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공간] 성종은 성공하고 연산군은 실패한 이유?“왕이 ‘그대가 죽음에 임해서도 말을 바꾸지 않는 것은 ‘신의’라는 말 때문에 그런 모양이다. (…) 내가 그대를 옥에 가둔 것은 그대가 고집하기 때문이다. (…) 이제부터 말할 만한 일이 있거든 극진히 말하라. 내가 가상하게 받아들이겠다. 그대가 의기가 있고 굴하지 ...2022-10-10 20:57
[역사 속 공간] 이순신은 왜 선조의 명령을 거부했나?“신하로서 임금을 속인 자(이순신)는 반드시 죽이고 용서하지 말아야 한다. 이제 끝까지 고문하여 그 내막을 밝혀낸 뒤 어떻게 처리할지 대신들에게 물어보라.” -1597년 3월13일 에서 선조의 발언“지난번에 그대의 직책을 교체하고 그대에게 죄를 이고 백의종군하도록 한 ...2022-09-15 00:01
[역사 속 공간] 김정호, 위대한 지도 남기고 사라진 ‘노웨어 맨’“백성이 여행하고 왕래하는 데 무릇 수로나 육로의 험하고 평탄함에 따라 나아가고 피하는 것을 몰라서는 안 된다. 세상이 어지러우면 이를 말미암아서 쳐들어오는 적을 막아 강폭한 무리들을 제거하고 시절이 평화로우면 이로써 나라를 경영하고 백성을 다스리니 모두 내 글을 따라...2022-06-28 19:56
[역사 속 공간] ‘용산’에는 대통령 집무실이 없다“최사추 등이 보고하기를, ‘신들이 노원역, 해촌, 용산 등 여러 곳에 나아가서 산수를 살펴봤으나 도성을 건설하기에 합당하지 않았으며, 오직 삼각산 면악의 남쪽은 산 모양과 물의 흐름이 옛 문서와 부합합니다’” - 숙종 6년 1101년 10월최근 대통령실 이전으로 국방...2022-05-26 02:13
[역사 속 공간] 일제 총독 관저만 찾아다니는 한국 대통령실1905년 말 을사늑약을 맺은 일제는 1906년 2월 조선에 통감부(뒤의 총독부)를 설치했다. 1대 통감은 이토 히로부미였다. 통감부는 임시로 현재의 서울 광화문 앞 ‘외부’(외교부) 건물(대한민국역사박물관 자리)을 쓰다가 1907년 서울 중구 예장동 ‘왜성대’(서울애...2022-04-09 10:53
[역사 속 공간] 숙종, 붕당정치를 ‘죽임의 정치’로 바꾸다“윤휴가 ‘대비의 동정을 맡으라’고 한 말은 그 본심이 있는 곳이 이미 극도로 흉악하고 잘못됐다. 또 ‘역적 허견의 은밀한 사주를 받아 체찰부의 재설치를 찬성한 것은 오로지 역적 이남(복선군)의 처지를 위한 것’이라는 말이 고발자인 정원로의 진술에서 나왔다. (…) 그...2022-03-19 02:39
[역사 속 공간] 왜 대선 후보들은 청와대를 떠나려 할까?“중서문하성에서 보고하기를 ‘새로 남경(현재의 서울)을 만들려면 (…) 산수의 형세를 따라 동으로는 대봉(큰 봉)까지, 남으로는 사리(모랫말)까지, 서로는 기봉(갈림봉)까지, 북으로는 면악까지를 경계로 하기를 청합니다’라고 하니 왕이 따랐다.” - 숙종 7년 1102년...2022-02-12 21:14
[역사 속 공간] 김상헌, 조선 후기 대의명분의 화신이 되다“천 리 오랑캐 모래땅에 날마다 바람 부니천지가 모두 어둠 속으로 들어간다.내 집은 본디 맑고 깨끗한 땅에 있으니날리는 붉은 먼지 하나 받아들이지 않는다.”-김상헌, ‘날마다 바람 부니’(일일풍), 1641년 청나라 선양에서 쓴 시왜란과 호란을 거친 조선 후기의 핵심 ...2022-01-29 19:52
[역사 속 공간] 이방원의 복수, 이방원의 유산“의정부에서 보고했다. ‘옛 제왕의 능묘가 모두 도성 밖에 있는데, 지금 (신덕왕후 강씨의) 정릉이 성안에 있는 것은 적당하지 못하니, 밖으로 옮기게 하소서.’ (왕이) 그대로 따랐다. 정릉을 도성 밖 사을한(현 정릉동)의 산기슭으로 옮겼다.” ( 1409년 2월23일...2022-01-02 01:09
[역사 속 공간] 경복궁 옆 송현동, 정도전의 피로 물든 땅“원칙을 지키고 성찰하는 데 공을 들였고책 속의 성현을 저버리지 않았다삼십 년 동안 어려운 일에 힘써왔는데송정(송현)에서 한번 취하니 헛일이 됐구나”-정도전, ‘스스로 비웃다’(자조), 1398년 8월26일2021년 11월10일 문화체육관광부는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2021-12-15 03:46
[역사 속 공간] 콤플렉스 왕 광해군, 궁궐 건축에 미치다“왕(광해군)이 일찍이 지관(풍수가) 이의신에게 몰래 묻기를 ‘창덕궁은 큰일을 두 번 겪었으니 내가 머물고 싶지 않다’고 말했는데, 이는 노산군(단종)과 연산군이 폐위된 일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의신이 대답하기를 ‘이는 고금의 제왕가에서 피할 수 없었던 변고입니다. (...2021-11-20 16:59
[역사 속 공간] 통의동 백송은 뉘 집 나무였나?창의궁은 그 어떤 곳인가/ 어의궁과 같다고 어찌 감히 견줄까/ 용흥궁이라고 부르기엔 덕이 부족하다/ 어필을 걸었으니 만에 하나 감당할까/ 동네는 장의동으로(장한 뜻으로) 다섯 사당을 품고 있다/ 양성헌 일한재는 부왕이 하사한 이름이자 내 이름/ 일청헌 거려사는 몇 년을...2021-10-31 14:32
[역사 속 공간] 정도전의 경복궁, 이방원의 창덕궁“판삼사사 정도전에게 분부하여 새 궁궐의 여러 전각의 이름을 짓게 하니, 정도전이 이름을 짓고 이름 지은 의의를 써서 올렸다. 새 궁궐을 ‘경복궁’이라 하고 (…) ‘오문’(남문)을 ‘정문’(현 광화문)이라 했다.”( 1395년 10월7일)“다시 한양에 도읍을 정하고,...2021-10-11 15:55
[역사 속 공간] 개화기 역관 형제의 운명을 가른 ‘언어’“우리 이웃 나라들(중국과 일본)은 최근 서양과 외교를 맺은 일을 계기로 좋지 않았던 과거를 다 묻어버리고 서양의 우수한 기술을 배우고 있다고 한다. 이웃 나라들의 이런 태도는 단순히 눈앞의 위기를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아니다. 멀리 앞을 내다보는 현명한 계략에서 비롯한...2021-08-21 20:31
[역사 속 공간] 연암 박지원과 친구들, 청계천에서 놀다“술을 더 마시고 크게 취하여 운종교(광통교)를 거닐고 난간에 기대어 옛일을 이야기했다. 당시 정월 보름날 밤에 유연이 이 다리 위에서 춤추고 나서 이홍유의 집에서 차를 마셨다. 혜풍 유득공이 장난삼아 거위를 끌고 와 여러 번 돌리면서 종에게 분부하는 듯한 시늉을 하여...2021-07-17 1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