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font color="#C12D84">[인권 OTL-숨은 인권 찾기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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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다희(22)씨가 다리를 다친 건 3주 전이었다. 철퍼덕, 어쩌다가 그렇게 인대가 파열됐다. 반깁스를 하고 절뚝이는 일상이 시작됐다. 그는 “갑자기 지하철, 버스 정류장, 횡단보도 등 내가 지나다니는 모든 곳이 비장애인 위주의 이기적인 시설임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대학생인 그의 등굣길은 도보-지하철-버스-도보의 대장정이다. 화요일, 아침 9시30분에 시작하는 수업을 듣기 위해선 8시 전에 집에서 나와야 한다. 서울 지하철 4호선 상계역에서 지하철을 타 노원·창동역을 지나 쌍문역쯤 가면 어느새 몸이 공중에 뜬다. 발이 땅에 닿지 않아도 넘어질 일이 없는 ‘꼭 낀’ 상태다. 그렇게 혜화역까지 온다.
노약자 우선석에 앉고 싶지만 발을 다치고도 그곳은 범접하기 어려운 구역이다. 특히 긴 바지를 입고 있을 때면 깁스가 잘 보이지 않아 눈총이 따갑다. 한번 앉았다가 한 할머니에게 일어나란 압력을 받은 이후부터는 언감생심 꿈도 안 꾼다.
지하철 엘리베이터도 포기했다. “젊은 것이…”라는 시선에 대한 부담감이 너무 크다. 각종 광고에서도 ‘지킬 건 지킨다’거나 ‘운동하는 셈 치면 되고~’라고 가르치지 않나. 그렇다고 이 살벌한 출근 시간에 자리 양보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오히려 절뚝거리며 계단을 올라가는 도중에 “뭐야, 왜 이렇게 천천히 가!”라며 그를 밀치고 간 사람들도 있다.
에티켓이 바로 서지 않은 세상에 화도 났다. 그는 “지하철역 에스컬레이터만 해도 가운데 서기, 두 줄 서기, 다시 한 줄 서기 등으로 얼마나 오락가락했냐”면서 “제대로 된 에티켓을 교육한다면 공중 화장실 한 줄 서기처럼 금방 정착되고 더 쾌적한 환경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이용하는 혜화역 4번 출구는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가 없다. 지하철역을 빠져나오는 데만 10분이 걸려 버스 정류장에 도착. 이제 갈아탈 버스는 만만치 않은 상대다. 학교 후문까지 가는 버스는 20분간 춤을 춘다. “사람도 많은데 운전이 험하다 보니 잡을 데도 없는 사람들이 넘어지고 밀리고, 균형잡기가 힘들어요. 제가 자리를 잡기도 전에 급출발하고 내리려고 이동하는데 급브레이크 밟는 식이죠.”
그는 지난 3주간 이 버스 안에서 오도독, 수없이 발을 밟혔다. 그 결과 깁스를 풀기로 한 6월28일, 병원에서는 “상태가 너무 안 좋아 아직 풀 수 없다”는 말을 듣고 왔다. “어쨌든 저는 이제 곧 깁스를 풀고 걸어다닐 텐데, 장애인들은 계속 불편해서 어떡하나요. 우리 모두 장애인이 될 수 있는데….”
자신을 흘낏흘낏 바라보던 시선이 부담스러웠다는 그는 이제 혼잡한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장애인을 마주치면 못 본 척해야 할지 말지 고민이란다. 쳐다보는 시선도, 애써 무시하려는 시선도 모두 상처가 될 것 같기 때문이란다. “장애인과 함께 생활하는 교육이 우리에겐 너무 안 돼 있다”는 그는 한 달간의 장애 체험으로 사회를 밑바닥부터 다시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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