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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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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재앙 아닌 ‘인재’… 사람도 살고 새도 살려면

충돌 위험 큰 새만금신공항 포함 8곳 공항 추진 중
“참사 예방하려면 정밀 데이터 장비에 투자해야”
등록 2025-02-01 16:21 수정 2025-02-02 09:18
2021년 10월7일 새만금신공항 계획부지인 수라갯벌에서 오동필 새만금신공항 백지화공동행동 공동집행위원장이 찍은 항공기 조류충돌 위기 사진. 새만금신공항 백지화공동행동 제공

2021년 10월7일 새만금신공항 계획부지인 수라갯벌에서 오동필 새만금신공항 백지화공동행동 공동집행위원장이 찍은 항공기 조류충돌 위기 사진. 새만금신공항 백지화공동행동 제공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들은 2025년 1월14일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현안질의’를 열고 국토교통부·한국공항공사·제주항공 등을 상대로 비판을 이어갔다. 주로 조류충돌 예방 미비, 콘크리트 둔덕, 제주항공의 무리한 운송 및 기체 결함 의혹 등과 관련한 질의였다. 그러나 이날 회의에선 국회 스스로를 향한 질문은 없었다. 그간 정치권은 지역 민심을 의식해 우후죽순 공항 이전과 신설을 공약으로 내걸거나,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특별법 제정 등을 통해 성급하게 신공항 및 공항경제권 조성을 추진해왔다.

“새만금신공항, 조류충돌 위험 가장 높다”

우리나라 국제공항은 총 8개로 지역별로 분산돼 있다. 수도권의 인천·김포 국제공항, 강원도의 양양국제공항, 충북의 청주국제공항, 대구·경북의 대구국제공항, 경남의 김해국제공항, 전남의 무안국제공항, 제주도의 제주국제공항 등이다.

하지만 이 밖에 7개의 국내공항(△원주 △군산 △포항 △울산 △광주 △여수 △사천)이 있고, 건설 및 협의가 추진되고 있는 공항만도 8개다(△백령 △서산 △울릉 △새만금 △대구경북 △흑산 △가덕도 △제주제2). 지방자치단체장이 공약으로 내건 공항도 2개(△경기국제 △포천) 더 있다.

문제는 ‘조류충돌’이 이번 참사의 1차적 원인이라는 추측이 있는 가운데, 무안국제공항뿐 아니라 새만금·제주제2·가덕도·흑산·백령도·울릉 등의 공항 입지도 철새도래지 인근이란 지적이 나온다는 거다. 1월21일 시민·환경단체들이 참여한 ‘새만금신공항백지화공동행동’은 세종시 국토교통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새만금신공항 추진을 당장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단체는 “국토부가 제출한 새만금신공항 전략환경영향평가(2021년 9월)에서 전국 공항의 조류충돌 위험도와 새만금신공항 조류충돌 위험도를 비교 평가한 결과, 새만금신공항은 현재 운영 중인 전국의 모든 공항뿐만 아니라 신규 추진 중인 가덕도신공항, 제주제2공항, 흑산공항을 통틀어 조류충돌 위험도가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번 참사는 “명백한 인재”라고 주장했다.

 

“공항 입지의 타당성을 평가할 때 가장 중요한 요건은 ‘항공기 안전이 담보되는 입지’입니다. 국제적으로 항공기 조류충돌의 약 99%가 공항 반경 13㎞ 이내에서 발생합니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에 따르면 공항 반경 13㎞ 이내엔 야생동물 위험관리 계획이 필요합니다. 무안국제공항은 입지 자체가 대규모 조류서식지이고, 반경 13㎞가 철새도래지·경작지·저수지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공항 입지가 될 수 없는 곳입니다. 심지어 8㎞ 이내에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을 포함한 조류보호구역이 존재합니다. 이번 조류충돌은 불가항력의 자연재해가 아닙니다. ‘공항을 지어선 안 될 철새도래지에 공항을 건설한 국토부’와 ‘입지의 타당성을 엄밀히 검토하지 않고 전략환경영향평가와 환경영향평가를 통과시켜준 환경부’가 초래한 명백한 인재입니다.”(새만금신공항백지화공동행동 기자회견 중에서)

또다시 비극이 발생하는 걸 막으려면 이미 건설된 공항엔 개선이, 아직 지어지지 않은 공항엔 더 치밀한 논의가 필요하다.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은 1월14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서 지역균형발전 등 관점에서 지역별 국제공항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며 전국 공항의 조류충돌 예방 인력과 장비를 보강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2025년 1월21일 세종시 국토교통부 북문 앞에서 기자회견 중인 새만금신공항 백지화공동행동 활동가들. 새만금신공항 백지화공동행동 제공

2025년 1월21일 세종시 국토교통부 북문 앞에서 기자회견 중인 새만금신공항 백지화공동행동 활동가들. 새만금신공항 백지화공동행동 제공


‘조류활동 데이터 축적’이 중요하다

공군 제20전투비행단 조류감독관으로 재직하면서 ‘서산기지 조류도감’을 발간하고 서산공군기지에 국내 최초의 ‘조류탐지 레이더’ 도입을 건의했던 현동선 조류충돌방지연구소장은 “사고가 나면 당장 장비를 도입해야 한다고 하는데, 지금 이 시점에서 논의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조류탐지 레이더는 통상 30억원 정도라고 하지만 제조사별로 가격과 기능이 다양해, 국토부와 국민이 ‘왜 이 장비가 필요한지, 현장에서 어떻게 쓰이는지’ 등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있어야 꼭 필요한 장비를 도입해 또 다른 참사를 막을 수 있다는 얘기다.

 

“가창오리는 수십만 마리가 떼로 다니기도 해요. 이번에 무안국제공항 관제탑에서 조종사한테 위험하다고 30초라도 먼저 얘기했으면 피할 수 있었을 텐데 못한 이유가 뭘까요? 사람이 육안으로 비행기와 새가 어떤 고도에서 정확히 맞닥뜨릴지 판단할 수가 없죠. 레이더가 있으면 모니터에 실시간 속도·거리·크기 등 기본 정보가 다 표시돼요. 서산기지에서 미리 조종사한테 알려서 조류충돌을 막은 경우도 많았고요. 그런데 사실 이게 만능은 아니에요. 실시간 탐지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예방’인데 이 예방할 수 있는 ‘데이터’를 만들어내는 게 레이더예요. 서산기지에 있을 때 조류충돌 문제로 지자체·농부·환경단체들과 늘 부딪혔어요. 지자체들은 ‘버드랜드’ 같은 관광 자원을 만들고, 농부들은 새 먹이가 되는 작물을 기르고, 환경단체가 말하는 것처럼 새들도 살 권리가 있으니까요. 현실에서 타협점을 찾기가 쉽지 않아요. 그런데 레이더를 도입하고 나자 이들을 만날 때 제시할 수 있는 데이터가 생긴 거예요. 사람이 말로 하면 안 믿지만 데이터는 믿는 거죠. 그래서 여러 장비 중에 데이터를 더 정밀하게 수집·보관할 수 있는 장비에 투자해야 해요.”(현동선 소장)

현 소장은 특히 독일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공항 사례를 참조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2024년 7월 조류탐지 레이더 회사의 초청으로 견학을 갔었는데, 이곳엔 조류퇴치 전담 인력이 2명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이들이 들고 다니는 태블릿피시에 레이더·조류퇴치 장비가 연결돼 있어 조류충돌 방지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고 있었다고 한다. 예를 들면 담당자가 차량으로 다니면서 태블릿피시를 통해 레이더를 실시간 확인하고, 경고가 오면 곧바로 퇴치 장비를 작동시킬 수 있는 시스템을 갖췄다는 것이다. 특히 이 공항 인근엔 대규모 옥수수농장이 있었는데, 지자체가 레이더로 축적한 ‘조류충돌 위험성’ 데이터들을 농부들과의 협의 때 근거 자료로 제시해, 농부들이 뿌리 식물 등 다른 작물을 심도록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고 했다.

 

현동선 소장이 2025년 1월2일 무안국제공항에서 제주항공 참사 희생자 조문을 마친 뒤 둘러본 인근 조류서식처. 현 소장은 “전체적으로 무안국제공항 주변을 둘러보니 인근 저수지 주변으로 새가 상당히 많이 보였다. 1970년대 우리나라에 간척지 조성이 많이 이뤄졌는데 그러다보니 자연적으로 둑 바깥쪽으로는 바다, 안쪽으론 인공 호수가 생기면서 새들이 많이 모여 살게 됐다”고 설명했다. 현동선 조류충돌방지연구소장 제공

현동선 소장이 2025년 1월2일 무안국제공항에서 제주항공 참사 희생자 조문을 마친 뒤 둘러본 인근 조류서식처. 현 소장은 “전체적으로 무안국제공항 주변을 둘러보니 인근 저수지 주변으로 새가 상당히 많이 보였다. 1970년대 우리나라에 간척지 조성이 많이 이뤄졌는데 그러다보니 자연적으로 둑 바깥쪽으로는 바다, 안쪽으론 인공 호수가 생기면서 새들이 많이 모여 살게 됐다”고 설명했다. 현동선 조류충돌방지연구소장 제공


애도와 재발 방지는 이제 시작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희생자 합동추모식은 1월18일 무안국제공항에서 열렸다. 이번 참사로 아내와 딸을 잃은 김성철씨는 이날 추모식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국무위원, 여야 정치인과 지자체장들이 2025년 1월18일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열린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희생자 합동추모식’을 마친 뒤 유가족과 함께 사고 현장을 찾아 희생자를 애도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국무위원, 여야 정치인과 지자체장들이 2025년 1월18일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열린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희생자 합동추모식’을 마친 뒤 유가족과 함께 사고 현장을 찾아 희생자를 애도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4년) 12월26일 목요일 저는 꿈을 꾸었습니다. 딸이 저에게 송금하는 꿈이었습니다. 딸이 ‘아빠, 그거 외로움 값이야’ 했습니다. 외로움 값…, 그 말이 맴돌아 검색도 해봤는데 (뜻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외로움 값’이 무엇인지 알게 됐습니다. 저는 이 ‘외로움 값’은 사회복지사였던 아내와 딸의 ‘마음’으로, 아내와 딸을 사랑해주고 기억해주는 남겨진 자들과 함께 서로 위안과 봉사를 하면서 갚아가려고 합니다.”

(왼쪽부터) 박한신 제주항공 참사 유가족협의회 대표와 우원식 국회의장,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이 참석한 가운데 2025년 1월18일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희생자 합동추모식’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왼쪽부터) 박한신 제주항공 참사 유가족협의회 대표와 우원식 국회의장,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이 참석한 가운데 2025년 1월18일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희생자 합동추모식’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국회의장, 여야 당대표 등 정치인들이 대거 참석한 합동추모식은 종료됐지만, 유가족들의 고통과 조사는 계속된다. 한미 합동조사단이 조사를 진행 중인데, 항공사고 조사는 짧으면 수개월 만에도 완료되지만 기술적 분석이 어려운 복잡한 사고의 경우 3년 이상 걸리기도 한다. 2002년 중국 여객기가 김해국제공항 인근에 추락한 사고는 조사 및 소송, 보상이 끝나는 데 10여 년이 걸렸다.

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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