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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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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독까지 벗겨줄 수 있을까

[표지이야기] 생명 OTL-빈곤과 죽음의 이중나선 /

삶에서 누린 것 없는 이들이 지상을 떠나는 마지막 계단…

의료뿐 아니라 정서적·사회적 증상 치유도 절실
등록 2010-12-17 10:19 수정 2020-05-03 04:26

“몸 관리를 잘해야 할 거예요.”
호스피스 병동의 한정희 간호사가 처음 만났을 때 건넨 말이다. 그는 “기가 쉽게 빠져나간다”고 덧붙였다. 환자들을 대하는 데 그만큼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는 뜻이다. 환자들의 처지에 한 발짝 다가서면 오히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말이다.

신체적·정서적·사회적·영적 돌봄

» 성가복지병원의 한 수녀가 병원 7층 독실에서 환자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한국가톨릭호스피스협회는 호스피스의 중요한 기능으로 ‘정서적·사회적 돌봄’을 꼽았다. 한겨레21 정용일

» 성가복지병원의 한 수녀가 병원 7층 독실에서 환자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한국가톨릭호스피스협회는 호스피스의 중요한 기능으로 ‘정서적·사회적 돌봄’을 꼽았다. 한겨레21 정용일

이곳의 말기 환자들은 다가올 죽음과 매일 마주친다. 죽음은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있는 체험이 아니다. 두려움과 외로움을 감당하기는 쉽지 않다. 다시 건강을 회복하겠다는 희망마저 버려야 한다. 예전처럼 건강하게 거리를 걷거나 아이를 안을 수 있다는 희망은 포기해야 한다.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하면 그 희망을 조금씩 허무는 과정을 밟게 된다. 성가복지병원 호스피스에 들어오는 환자들에게는 아예 다음 서약서 문장의 빈칸에 이름을 적고 서명하게 한다.

“본인 ______ 환자는 치료를 위한 어떤 것도 그리고 어떤 검사도 더 이상 요구하지 않겠으며 다만 통증조절을 통하여 신체적 아픔을 조절해주(는)… 호스피스 프로그램에서 하는 일을 따르기로 서약합니다. 퇴원은 자의에 의해 항상 가능함을 인식하고 다만 의사와 호스피스 팀과 상의한 후에 결정할 것을 서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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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보면 폭력적으로 보이는 서약서는 결국 환자가 회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내려놓게 하기 위한 장치다. 거짓된 희망은 정직한 절망보다 무섭다.

언뜻 보면 폭력적으로 보이는 서약서는 결국 환자가 회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내려놓게 하기 위한 장치다. 거짓된 희망은 정직한 절망보다 무섭다. 죽음을 차분히 받아들이고 삶을 정리할 시간을 주는 것이 호스피스의 정신이다. 한국가톨릭호스피스협회가 펴낸 를 보면, 호스피스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완치가 불가능하여 죽음이 예견되는 환자와 그 가족들 간의 신체적, 정서적, 사회적, 영적 증상들을… 돌봄으로써 말기 환자의 삶의 질을 높이고 편안한 임종을 이루게 하는 총체적 돌봄이다.” 호스피스에서 방점을 찍는 것은 환자의 심리적 안정과 통증 완화다. 환자들에게 흔히 진통제와 신경안정제, 항우울제를 처방하는 이유다. 통증이 심하면 마약성 진통제를 맞기도 한다. 지난 12월7일 사망한 김성범씨에게는 마지막 날까지 매일 포도당 수액과 함께 마약성 진통제(Morphine Sulfate)가 20mg씩 투여됐다.

인프라가 그나마 잘 갖춰진 성가복지병원 호스피스에서도 위의 책에 나온 정서적·사회적 증상을 돌보기에는 아직 벅차다. 의료진과 수녀들은 주로 환자의 영적·신체적 증상을 돌본다. 더욱이 다른 종교를 가진 환자들은 그들의 종교를 존중한다. 영적인 배려에 한계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요세파 수녀는 “환자의 심리적이고 정서적인 안정을 도와줄 수 있는 상담 등의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마지막까지 불우하지는 않도록

특히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환자들의 마음에는 시퍼런 멍이 든 경우가 많다. 마음의 응어리는 생의 마지막 순간에 공격적으로 발산되기도 했다. 이곳 간호사들은 과거의 한 여성 환자를 대표적인 예로 들었다. 그 환자는 아예 입원실 바닥을 굴렀다. 간호사나 수녀들에게 “당신들은 나보다 가진 것도 많고, 배운 것도 많지 않은가. 나한테 잘해라” 하고 외쳤다. 남자 의사에게는 “당신은 게다가 남자가 아니냐”라고 소리쳤다. 삶에서 누린 것이 적은 한은 그렇게 터져나왔다. 박영숙 간호사는 “몸에 독이 있으면 빼내야 하는 것처럼, 환자와 가족의 마음에 묵은 독도 마지막 순간에 가서는 빼내도록 도와주려 한다”고 말했다.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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