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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청와대 논리가 재판 논리?

박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공개 거부한 청와대 적법하다고 한 서울행정법원, 최악의 판결
등록 2016-12-27 18:43 수정 2020-05-03 04:28
하승수 녹색당 전 공동운영위원장과 당원들이 2016년 3월23일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청와대를 상대로 낸 정보공개 거부처분 취소소송 판결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승수 녹색당 전 공동운영위원장과 당원들이 2016년 3월23일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청와대를 상대로 낸 정보공개 거부처분 취소소송 판결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청와대의 ‘세월호 7시간’ 시간표는 두 버전이 있다. 2014년 8월 버전과 2016년 11월 버전이다. 2014년 8월13일 청와대 대통령비서실은 조원진 새누리당 의원에게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에 대한 보고 및 대통령의 조치 사항’ 시간표를 제출했다. 그리고 2016년 11월19일 청와대는 홈페이지를 통해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 보고·지시 시간표를 새로 공개했다.

비공개 열람·심사도 거부한 청와대

2014년과 2016년 시간표는 다르다. 2014년 버전에 없던 박근혜 대통령의 오후 지시사항이 2016년 버전에선 3개(14시11분, 14시57분, 15시 지시)가 추가됐다. 오전 10시22분과 오후 2시57분 국가안보실 유선보고는 박 대통령의 유선 지시사항으로 바뀌었다. 오전 10시36분부터 오후 5시11분까지 보고사항 중 보고 시각·주체만 있고 내용이 없던 10개 보고사항의 내용이 삽입됐다.

청와대는 참사 당일 보고·지시 내용을 기록한 원본 또는 사본을 공개한 적이 없다. 청와대는 정보공개소송 과정에서 재판부의 비공개 열람마저 거부했다. 청와대가 공개한 두 버전의 ‘세월호 7시간’ 시간표는 2차 가공 자료일 뿐 원본의 존재는 드러난 적이 없다.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 의혹이 2년8개월 동안 지속된 원인 중 하나다.

하지만 2016년 3월23일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재판장 호제훈)는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전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가 대통령비서실장 등을 상대로 낸 정보공개 거부처분 취소소송에서 “참사 당일 대통령에게 서면보고한 내용(이하 ‘서면보고 내용’) 공개를 거부한 청와대의 처분은 적법하다”고 판결했다.

다만 청와대가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비서실 등에서 생산·접수한 기록물 목록’(이하 ‘기록물 목록’), ‘대통령비서실 등의 2013년 3월~2014년 7월 정보 목록과 특수활동비·국외여비 집행내역’(이하 ‘집행내역’), ‘대통령비서실 등의 2014년 7월 인건비 외 예산 지출결의서 및 영수증’(이하 ‘영수증’)의 공개를 거부한 처분은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앞서 하 대표는 청와대가 정보공개를 거부하자 2014년 10월10일 소송을 냈다. 대통령비서실장이 2014년 8월28일 ‘서면보고 내용’을 비공개 결정할 때 사유는 이렇다. “재판 또는 수사, 공소의 제기 및 유지에 관한 사항이거나 의사결정 과정 또는 내부 검토 과정에 있는 내용이어서 공개될 경우 직무수행이나 업무의 공정한 수행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 개인에 관한 사항이 포함되어 있어 공개될 경우 사생활의 비밀 또는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

나머지 ‘기록물 목록’ ‘집행내역’ ‘영수증’ 정보에 대해서도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다”거나 “업무의 공정한 수행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는 사유를 달았다.

재판부는 청와대 주장만으론 각 정보의 비공개 사유와 범위를 판단할 수 없었다. 2015년 9월22일 재판부는 비공개로 각 정보를 열람해 판단하겠다고 밝혔다. 피고 대통령비서실장 등에게 “비공개 열람·심사를 진행할 예정이므로, 원고가 공개를 청구하는 정보를 제출하기 바란다”는 ‘석명준비명령’을 한 것이다. “이 명령에 따르지 않는 경우엔 (법률에 따라) 주장이나 증거 신청이 각하되는 등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경고도 덧붙였다. 하지만 청와대는 끝까지 명령에 불응했다.

업무 수행 방해가 알 권리에 앞선다는 근거는…

청와대는 결국 ‘불이익’을 받았다. 재판부는 “‘기록물 목록’ ‘집행내역’ ‘영수증’ 공개를 거부한 대통령비서실장 등의 처분은 위법하다”고 판결하면서 주된 이유로 청와대의 ‘비공개 열람·심사 절차 불응’을 들었다. “청와대가 비공개하는 사유를 구체적으로 증명하지도 않으면서 비공개 열람·심사 절차에도 응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재판부는 청와대가 ‘비공개 열람·심사 절차’에 불응한 ‘서면보고 내용’에 대해선 공개거부 처분이 적법하다는 다른 결론을 내렸다. 청와대의 ‘명령 불응’에 대한 언급조차 없었다.

다른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을까. 판결의 논리 구조는 이렇다. ①대통령비서실 등은 대통령 소속 기관인 국가기관으로서 정보공개법이 적용된다. ②‘서면보고 내용’이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지정될 예정이라고 해서 대통령지정기록물에 준하는 비공개 대상 정보라고 할 수 없다. ③하지만 대통령비서실장은 대통령이 이 정보를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지정할 예정이라고 분명하게 밝혔다. ④이 정보는 세월호 사고 처리 관련 대통령 의사결정 과정에 제공된 자료로, 공개시 업무의 공정한 수행 등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 ⑤(그러므로) 정보공개 거부 처분은 적법하다.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지정될 예정일 정도로 기밀 자료여서 공개하면 업무의 공정한 수행에 큰 지장을 줄 수 있다’는 청와대 논리 그대로다.

판결문에선 국민의 알 권리와 공공기관 업무의 공정한 수행 가운데 어느 것이 우선해야 하는지 언급이 없다. 다만 대법원 판례를 인용했을 뿐이다. “(이런 경우엔) 정보 비공개에 의해 보호되는 업무 수행의 공정성 등의 이익과, 정보 공개에 의해 보호되는 국민의 알 권리 보장 및 국민의 국정 참여, 국정 운영의 투명성 확보 등의 이익을 비교하여 구체적인 사안에 따라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대법원 2014. 7. 24. 선고 2013두20301 판결 등 참조) 판례를 인용했을 뿐 정작 두 가지 이익을 비교하는 판단 과정은 전무하다. 1심 판결까진 1년5개월이 걸렸다.

2016년 12월23일 현재 서울고등법원 행정4부(재판장 조경란)가 항소심 재판 중이다. 청와대는 지난 8월17일 항소심 준비서면을 내면서 재판부에 미국·독일·일본 법령 사실 조회를 신청했다. 재판부가 외국의 정보공개 관련 법제 현황과 사례를 직접 알아봐달라는 요청이었다. 하지만 외국 법령은 재판의 기준이나 쟁점이 아니었다. 소송 당사자가 외국 법령이나 문헌 내용이 재판에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직접 구해 재판부에 제출하는 것이 통상적인 일이다.

소송 당사자가 할 일도 재판부가 대신

하지만 재판부는 지난 8월30일 항소심 첫 변론기일에서 청와대의 이례적인 요구를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미국·독일·일본 주재 한국대사관에 사실조회서를 보냈다. 재판부는 세 나라 대사관의 회신을 기다린다는 이유로 첫 변론 이후 넉 달째 기일을 정하지 않고 있다.

1심 판결문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당일 ‘서면보고 내용’을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지정할 예정이다. 대통령지정기록물은 대통령 임기가 끝난 다음날부터 15년 또는 30년 이내에 공개되지 않는다. 박 대통령 임기 전 확정판결이 나오지 않으면 그 기록은 한동안 봉인된다.




심사위원 20자평


한상희   이 시대 법원에 도사린 아이히만들에게 구원은 없다
전진한   정보공개가 공정한 업무 수행을 방해? 국민들은 일손이 안 잡힌다
홍성수   소모적 논란을 법원이 조기에 끝낼 수 있는 기회가 날아갔다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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