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정관절제)과 낙태(임신중절) 수술을 운명처럼 받아들였다. 한센인 강아무개(78)씨 이야기다. 지난 4월29일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 민사2부(재판장 유영근)는 국가가 한센인들에게 자행한 강제 단종과 낙태에 대해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전남 장흥 출신인 강씨는 25살 무렵 한센인 집단촌이 있는 전남 고흥 소록도에 들어갔다가 아내를 만났다. “정관수술을 해야 가정을 이룰 수 있다는 허락이 떨어졌다.”
“태아 생명권 침해한 반인륜적 행위”
국가는 한센인들에 대해 전염병을 옮긴다며 단종·낙태를 시행했다. 2006년 서울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한센인 인권실태조사 결과 발표를 듣던 한 참가자가 만감이 교차하는 듯 고개를 숙이고 있다.
재판부는 강씨 등 한센인 19명이 국가의 단종·낙태 수술 정책으로 피해를 입었다며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정관절제 수술을 받은 9명에겐 3천만원씩, 임신중절 수술을 받은 10명에겐 4천만원씩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또 “부부 동거를 원하는 한센인들을 상대로 국가가 강제 수술을 받게 한 것은, 법률상 근거 없이 신체를 훼손당하지 않을 권리와 태아의 생명권을 침해한 반인륜적 행위”라고 밝혔다.
이번 판결의 가장 큰 의미는 한센인들에게 자행된 반인륜적 불법행위에 대한 국가의 배상 책임을 처음으로 인정했다는 점이다. 정부는 전염성이 낮고 사실상 완치가 가능하며 유전되지 않는데도 한센병 환자에 대해 격리 정책을 유지했고, 자녀 출산 권리마저 박탈했다. 이번 판결은 한센인들의 명예 회복을 위한 첫걸음이 됐다. 재판부는 특히 소멸시효 기산점(起算點)을 진상 규명 시점으로 폭넓게 인정했다. 강씨 등은 1955~77년 한센병에 걸려 국립 소록도병원 등에서 생활했다. 단종·낙태 등 불법행위가 일어난 시점은 길게는 64년, 짧게는 36년 전이다. 민법상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때로부터 3년이 지나면 손해배상 청구권의 시효가 소멸된다. 하지만 재판부는 정부 산하 한센인 피해사건 진상규명위원회가 피해 사실을 통지했던 2010년 6월부터 3년 내인 2013년 3월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한 것은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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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는 “한센인들에게 단종 또는 낙태 수술을 한 것은 모두 당사자들의 동의를 받았고, 한센병의 전염을 예방하고 병원의 수용 한계 등을 고려한 부득이한 조처였다”는 정부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센인들이 설령 결혼하기 위해 단종과 낙태 수술에 동의했다고 하더라도 일반 사회로 진출하기 힘들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것”이라고 봤다.
일본과 달라도 너무 다른 피해 배상
이번 판결은 한센인 530명이 단종과 낙태로 피해를 입었다며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 4건 가운데 첫 판결이다. 강씨 등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는 10월 광주고법에서 열린 항소심에서도 1심 판결 취지가 그대로 유지됐다. 정부는 한센인피해사건진상규명 및 생활지원법에 따라 진상조사에 나서 2013년 7월 6400여 명을 피해자로 인정했지만, 그 피해에 대해선 배상하지 않고 있다. 일본이 1996년 인권침해에 대한 사죄와 함께 800만~1400만엔의 일괄 배상을 한 것과 비교된다. ‘한센인권변호단’(단장 박영립) 조영선 변호사는 “정부는 지금이라도 항소를 취하하고 일괄적인 피해자 배상 법안을 만들어 배상하고 사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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