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만이다. 김정운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수석부위원장은 12월11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을 다시 찾았다. 지난 11월13일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에게 대못을 박았던 바로 그 대법원”이다. ‘공정한 판결’을 요구하며 열흘 가까이 하루 2천배씩을 올렸던 그곳이다. 경기도 평택에서 대법원까지 가는 길이 썩 내키지 않았다. 뻔한 답이 예상됐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대법관이 주문을 읽는 데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한상균 외 9명의 해고무효 소송, 상고를 기각한다.’ 김 수석부위원장은 2009년 정리해고 투쟁 당시에 노조 간부로서 파업을 주도한 혐의로 구속됐다가 징계해고됐다.
파기환송 뒤 뻔한 답… “시간과 차비가 아깝다”
기대가 없었으니, 실망도 없었다. 다만 “평택에서 왔다갔다 한 시간과 차비가 아까울 뿐”이다. 그나마 판결을 귀로 확인하는 시간도 한 달 전보다 짧아졌다. ‘노석주 외 152명의 해고무효 소송,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파기환송한다.’ 그땐 20초 남짓은 걸렸다. 대법원 3부(주심 박보영 대법관)는 “2009년 정리해고는 정당했다”고 판단했다. 6년 동안 계속된 해고노동자들의 질긴 싸움이 시작됐던 뿌리 자체를 흔드는 판결이었다. 재판부는 “회사가 해고 회피 노력을 다하지 않은 것으로 보기 어렵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경영자의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 등 회사 쪽의 주장을 거의 모두 받아들였다.
근로기준법 제24조(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의 제한)에는 정리해고 요건이 이렇게 나와 있다.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어야 하고 △회사는 해고를 회피하기 위한 노력을 다해야 하고 △합리적이고 공정한 해고 기준을 정하고 △해고 회피 방법 등에 대해 근로자 대표와 협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1998년 정리해고를 도입하면서 최소한의 ‘안전장치’로 심어둔 요건이다. 하지만 대법원은 쌍용차 판결에서 이 요건을 상당히 완화해 해석했다.
“법원이 예전엔 기업이 도산을 피하기 위한 예외적인 경우에만 정리해고를 허용한다는 ‘도산회피설’을 기준 삼아 판결했지만, 콜텍 정리해고 무효소송에서도 ‘미래에 다가올 경영상 위기를 이유로 정리해고할 수 있다’고 판결하는 등 판결이 보수화되고 있다.”(11월17일 ‘쌍용차 정리해고에 대한 대법원 판결 관련 긴급좌담회’)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변론을 맡았던 김태욱 변호사의 해석이다.
실제로 쌍용차 판결에 앞서 최근 대법원은 “기업의 전체 경영 실적이 흑자를 기록하더라도 일부 사업 부분이 경영 악화를 겪고 있으면 잉여인력 감축이 불합리하다고 볼 수 없다”(콜텍 정리해고 사건), “기업의 잉여인력 중 적정 인원이 몇 명인지는 경영 판단의 문제에 속하는 것이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경영자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동서공업 정리해고 사건)는 등의 판결을 잇따라 내놓았다.
사법부 멍석 깔자 정부 “정규직 보호 과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2014년 최악의 걸림돌 판결’로 대법원의 쌍용차 판결을 뽑았다. “대법원의 저울은 기업의 정리해고를 쉽게 허용하는 쪽으로 점점 기울어져왔다. 쌍용차 판결은 경영 위기와 경쟁력 강화라는 이름으로 무분별한 정리해고를 하려는 기업들에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판결이었지만, 노동자들에게는 정리해고를 단행하는 기업들을 ‘웬만해선 막을 수 없게’ 만드는 판결이었다.”
사법부가 멍석을 깔아주자, 정부는 기다렸다는 듯 “정규직에 대한 보호가 과도한 수준”(최경환 경제부총리)이라는 등의 발언을 쏟아내며 해고 요건 완화나 해고 절차·요건 등을 담은 가이드라인 제정 작업 등을 저울질 중이다. ‘해고는 살인이다, 함께 살자’던 쌍용차 노동자들의 외침이 2015년 거리 곳곳에서 또다시 울려퍼지게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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