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폭력 희생자의 존엄을 위한 묘수였을까, 판사 자신의 면책을 위한 꼼수였을까.
평소 건강하던 백남기 농민은 2015년 11월14일 민중총궐기에서 경찰이 쏜 물대포에 머리를 맞아 쓰러진 뒤 단 한 번도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317일이 지난 2016년 9월25일 사망했다. 사인은 명백했지만 경찰은 ‘병사’ ‘제3의 외력’ 따위를 거론하며 사망 당일 밤 부검영장을 신청했다. 국가폭력에 의한 민간인 사망이라는 사건의 본질을 훼손하려는 의도가 뻔했다. 이에 제동을 건 것은 사법부였다. 서울중앙지법은 경찰 영장 신청 2시간40분 만인 9월26일 새벽 1시40분께 “부검의 필요성과 상당성이 없다”며 부검영장을 기각했다.
하지만 경찰은 영장 기각당한 날 밤 또다시 부검영장을 신청했다. 사법부는 표변했다. 서울중앙지법은 경찰에 추가 소명자료 제출을 요구한 끝에 9월28일 부검영장을 발부했다. 국가폭력 사망사건의 진상 규명은 또다시 지연됐고 시신 부검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만 지리하게 이어졌다.
이 부검영장은 전례없는 ‘조건부 영장’으로 발부됐다. ‘압수수색 검증의 방법과 절차에 관한 제한’이라는 별도 항목에서 부검 장소나 참관인 선정 등 5가지 항목에서 유족의 의사를 반영하라는 조건을 명시했다. 초기에는 판사가 유족 의사에 반하는 일방적인 부검 집행을 제한하기 위해 내놓은 묘수라며 “고심했다, 노력했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조건부 영장의 실체는 10월5일 서울중앙지법에 대한 국회 국정감사에서 드러났다. 이날 출석한 강형주 서울중앙지법원장은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영장 제한은 권고 규정이 아니라 의무 규정이냐”는 물음에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런데 주광덕 새누리당 의원의 “어느 장소에서 부검을 할지 수사기관과 가족이 협의하라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는 질문에도 “그런 취지로 해석할 수 있다”고 답했다. 사실상 부검을 해도 되고, 안 해도 된다는 이중 플레이였다. 부검영장에는 아무런 사법적 판단도 들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고 백남기 농민 유족의 법률 대리인 조영선 변호사(법무법인 동화·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는 “정치적이었다기보다는 어느 쪽에서도 욕먹고 싶지 않았던 판사의 면피성 판결”이라고 했다. ‘올해의 판결’ 심사위원단이 서울중앙지법 성창호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발부한 부검영장을 ‘나쁜 판결’로 꼽은 이유도 비슷하다. 홍성수 심사위원(숙명여대 법학과 교수)은 “해석의 여지가 있는 영장이라는 것 자체가 문제다. 욕을 먹더라도 법리적으로 따져 한쪽 편을 드는 것이 사법부의 숙명이다”라고 말했다.
홍성수 법원의 애매한 줄타기, 문제는 더 꼬였다
여연심 눈을 의심케 하는 독특한 조건부 영장 발부, 집행되지 않아 천만다행
류민희 균형적 ‘솔로몬’을 시도했으나 사실은 경찰에 면죄부를 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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