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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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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구름 뒤덮인 능선들, 먼 천둥소리


생로병사의 번뇌 품은 천제단 길목… 외로운 산꾼은 가을 폭우에 젖다
등록 2009-11-18 15:45 수정 2020-05-03 04:25

단풍 관광객이 몰려든 고속도로 위에서 우울한 소식을 듣는다. 정부가 기어코 4대강 물줄기를 틀어막고 강바닥을 파헤치기 시작했다는 뉴스에 심사가 복잡하다. 산을 사랑하는 이라면 오늘의 삽질이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 몸으로 안다. 손톱에 가시 하나만 박혀도 오만상을 찌푸리는 게 인간의 본성이다. 하물며 수천 년 풍상으로 다져진 산천을 송두리째 갈아엎는 마당에 무슨 면목으로 강토의 무탈을 바랄 것인가.

구룡산을 지나 바라본 영월 방향의 산. 국토의 70% 가까이가 산으로 이뤄진 나라에서 산은 곧 신앙이자 삶의 터전이다. NIKON D90, NIKKOR18-200 ,F/2.8, ISO 200. 1/1250s

구룡산을 지나 바라본 영월 방향의 산. 국토의 70% 가까이가 산으로 이뤄진 나라에서 산은 곧 신앙이자 삶의 터전이다. NIKON D90, NIKKOR18-200 ,F/2.8, ISO 200. 1/1250s

하삼도를 가로지른 백두대간 마루금이 북으로 향한다. 남녘 구간의 대미를 장식하는 강원도. 한국 사람 대다수는 그 땅에 빚을 지고 살아왔다. 산업화 시대엔 광부들이 석탄과 시멘트를 쏟아냈다. 농부와 어부들은 청정 해산물과 고랭지 채소를 도시로 날랐다. 나라 전역에 개발의 폭풍이 불어닥친 지금, 토박이들은 대대로 살아온 터전과의 이별을 강요당하고 있다. 돈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강원도는 그렇게 축나고 멍들었다.

태백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에서 국책사업으로 들어선 정선 카지노를 보았다. 석탄산업 사양화에 대비하고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탄생한 그곳에서 나날이 느는 건 파산자와 도박중독증 환자뿐이다. 산을 깎아내고 자리잡은 골프장·리조트·스키장도 지역민의 삶과 유리된 세상이다. 도시인을 위해 멀쩡하던 물길까지 막아가며 투자를 확대해왔지만 광산촌의 그늘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다.

신라 때부터 하늘에 제를 지내던 곳이라는 기록이 전하는 태백산 천제단에는 여전히 자연과 하늘을 섬기는 이들의 간절함이 끊이지 않는다.

신라 때부터 하늘에 제를 지내던 곳이라는 기록이 전하는 태백산 천제단에는 여전히 자연과 하늘을 섬기는 이들의 간절함이 끊이지 않는다.

광산촌의 그늘, 파산자와 도박중독자들

사북·고한·태백으로 이어지는 골짜기에 흉물처럼 늘어서 있던 광부들의 사택은 대부분 사라졌다. 그러나 1970∼80년대 연평균 170명씩 죽어나간 탄광촌의 상흔까지 치유된 것은 아니다. 죽음의 도시에서 용케 살아남은 이들은 불치병으로 알려진 진폐증과 싸우고 있다. 안전장비도 없이 막장으로 내몰렸던 그들은 한때 조국 근대화의 기수로 불렸다. 이제 병든 몸으로 최소한의 생계유지를 요구하는 그들 앞에 우리는 마땅히 예의를 갖춰야 한다.

태백중앙병원은 1936년 한국 최초의 산재병원으로 설립됐다. 이곳을 거쳐간 광부만 무려 470만 명이다. 병실에서 만난 퇴역 광부들의 몸짓과 말투에서 세상에 대한 희망이나 기대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들은 그렇게 늙은 채로 마지막 순간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다. 병원 입구에 새겨진 어느 전직 광부의 시를 읽는 동안 가슴이 먹먹했다.

“내게도 굵고 단단한 팔뚝 자랑하던 때가 있었다. 내게도 뜨거운 사랑 가슴에 품었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내게도 겁날 게 없던 그런 젊은 날이 있었다. 지금은 비록 산소호흡기에 연명한 목숨이지만 나도 한때는 자랑스런 산업역군, 산업전사였다. 지금은 GNP 2만불을 얘기하는 시대. 사람들은 어느새 광부라는 말조차 잊고 있다. 전쟁터 같은 막장 도급제 노동으로 진폐증 환자가 된 사람들을 까맣게 잊고 있다.”

달빛이 비구름에 가린 새벽, 경북 봉화군 춘양으로 들어섰다. 오지로 알려진 경북 북부에서 춘양은 외지로 통하는 중요한 길목이다. 옛날 대궐을 지을 때 쓰였던 고급 소나무인 금강송도 춘양을 거치며 ‘춘양목’이란 별칭을 얻었다. 2008년 2월 국보 제1호인 남대문이 불에 탔을 때 사람들은 춘양목이 그 자리를 메워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믿었던 춘양목도 2004년 화재로 1만여 그루나 소실됐다.

사방이 분별되지 않는 어둠 속에서 도래기재를 출발했다. 고요한 풀숲에 랜턴을 비추자 짐승들이 예민하게 반응했다. 날짐승이 허공을 날았고 들짐승이 연이어 울었다. 그들의 단잠을 깨우지 않기 위해 불빛의 방향을 길가로 좁히고 조도를 낮추었다. 그제야 짐승들은 몸부림을 멈추었다. 집이든 산이든 객이 먼저 주인을 살펴야 한다. 주인이 객을 품는 건 그 뒤의 문제다.

천제단 아래 망경사 경내의 용정. 한국의 100대 명수이자 가장 높은 곳에서 솟는 샘물로 알려진 용정은 부정한 사람이 마시면 물이 흐려진다는 전설을 갖고 있다.

천제단 아래 망경사 경내의 용정. 한국의 100대 명수이자 가장 높은 곳에서 솟는 샘물로 알려진 용정은 부정한 사람이 마시면 물이 흐려진다는 전설을 갖고 있다.

구룡산 정상, 사격장 폭음과 천둥소리

눅눅한 산바람은 벌써부터 빗줄기를 예감하고 있었다. 아홉 마리의 용이 하늘로 올랐다는 데서 유래한 구룡산은 백두대간이 강원도와 만나는 첫 번째 봉우리다. 산을 아끼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구룡산을 편안하게 지나치기 어렵다. 산 아래 1800만 평에 걸쳐 조성된 필승사격장의 폭음 때문이다. 1981년 한국이 부지를 내주고 미국이 건설한 이 사격장에서 비행기들은 가상의 적을 향해 30년째 화염을 내뿜고 있다.

구룡산 정상은 온통 구름바다였다. 태백산 주능선을 굽어보지 못하는 아쉬움보다 사격장의 상처를 둘러갈 수 있는 안도감이 앞섰다. 바람이 구름을 벗겨내면서 태백의 준봉이 하나둘 위엄을 드러냈지만 사격장 바닥은 끝내 구름 밖으로 생채기를 내밀지 않았다. 서쪽에서 몰려온 비구름이 대간 능선에 막혀 잠시 해가 보일 때까지도 사격장은 구름에 덮여 있었다.

구룡산부터 대간은 시계 반대 방향으로 굽이쳐 태백산 주능선과 만난다. 날씨가 맑은 날엔 이 길에서 기나긴 폭격 소리를 들어야 한다. 하늘뿐 아니라 땅에서도 상처는 곪아터지고 있다. 불법으로 나무를 캐내고 뒷정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탓에 도처에서 토사가 흘러내린다. 태백산 자락의 명물인 주목과 희귀식물들은 이렇게 하나둘 사라져간다.

옛날부터 태백산으로 천제를 지내러 가는 사람들이 다녔다는 곰넘이재에서부터 빗줄기는 굵어졌다. 한번 퍼붓기 시작한 비는 좀처럼 기세를 늦추지 않았다. 산등성이를 통째로 울리는 듯한 천둥소리에 질려 발걸음을 재촉했다. 비의 양은 이미 기상청이 예상한 수준을 뛰어넘었다. 앞으로 얼마나 더 퍼부을지 분간조차 할 수 없다.

태백산 자락에서 비를 피할 곳은 절밖에 없다. 잰걸음으로 2시간을 내달려 천제단 아래 망경사에 이르렀다. 가을 폭우에 젖은 몸에서 흰 김이 솟았다. 허기를 달래기 위해 컵라면에 물을 붓고 공양간에 찬밥을 청했다. 공양주 보살은 없다며 손짓을 보냈으나 제법 산사람 냄새를 풍기는 처사가 주걱을 들었다. 처사는 “설마 절간에 밥이 없겠냐”며 고봉으로 가득 퍼 담았다.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라면 국물에 밥을 말았다.

살아서 1천 년, 죽어서 1천 년을 간다는 태백산 주목.

살아서 1천 년, 죽어서 1천 년을 간다는 태백산 주목.

천제단에서 마음을 잡고 씻다

신라 진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창건한 망경사는 태백산 천제단에서 장기간 기도하는 사람들이 머무는 도량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하늘의 문이 열린다는 자시와 인시에 맞춰 하루 두 번씩 천제단에 오른다. 망경사 처마 밑에서 그들에게 이곳으로 찾아온 연유를 물었다. 마음을 잡으려는 사람과 마음을 씻으려는 이들이 뒤섞여 있었다. 자기 몸 하나 겨우 누울 수 있는 골방에서 그들은 마음을 잡거나 씻다가 산을 내려간다.

산꾼들에겐 망경사보다도 절 앞의 용정 샘물이 더 유명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용정의 물은 신라시대부터 천제단에서 제사를 지낼 때 썼다고 전해지는데, 샘의 물줄기가 용궁과 통한 터라 부정한 이가 마시면 물이 탁해진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망경사에서 천제단으로 오르는 길목엔 애틋한 사연을 품은 비각이 있다. 조선시대 단종 임금이 인근 영월에 유배됐을 때 한성부윤을 지낸 추익한이 태백산의 머루와 다래를 진상했다고 한다. 어느 날 추익한의 꿈속에 곤룡포를 입은 단종이 백마를 타고 태백산에 나타났는데 바로 그날 단종이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그 뒤 이곳 주민들은 해마다 9월3일이면 단종을 기리는 제사를 지내고 있다.

태백산 천제단은 중앙의 천왕단, 북쪽의 장군단, 남쪽의 하단 등 3개 제단을 통칭한다. 언제부터 이곳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신라시대엔 왕이 직접 찾아왔고 구한말엔 의병장 신돌석이 백마를 잡아 제를 올렸다는 기록으로 미뤄 토착신앙과 연결됐음을 짐작할 수 있다. 대종교의 성역화 과정에서 단군을 일컫는 ‘한배검’이라 새겨진 비석이 들어선 점이나, 한때 천제단 주위에 무속신을 상징하는 깃발이 나란히 놓였던 점도 그런 맥락일 듯하다.

산은 샘을 품어 강의 시원을 이룬다. 태백산 아래 황지는 낙동강 1300리 물길의 시원이다.

산은 샘을 품어 강의 시원을 이룬다. 태백산 아래 황지는 낙동강 1300리 물길의 시원이다.

낙동강으로 흐를 빗물의 험난한 여정

엄밀히 말해 태백산 정상은 천제단(1560m) 위쪽 장군봉(1566m)이다. 장군봉 일대는 살아서 1천 년, 죽어서 1천 년을 산다는 주목 군락지다. 질긴 생명력을 자랑하는 주목이라지만 생로병사의 번뇌를 피해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주목을 아끼는 이들은 보다 못해 나무 주변을 틀어막고 생채기 난 구멍마다 시멘트를 채웠다. 절반 이상 썩어나간 몸을 지탱하며 해마다 새 가지를 뻗어내는 주목의 자태에서 생명의 위대함을 본다.

구름이 빠져나간 뒤에도 비는 멈추지 않았다. 이 물은 늘 가던 길을 따라 낙동강으로 흐를 것이다. 태백산 아래 황지 연못을 출발한 낙동강 1300리의 여정은 이제 더욱 험난해질 것이다. 시멘트 담장에 막혀 제 길을 못 가는 물에 대해 누군가는 분명히 책임을 져야 한다. 물은 막히는 곳에서 썩기 마련이다.

봉화·태백=글·사진 육성철 저자

신백두대간기행 17. 도래기재∼화방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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