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깊이, 그립도록 들어가보라3월이다. 그럼에도 눈은 5일 동안 계속됐다고 했다. 백두대간의 서쪽에서 눈은 그저 만만할 정도였지만 한계령 마루는 전혀 다른 세상이다. 눈은 엄청나다라는 말밖에 달리 표현할 길 없어 휴게소 뒤편 설악으로 드는 길은 막혀 있었다. ‘입산통제’ 간판이 아니더라도 내려 쌓...2010-03-19 10:53
사람은 빼고 이름만 남아라구룡령은 막혀 있었다. 산불에 놀라고 사람에 치인 탓이다. 깊고도 굵은 구룡령 고개 위에서 점점이 차단된 강원도의 산줄기를 보았다. 산은 사람의 길을 막지 않았건만 사람은 산의 맥을 짓누르고 끊어버렸다. 홍천에서 올라온 구름은 대간에 비를 뿌리고 양양으로 사뿐히 내려앉...2010-03-12 11:06
5만 부처 머물던 불도량, 삿된 마음 디딜 곳 없구나오대산의 동쪽 봉우리 동대산에서 사람 사는 세상을 바라본다. 진고개에서 구룡령까지 백두대간 길은 멀고도 높아 밤을 빌려 산에 올랐다. 1시간여 발목이 꺾일 정도로 비탈길을 올라 닿은 동대산에서 아침은 아직 멀어 세상은 여전히 깊은 밤이다. 서쪽 하늘엔 결혼식날 아침 곱...2010-02-25 14:14
닭목을 비틀어 땅값이 오르는구나강원도 강릉에서 닭목재로 가는 시내버스는 하루 3번 있다. 겨울철 폭설이 내리면 그마저도 끊겨 걸어서 올라야 한다. 할머니들은 보따리를 한두 개씩 들고 버스에 올랐다. 시내로 나온 김에 장 보고 머리 하고 옛 친구 안부까지 묻고 돌아가는 길이다. 운전기사는 반갑게 인사...2010-02-04 10:53
겨우 남은 자병산, 똑똑히 보라세상이 열리기 전인 까마득한 옛날, 마고할미가 살았다. 백두산을 베개 삼아 누우면 한라산에 다리가 닿을 정도로 장대한 할머니에겐 아주 귀한 반지가 있었는데 어느 날 그 반지를 잃었다. 그 반지를 찾느라 온 땅을 헤집어 결국은 스스로도 헤집어놓은 땅속에 묻히게 됐다는 게...2010-01-20 16:20
대간 칼바람이 차다만 스산한 세파에 비할까그냥 물길이 보고 싶었다. 4대강 바닥을 파헤치기 시작한 이후 내내 편치 않던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다. 백두대간에서 흘러내린 북한강과 남한강은 경기도 양평 두물머리에서 한 올로 얽혔다. 다른 길을 걸어온 이들의 만남은 언제나 낯설기 마련이다. 그러나 5천 년 넘도록 그...2009-12-30 11:21
땅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하늘을 만나는 산 태백을 등 뒤로 하고 부처를 만나는 산 두타를 찾아가는 길. 밤이 가시기 전에 두문동재에서 산에 들었다. 댓재까지 이르는 100여 리 길은 멀지만 희망을 놓을 수 없는 사람의 땅을 품는다.구름이 내려앉아 사위는 온통 회색이지만 길은 낙엽을 깔아놓은 융...2009-12-18 17:02
능선 떠돌다 서리에 맺힌 단종의 회한촛불을 건너온 이들의 목에 초록빛 수건이 차례로 걸렸다. 촛불은 고난의 길을 걸어온 자에게 보내는 경의의 표시다. 절절한 마음은 수건에 새겨진 ‘이우(以友)처럼 함께 가라. 백두(百頭)처럼 우뚝 서라’로 더욱 빛났다. 후배들은 등산용 스틱에 리본을 매달아 공중에 쳐들고...2009-12-05 10:25
비구름 뒤덮인 능선들, 먼 천둥소리단풍 관광객이 몰려든 고속도로 위에서 우울한 소식을 듣는다. 정부가 기어코 4대강 물줄기를 틀어막고 강바닥을 파헤치기 시작했다는 뉴스에 심사가 복잡하다. 산을 사랑하는 이라면 오늘의 삽질이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 몸으로 안다. 손톱에 가시 하나만 박혀도 오만상을 찌푸리는...2009-11-18 15:45
아기장수도 궁예도 하늘 여는 억새처럼사위가 환해졌다. 고치령으로 오르기 위해 영월로 가는 길에서 아침을 맞았다. 첩첩이 산이다. 산비탈에 기댄 작은 마을의 밤을 지키던 전등은 꺼진 지 오래인데 아침 해는 먼 산을 넘지 못하고 있다. 고치령으로 가는 길은 이 일러주었다는 승지 영월정동상류가장난종(寧越正東上...2009-11-05 13:19
풍기의 삼처럼 소백의 삶처럼경북 영주의 북편에 붙어 있는 풍기는 한때 조선의 중심을 자처했던 고장이다. 영남 사림파의 원조 격이라 할 수 있는 소수서원이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풍기군수 주세붕이 고려 말의 유학자 안향을 제향하고 유생을 가르치기 위해 세운 백운동서원이 바로 소수서원의 시초였다. ...2009-10-23 10:36
후불탱화 같은 소백 준봉을 지나다앞선 이의 발자국에 뒤선 이의 발자국이 더해져 만들어진 길은 아름답다. 그 길은 꼭 필요한 만큼의 넓이를 가진다. 땅과 물을 거스르지 않는다. 힘에 부친 비탈을 만나면 갈지자로 휘어 힘을 아끼고 풍광 좋은 곳에서는 마당을 만들어 오가는 이를 쉬게 한다. 삼매의 세계의...2009-09-29 16:05
숲은 깊어지건만 사람 마음은 얕아만 지네9월의 문경 땅은 붉고도 뜨거웠다. 길가의 과수원마다 출하를 앞둔 사과들이 빼곡했다. 산자락과 담벼락엔 오밀조밀 엉겨붙은 오미자가 지천이다. 가을이면 펼쳐지는 사과와 오미자의 붉은 동거는 상당 부분 백두대간 덕이다. 기온은 높되 일교차가 큰 대간 자락에서 사과는 당도를...2009-09-16 16:07
이편과 저편을 이어주는 고개 역사와 전통을 끊어내는 운하확장된 3호선 국도와 고속도로 덕에 한갓진 고갯길로 변해버린 이화령에서 산에 들어섰다. 된비얄을 타고 오르는 산길은 온통 꽃밭이었다. 물봉선, 동자꽃, 나리꽃, 망초, 모시대, 싸리나무꽃… 그리고 이름을 알지 못하는 더 많은 꽃들. 간밤에 내린 비로 목욕을 마친 꽃들은...2009-09-04 15:37
견훤의 비원 서린 아차마을 금하굴장마전선이 물러선 주말, 힘을 잃은 약자들의 아우성으로 가득한 도심을 벗어나는 데 한나절이 넘게 걸렸다. 서울역 광장에서, 용산 순천향병원에서,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에서 검게 그을린 얼굴과 깊게 파인 주름을 보고 역사의 시계가 거꾸로 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했...2009-08-13 16: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