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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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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


두타를 찾아가는 길에 만난 이상향, 수도공동체 태백 예수원과 ‘무소유’ 귀네미 마을
등록 2009-12-18 17:02 수정 2020-05-03 04:25

하늘을 만나는 산 태백을 등 뒤로 하고 부처를 만나는 산 두타를 찾아가는 길. 밤이 가시기 전에 두문동재에서 산에 들었다. 댓재까지 이르는 100여 리 길은 멀지만 희망을 놓을 수 없는 사람의 땅을 품는다.

태백의 예수원. 홍보도 들머리 안내판도 없지만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태백의 예수원. 홍보도 들머리 안내판도 없지만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구름이 내려앉아 사위는 온통 회색이지만 길은 낙엽을 깔아놓은 융단길이다. 안개는 헤드랜턴의 빛조차 삼켜버리지만 앞서 간 사람이 남긴 발자국을 더듬어 산길을 걷는다. 자장율사가 산 아래 강원도 정선 땅에 정암사를 창건하면서 보물을 숨겼다는 금대봉을 지나고 비단봉을 지났다. 보이지 않는 길 표지판에 의지해 온 길과 가야 할 길을 가늠한다. 산이 한강의 발원지 검룡소를 품었다는 것도, 매봉산 풍력단지가 지척이라는 것도 표지판이 일러준 덕에 알 수 있었다.

숲이 끝났다. 2만㎡가 넘을 정도로 광활한 고랭지 채소밭을 지난다. “잘 살아보세”라는 노래를 매일같이 들어야 하는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 자연은 공존해야 할 벗이 아니라 개간의 대상이었다. 울울창창한 소나무 대신 배추가 심어졌고 산은 밭이 되었다. 30여 년 전의 일이다. 부지런한 농부들은 벌써 다가오는 봄을 준비한다. 어둠이 가시기 시작한 밭에는 비료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풍력발전기는 단두대 칼날처럼 울고

산길은 미로처럼 얽힌 농로를 수차례나 횡단해야 한다. 지독한 안개 탓에 결국 길을 잃었다. 변변한 나무조차 없는 광활한 밭이다. 앞서 간 종주자들의 표지기를 찾을 수 없었다. 안개 때문에 정상 부근의 풍력발전기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비탈을 올랐다. 바람에 날린 눈이 가득한 밭고랑에 발목을 잡히며 오른 정상에서 “쇄액쇄액” 바람이 울고 있었다. 이미 날은 밝았지만 여전히 안개는 짙어 풍력발전기의 바람개비는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탓에 소리는 오히려 슬프기만 하다. 슬프게 들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나타나기를 반복하는 바람개비가 마치 단두대의 칼날처럼 느껴지기만 한다. 하나의 풍력발전기는 1천 가구가 사용하는 전기를 생산한다고 한다. 그 전기를 운송하기 위해 세워져야 할 철탑이 얼마나 많은 산자락을 파헤칠 것인가?

천의봉 가는 길의 매봉산 풍력단지. 짙은 안개 속에서도 돌고 있는 발전기 한 기는 1천 가구가 사용하는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고 한다.

천의봉 가는 길의 매봉산 풍력단지. 짙은 안개 속에서도 돌고 있는 발전기 한 기는 1천 가구가 사용하는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고 한다.

수도 공동체 예수원.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공간이지만 기도와 노동이라는 예수원의 규칙은 따라야 한다. 홈페이지를 통해 숙지한 뒤 방문할 것을 권하고 있다.

수도 공동체 예수원.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공간이지만 기도와 노동이라는 예수원의 규칙은 따라야 한다. 홈페이지를 통해 숙지한 뒤 방문할 것을 권하고 있다.

바람이 베이는 비명에 귀를 막으며 천의봉으로 오른다. 정상에는 천의봉과 매봉산이라는 이름을 앞뒤로 새긴 표석이 서 있다. 매봉이라는 이름을 더 갖게 된 데는 발복풍수가 담겨 있다. 산 아래 황지 땅에 금계포란형의 명당이 있는데 그 명당의 기운을 돋우려면 매가 필요하기에 금계포란형의 명당이 내려보이는 천의봉을 매봉산으로 부르게 됐다는 것이다.

천의봉을 품고 있는 태백에서 서해와 동해, 남해로 흐르는 강이 시작된다. 하늘에서 내린 비는 천의봉에서 세 갈래로 갈라지는데 서쪽으로 흐르면 한강이 되고 동쪽으로 흐르면 오십천이, 남쪽으로 흐르면 낙동강이 된다. 한 방울의 물도 셋으로 나눠 온 땅을 골고루 적시는 하늘의 뜻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를 담은 이름이 천의봉이다. 매봉산이라는 이름보다는 천의봉이라는 이름이 더 의미 있게 다가오는 이유는 누구에게나 공평한 하늘의 뜻을 새기며 살아가는 세상이 발복을 바라며 살아가는 세상보다 더 살 만한 세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늘이 명령하신 인간의 기본권리

땅은 스스로 제 주인을 찾는다는 말이 있다. 천의봉에서 피재(삼수령)로 내려서는 길목에 자리잡은 삼수령 목장에서 준비 중인 ‘생명의 강’ 학교 이야기를 들은 것은 덕항산이 멀지 않은 구부시령 아래 외나무골에 자리잡은 수도 공동체 태백 예수원에서였다. 천의봉에서 내려선 백두대간이 삼수령을 지나고 건의령을 지나 환선굴을 품은 덕항산을 목전에 두고 열린 고개가 구부시령이다. 9명의 남편을 두어야 했던 한 여인의 전설을 간직한 구부시령에서 왼쪽으로 내려서면 태백시 하사미동 외나무골이다. ‘토지는 하나님의 것’으로 믿는 수도 공동체 태백 예수원이 1965년에 자리잡은 곳이다. 지독한 가난으로 9명의 남편을 섬길 수밖에 없던 여인의 슬픔을 전설로 간직한 고개 입구에 토지의 공동 소유로 가난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믿는 수도 공동체가 세워진 이유는 아마도 땅의 필연성에서 기인했는지 모른다.

2002년 84살로 영면에 든 대천득 성공회 신부(본명 뢰벤 아처 토리 3세)가 세운 예수원은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이들의 공동체다. 그들의 삶은 기도와 노동으로 요약된다. 강단 옆에는 “기도는 노동이고 노동은 기도다”라는 표어가 걸려 있다. 하루 세 번의 기도와 정해진 규칙을 준수할 준비가 된 누구에게나 문을 열어주는 예수원의 입구에는 “토지는 하나님의 것”이라는 표석과 함께 토지의 공동 소유를 주장하는 이유를 담은 표석이 세워져 있다.

귀네미 마을 전경. 앞으로 보이는 능선이 백두대간을 잇는 길이고 그 길 위로 풍력발전단지가 들어설 계획이다

귀네미 마을 전경. 앞으로 보이는 능선이 백두대간을 잇는 길이고 그 길 위로 풍력발전단지가 들어설 계획이다

“일곱 번째 날은 안식일/ 일곱 번째 해는 안식년, 안식년 일곱 번이면 거룩한 희년이라// 속죄일에/ 토지의 사용권을 잃었던 자가 자신의 토지로 돌아왔다./ 토지는 모든 사람을 위한 것/ 이것은 하늘이 명령하신 인간의 기본 권리/ 토지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명령이라.// 이 명령을 오늘날 어떻게 지킬 것인가?/ 인간의 노동력으로 이룬 것이 아닌 토지의 가치에 세금을 부과하라./ 이렇게 하면 가난이 사라지니/ 희년의 법을 성령께서 성취하는 것을 목도하리라.”

사람을 피해 성경의 가르침대로 살아보자고 시작한 수도 공동체는 오히려 사람을 불러모으고 있다. 이렇다 할 홍보도 심지어는 들머리에 안내판조차도 없지만 사람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는다. 공동체가 추구하는 나눔의 삶에 동의하는 이들이 늘고 있는 까닭일 것이다. 예수원의 경제적 자립을 위해 1975년 세워진 삼수령 목장은 2010년에 대안학교를 연다. 예수원이 40년 넘게 실천해온 기독교적 세계관에 입각한 인재 양성을 목표로 설립되는 학교는 화해와 국제감각, 섬기는 리더십을 교육해 ‘통일한국을 섬기는 통일세대’를 키워야 한다는 자각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지식을 채우기보다는 노동의 가치를 아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는 교육을 하겠다는 생명의 강 학교는 2010년 3월에 중등 1·2학년 과정으로 첫걸음을 뗄 예정이다.

귀네미 마을, 살 만해지면 땅을 비우고 떠나다

학교 이름 ‘생명의 강’은 북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을 생명의 강으로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삼수령에서 시작되는 3개의 강과 백두대간을 상징하는 생명의 강을 더하면 4개의 강이 완성된다. 에덴동산에도 4개의 강이 흐른다고 했다. 학교는 네 번째 강 프로젝트의 한 부분이다.

학교를 열고 인재를 키우는 일은 대천득 신부의 아들인 벤 토리 신부가 본부장을 맡은 삼수령센터가 주도하고 있다. 학교의 교장은 벤토리 신부의 부인인 리즈 토리가 맡을 예정이라고 한다. 이미 미국에서 기독교 계열의 학교 운영을 맡아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예수원을 설립하고 평생을 예수원을 위해 봉사한 대천득 신부는 2002년 유명을 달리했다. 대천득 신부의 마지막 말은 예수원 입구 표석에 또렷하게 새겨져 있다. “대천덕 신부님, 한국 교회에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은 무엇입니까?” “지붕 위에 올라가서 외치시오. ‘토지는 하나님의 것이라’이라고!”

부러진 나무를 삶터 삼아 살아가는 이끼. 이끼는 다시 양분이 되어 나무를 키우고 나무는 이끼를 키우는 순환은 숲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다.

부러진 나무를 삶터 삼아 살아가는 이끼. 이끼는 다시 양분이 되어 나무를 키우고 나무는 이끼를 키우는 순환은 숲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다.

구부시령을 지나 덕항산으로 간다. 안개는 걷혔지만 여전히 사위는 멀리 열리지 않는다. 아득한 절벽 아래 덕항산에 기대 살아온 산골 대이리가 흐릿하다. 덕항산은 왼편으로는 완만한 비탈이지만 대이리 방향으로는 깎아지른 절벽이다. 땅은 온통 석회암이라 농사도 변변치 않았다. 감자 농사라도 지으려면 깎아지른 절벽을 타고 백두대간을 넘어야 했다. 한국방송 ‘1박2일’에서 배추고도로 소개한 귀네미 마을은 대이리 사람들에게는 이상향이었다. 비결을 기록한 은 귀네미 마을을 ‘삼척부에서 신술 방향(서북방)으로 우이령을 넘어 100여 리 되는 곳에 숲은 우거지고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 있으니 곧 크고 작은 사람을 살리는 터전이다’라고 적고 있지만 대이리 사람들은 경작을 할지언정 소유하지는 않았다. 이상향은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나누는 땅이라는 믿음을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귀네미 마을뿐 아니라 태백산에 기댄 천평, 점봉산에 기댄 진동계곡 등 백두대간 줄기에는 경작은 할지언정 소유는 하지 않는 이상향에 대한 이야기가 곳곳에 전한다. 이러한 땅에는 누구나 살기 어려워지면 찾아들어 살다가 살 만해지면 다시 새로운 땅으로 떠나곤 했다고 한다. 귀네미 마을에도 조선조 말엽부터 이상향을 찾는 북쪽 사람들이 내려와 살곤 했는데 이들은 살 만해지면 땅을 비우고 떠났다고 한다. 지금의 귀네미 마을은 산 아래 하장면에 광동댐이 들어서면서 수몰민이 집단 이주하면서 시작된 마을이다.

발전기 건설 예정지 ‘농사 금지’ 안내문

백두대간에는 곧 또 하나의 풍력발전단지가 건설될 예정인 듯했다. 귀네미 마을을 에두르는 백두대간에 접한 밭에는 풍력발전기 건립장소이기에 농사를 금한다는 안내판이 보인다. 바람에 찢긴 채 날리는 기공식 안내 현수막에 선명한 환영 글귀와 누군가에 의해 뽑힌 채 뒹구는 ‘농사를 금한다’는 안내판은 기대와 우려가 공존함을 말해준다. 귀네미 마을의 거대한 배추밭을 에두르던 백두대간 길은 다시 숲으로 든다. 댓재를 발 아래 둔 황장산을 올라 다시 가야 할 두타산을 바라본다. 곧게 뻗은 오름이 아름답다. 의식주에 구애됨 없이 청정하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수행을 두타라 한다. 두타라는 단어에 예수원 사람들의 온화한 얼굴이 겹쳐진다.

태백·삼척=글·사진 윤승일 기획위원 nagneyoon@hani.co.kr

신백두대간 기행 19 두문동~댓재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신백두대간 기행 19 두문동~댓재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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