려갔습니다.

여기서 강원경찰청장에게 연락한 사람은 김아무개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인사팀 상무다. 김 상무는 경찰대 3기고, 김아무개 강원경찰청장은 경찰대 1기다. 두 사람은 경찰대 시절 생활실을 같이 썼다. 김 청장은 경찰 진상조사위원회 조사에서 “통화는 했으나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검찰 조사도 받았으나 검찰 관계자는 “유의미한 진술을 얻지 못했다”고 했다.

아버지 “주검도 못 봤다” 합의 거절했지만

삼성은 강원청-강릉서에만 손을 뻗친 게 아니었다. 삼성전자서비스 인사팀 최아무개 전무는 “노조장 대신 가족장으로 치르는 방법을 마련해보라”는 지시를 받았다. 최 전무는 이아무개 삼성전자서비스 북부산지점장에게 양산서 하 과장의 연락처를 알려주며 만나보라고 한다. 이미 삼성이 양산서에까지 ‘노조장 대신 가족장을 치러야 한다’고 요청했음이 간접적으로 드러난다. “삼성에서 나왔습니다. 어떻게 됐습니까.” 이 지점장이 양산서에서 하 과장을 만났을 때는 이미 김 계장이 염씨와 함께 강릉으로 떠난 상황이었다. 하 과장은 김 계장의 연락처를 알려주며 “단양휴게소에서 염호석의 아버지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왜 단양휴게소일까? 경남지방경찰청 정보과 관계자는 강릉으로 향하던 김 계장에게 “유족과 회사가 (가족장으로) 합의하는 데 옆에서 도와줘라. 유족에게 합의가 가능한지 물어보라”고 지시했다. 그 뒤 “가까운 휴게소(단양휴게소)에 가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말한다. 오후 6시40분께 아버지 염씨가 단양휴게소에 도착하니 뒤따라 삼성전자서비스 양산 협력사 도아무개 대표와 이 지점장이 도착했다. 이 자리에서 김 계장은 또 선을 넘는다. “기왕이면 돈 많이 받고 합의하는 것이 좋지 않겠어요.” 그러나 염씨는 “아들 주검도 못 봤다”며 합의를 거절했다.

염호석의 주검이 안치된 강릉의료원에 아버지 염씨가 도착하자, 노조는 유서 내용에 따라 장례를 노조장으로 치를 것을 요청한다. 염씨는 노조에 위임장을 써줬다. 강릉의료원에 있던 윤아무개 삼성전자서비스 인사그룹장은 양산서 김 계장에게 “장례위로금으로 3억~4억원에 가족과 합의할 것을 제안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염씨는 당시 술에 취해 있어 대화가 불가능했다. 삼성은 또 한 번 하 과장에게 “시간을 끌어달라”고 요청했으나, 염호석의 주검은 강릉의료원을 떠나 노조가 마련한 장례식장인 서울의료원 강남분원으로 향했다.

연이은 합의 실패에 삼성은 더욱 마음이 급해졌다. 삼성전자서비스 이 지점장은 날이 바뀐 5월18일 새벽 2시 김 계장에게 “염씨를 설득할 지인을 소개해달라”고 요청한다. 김 계장은 양산서에서 면담할 때 아버지 염씨가 “건달 생활을 할 때 이○○와 친했다”는 말을 한 것을 떠올렸다. 김 계장은 이씨의 연락처를 수소문해 이 지점장에게 넘겼다. ‘브로커’ 역할을 하게 된 이씨는 다음날 아침 양산서 김 계장이 태워주는 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다. 이씨는 서울로 올라오는 차 안에서 염씨에게 “절대 노조에 위임장을 작성하지 말고, 협력사와 합의하라”고 당부했다.

이때 삼성에는 ‘구세주’가 될 만한 경찰이 또 한 명 등장한다. 그는 경찰청 정보국 외근노정팀장이던 김아무개 경정(이하 김 사장)이었다. 그는 주요 노사분쟁에 중재 또는 개입을 하며, 김 경정이라는 직급보다는 ‘김 사장’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김 사장은 삼성전자서비스 인사팀장 최아무개 전무에게 도움 요청을 받고 합의 장소인 르네상스호텔로 향했다. (김 사장의 ‘활약’은 다음 기사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다룬다.)

김 사장은 노조 조합원들이 지키고 있던 장례식장에서 삼성 쪽 직원들의 도움으로 빠져나온 아버지 염씨를 만나, 과거 자신이 해결한 노사분쟁의 구체적 사례들과 합의 금액을 설명했다. 염씨가 “어느 정도 금액이 맞으면 가족장으로 합의하겠다”고 말하자, 김 사장은 6억원이라는 구체적인 금액을 제시한다. 염씨는 합의 당시 3억원, 가족장으로 장례를 치른 뒤 3억원을 받기로 삼성과 합의했다.

이날 저녁 6시께 염씨는 장례식장에 있던 조합원들에게 부산에서 장례를 치르겠다고 밝혔고, 조합원들은 무릎을 꿇고 노조장으로 치르게 해달라 읍소한다. 그러자 브로커 이씨는 “김 사장이 염씨에게 알려준 대로” 10분에 한 번씩 “노조원에게 갇혀서 주검 운구를 못하고 있다”는 112 신고를 반복한다. 장례식장 밖에는 경찰 기동대가 대기하고 있었다. “주검을 꺼내야 한다. 그것이 오늘 작전의 키포인트(핵심)”라는 지시를 받은 기동대는 주검이 운구차에 실리지 않았음에도, 노조가 운구차 이동을 막지 않았음에도 조합원들에게 최루액을 뿌려가며 진압했고, 그 결과 조합원들은 장례방해·공무집행방해 혐의로 25명이 연행돼 재판에 넘겨졌고, 이 가운데 1명은 구속됐다.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염호석 양산분회장이 숨진 이후인 2014년 6월4일, 노조가 노숙농성을 벌이던 삼성 서울 서초사옥 앞에서 염씨의 영정을 배경으로 노조 깃발이 흩날리고 있다. 박승화 기자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염호석 양산분회장이 숨진 이후인 2014년 6월4일, 노조가 노숙농성을 벌이던 삼성 서울 서초사옥 앞에서 염씨의 영정을 배경으로 노조 깃발이 흩날리고 있다. 박승화 기자

합의 당시 3억원, 장례 뒤 3억원

노조는 염호석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하기 위해 주검을 뒤쫓았다. 그러나 염호석의 주검은 경찰의 호위 속에 부산으로 운구됐다. 염씨의 마지막 길은 박상범 삼성전자서비스 대표이사가 당시 출장 중이던 이상훈 삼성전자 경영지원실장에게 보낸 전자우편에 잘 드러난다.

“(전략) 5.18.(일) 10:00시경, 경찰 공조하에 술에서 깬 부친을 비밀리에 설득하여 시신을 부산으로 운구해 조속히 장례를 치르는 것으로 합의 완료했습니다. (중략) 운구차량은 5.19.(월) 02:00경 부산에 도착하였으나, 부친이 예약한 장례식장에 노조원이 집결해 있어, 노조원들을 피해 장례식장을 부산 영락공원으로 일단 변경했습니다. 주검이 최종 안치된 곳은 영락공원이 아닌 다른 병원입니다. 그리고 노조원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현재 일부 유족, 협력사 사장, 팀장들이 영락공원에 있으면서 대기하고 있습니다.”

남은 합의금 3억원은 5월19일 김 사장이 삼성전자서비스로부터 받아 염씨의 형에게 전달했다. 장례가 끝나고 이틀 뒤인 22일 삼성전자서비스 이 지점장은 염호석의 실종부터 장례가 마무리될 때까지 삼성을 도왔던 양산서 김 계장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싶습니다. 직원들 고생했는데 식사라도 하셔야죠”라며 만남을 제의한다. 김 계장은 하 과장에게 ‘돈을 주려나 봅니다’라는 취지로 보고했고, 하 과장은 만나고 오라고 지시한다. 그는 현금 1천만원을 받았다. 이 돈으로 양복을 정보보안과 직원 14명과 함께 맞춰 입었고, 고깃집에서 회식하며 200만원을 썼다. 남은 돈을 두 사람이 나눠 가졌는지에는 서로 진술이 엇갈린다.

모든 지휘계통이 도움을 요청했으니…

두 사람은 구속 기소됐으나 1심에서 하 과장은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2년, 김 계장은 징역 1년2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부정한 행위의 경우 독자적으로 방향을 정한 것 같지 않고, 그 윗선까지 깊숙이 개입된 것으로 보인다. 피고인들로서는 상부의 지시나 명령을 함부로 거스르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는 이유로 ‘선처’했다. 사건과 관련 있는 모든 경찰의 지휘계통에서 삼성이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고 받은 정황이 감형의 이유가 된 셈이다. 사건에 관계된 모든 정보경찰들은 조사 과정에서 “노조장이 치안 부담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항변했으나, 결과적으로 경찰은 삼성의 뜻대로만 움직였다. 노조를 와해하려는 삼성은 돈과 네트워크로 공권력을 이렇게 활용했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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