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 최병승씨가 지난 9월11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동료 노동자의 파업 지지 발언를 했다는 이유로 자신에게 20억원의 배상 책임을 부과한 부산고법 판결이 부당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씨는 이날 대법원에 상고했다. 한겨레 박종식 기자
2017년 ‘최악의 판결’로 선정된 것은 대기업의 부당노동행위에 맞서 파업을 벌인 동료 노동자를 격려했다는 이유로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거액의 손해배상 책임을 부과한 판결이었다. 일반 국민의 건강한 상식으로는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판결로 사법권력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왜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검찰의 꼼수 묵인한 법원부산고등법원 민사2부(재판장 조용현)는 지난 8월24일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 최병승씨에게 파업에 참가한 동료들과 함께 20억원의 손해배상금을 현대차에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최씨가 동료 노동자의 파업 집회에 참석해 파업 지지 발언을 하고 집회의 사회를 봄으로써 동료 노동자의 업무방해 행위를 방조했다는 게 이유였다. 앞서 1심은 최씨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2심 재판부는 최씨가 같은 사건의 형사재판 항소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것을 근거로 “불법행위에 대한 배상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다. 따라서 최씨의 형사재판 항소심을 이번에 선정된 ‘최악의 판결’의 원조라 평할 수 있다.
최씨의 형사재판 항소심은 부산고법 형사2부(재판장 박영재)가 맡았다. 이 재판부는 2015년 7월 최씨에게 벌금 4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최씨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상당한 파급력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그의 업무방해방조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최씨가 전국금속노조 미조직비정규직국장을 맡는 등 노동운동 경험이 많고, 앞서 현대차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불법파견을 인정받아 사내 하청노동자의 정규직 전환 요구를 봇물 터지게 한 점, 그리고 2012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현대차 울산공장 앞 송전철탑에 올라가 296일간 고공농성을 해 비정규직 문제의 상징적 인물이 된 점을 “상당한 파급력”의 근거로 들었다. 이처럼 영향력이 큰 최씨가 파업 지지 집회의 사회를 보면서 지지 발언을 한 것은 “동료 노동자의 업무방해를 용이하게 한” 범죄행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이런 재판부의 판단에 대해선 형벌 사유의 엄격한 해석을 강조하는 형법의 기본 원칙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헌법적 기본권인 양심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비판이 이어져왔다. 먼저 최씨가 동료 조합원들의 판단에 상당한 파급력이 있는지는 인간 내면의 의사에 대한 것으로 객관적으로 측정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객관적으로 측정하려면, 파업 참가 조합원에게 최씨의 영향을 받았는지 일일이 확인해야 한다. 검찰이 그런 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았는데도 재판부가 최씨의 파급력을 근거로 업무방해를 방조했다고 판단한 것은 형법의 기본 원칙에 어긋난다.
검찰이 최씨를 업무방해방조 혐의로 기소한 것은 전형적인 ‘맞춤형 기소’였다. 2013년 열린 1심 재판에서 최씨의 업무방해 혐의에 무죄가 선고되자 업무방해 ‘방조죄’라는 혐의를 끌어와 다시 기소했다. 검찰의 고질적인 ‘기소편의주의’ 남용인 셈인데, 이를 견제해야 할 법원이 이상한 법리로 검찰의 꼼수를 묵인했다.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최씨의 파업 지지 발언이 업무방해방조에 해당하면 당시 집회에 참석해 발언했던 사람도 다 방조죄로 처벌해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고 말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형사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이 헌법적 기본권인 양심·표현의 자유와 충돌한다는 점이다. 동료 노동자의 파업에 자신의 견해를 밝힌 것을 형사처벌하는 것은 신념과 가치판단에 대한 양심의 자유를 보장한 헌법의 기본 정신을 무시한 것이다. 그동안 우리 사법부는 공권력으로부터 개인의 기본권을 보호하는 데 소홀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 판결도 이런 평가에 일조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어 보인다.
‘약자 보호’ 사법부 존재 의미 부정양심의 자유는 700여 년 전인 르네상스 시대에 나온 권리다. 인간의 창조성을 말살했던 중세 봉건주의에 대한 저항을 통해 발전했다. 초기에는 신앙의 자유를 뜻했지만 점차 인간성 회복에 필요한 기본권으로 인식되면서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로 확대됐다. 이처럼 유구한 역사를 가진 인간의 보편적 기본권이 2017년 현재에도 우리 법원에 의해 위협받는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사상·표현의 자유는 궁극적으로 사회 발전에 기여한다. 사회구조와 정치체제 등에 대한 다양한 사상이 공정한 경쟁으로 선택받는 과정에서 사회 구성원의 삶의 수준도 높아진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 연방대법원은 사상·표현의 자유를 철저하게 보호해왔다. 대학 교수·강사들에게 공산당을 비롯한 반체제 단체 가입을 금지한 주법을 위헌으로 판결(대학강사 케이시안 대 뉴욕주립대학 이사회·1967년)하는가 하면, 심지어 인종주의단체인 KKK단 지도자의 인종차별 선동 발언도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로 인정(KKK단 지도자 브랜든버그 대 오하이오주 당국·1969년)했다.
최씨의 민사 항소심 판결은 형사판결의 취지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이 판결에 면죄부를 줄 순 없다. 현대차가 당시 파업의 근본 원인을 제공했다는 점을 간과해 법의 공정성과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대법원이 2010년 7월, 2년 이상 불법파견 근무를 한 하청노동자는 현대차가 직접 고용한 것으로 간주된다는 판결을 했음에도 비정규직지회의 정규직 전환 교섭에 일절 응하지 않았다. 대법원 판결에 따른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당한 요구를 외면한 현대차의 잘못은 외면한 채 천문학적 배상금을 하청노동자에게 물도록 판결한 것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한다는 사법부의 존재 의미를 스스로 부정한 것이라 비판할 수 있다.
최씨의 민형사 항소심 판결은 그대로 확정될 뻔했다. 대법원 상고에 필요한 인지대 1500만원을 낼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부산고법의 판결에 분노한 학계와 시민단체 인사들의 모금 활동으로 인지대를 마련해 대법원에 상고했다. 최씨는 과의 통화에서 “당초 목표보다 많은 돈이 모금돼, 다른 비정규직 소송 비용으로 쓰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시민의 건강한 법 감정과 괴리사법부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 가운데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조직이다. 시민 개개인은 물론 선출된 권력까지 심판하는 막강한 권한을 가졌다. 사법권력에 대한 민주적 통제의 필요성이 강하게 요구되는 이유다. 어떤 권력도 시민이 주권을 가진 민주주의 위에 군림할 수 없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은 주권자의 더욱 강력한 통제를 받아야 한다. 법원 판결(결정)이 성역 없는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법리’와 ‘법관의 독립’으로 표현되는 전문성과 독립성도 주권자의 건강한 상식과 동떨어져 존재할 수 없다. 최씨를 둘러싼 두 건의 ‘최악의 판결’은, 시민의 건강한 법 감정과 괴리된 판결은 결국 법관의 소신이 아닌 독단일 뿐이라는 자명한 진실을 다시 한번 분명히 일깨워준다.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심사위원 20자평
김태욱 노동3권이 한국에서 놓여 있는 비참한 현실을 몽땅 보여주는 처참한 판결
박한희 노조할 권리를 가로막는 최악의 판결, 노동3권은 단지 조문이 아니다
안진걸 노동과 연대가 개무시당한 최악의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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