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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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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빼고 이름만 남아라


사람이 줄어들어 희귀식물은 위기 넘긴 ‘곰이 누운 땅’, 숙박시설에 맛을 잃은 ‘다섯 색깔 꽃의 약수’
등록 2010-03-12 11:06 수정 2020-05-03 04:26

구룡령은 막혀 있었다. 산불에 놀라고 사람에 치인 탓이다. 깊고도 굵은 구룡령 고개 위에서 점점이 차단된 강원도의 산줄기를 보았다. 산은 사람의 길을 막지 않았건만 사람은 산의 맥을 짓누르고 끊어버렸다. 홍천에서 올라온 구름은 대간에 비를 뿌리고 양양으로 사뿐히 내려앉았다. 산꾼은 말없이 제 길을 따라가는 구름을 부러워한다. 산으로 붙지도 물러서지도 못하는 사이 해는 중천에 떴다. 한참을 서성이다 대간을 에둘러 길을 잡았다.

가는 겨울이 뿌린 눈으로 아직 새잎이 돋지 못한 나무들에도 순백의 꽃이 피었다. NIKON D90, NIKKOR18-200, F/2.8, ISO 320, 1/250s

가는 겨울이 뿌린 눈으로 아직 새잎이 돋지 못한 나무들에도 순백의 꽃이 피었다. NIKON D90, NIKKOR18-200, F/2.8, ISO 320, 1/250s

짧은 해, 평화로운 아침은 점점 짧아지네

홍천에서 인제로 가는 옛길은 인적이 드물다.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우체부에게 물으니 오늘 아침에야 길이 뚫렸다고 했다. 빗물에 눈이 녹으면서 길이 열리고 편지도 배달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지금 우체부가 찾아가는 곳은 아침가리다. ‘조경동’으로도 불리는 이 마을에서는 하루 서너 시간만 해를 볼 수 있다. 마을 전체가 산에 둘러싸여 오전 9시가 넘어야 해가 뜨고 점심 무렵부터 땅거미가 진다.

아침가리에서 하룻밤을 보낸 적이 있다. 한평생 산비탈을 일구며 살아온 노인은 하루 3시간쯤 바짝 일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는 척박한 땅에서 부부가 먹을 만큼만 거둔다고 했다. 군살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그의 팔다리에서 무엇이든 사고파는 자본의 영악함은 보이지 않았다. 요즘은 그가 사는 산골까지 산악용 자동차가 누비고 다닌다. 노인의 평화로운 아침은 갈수록 짧아지고 있다.

대간 아랫길을 따라 아침가리로 가는 길에 삼봉약수와 방동약수가 있다. 삼봉약수는 철분과 탄산이 많아 위장병이나 신경통 환자들이 즐겨 찾는다. 또한 300년 묵은 엄나무 아래 암석에서 솟아나는 방동약수는 천연가스가 풍부한 물이다. 인제 땅에 내려오는 전설을 따라가보면 삼봉약수는 갈전곡봉·가칠봉·응복산 등 인근 세 봉우리의 정기가 모인 곳이고, 방동약수는 방태산 산신령이 정직한 심마니에게 점지한 산삼이 묻힌 곳이다.

현리에서 진동리로 향하는 길도 오지다. 택시기사는 눈길을 헤치며 조침령 방향으로 조심스럽게 차를 몰았다. 도중에 ‘바람불이’라는 표지가 나오는데 말 그대로 바람이 세서 붙은 이름이다. 바람불이는 본래 세 물줄기가 길을 막았다는 의미의 ‘세나들이’로 불렸는데 넓은 풀밭에 소를 방목하면서 ‘쇠나들이’로 바뀌었다. 강원도 산골마을의 이름은 이처럼 늘리거나 보탤 게 없다. 보이는 대로 태어나고 변해간다.

바위 절벽에 제비집처럼 들어선 홍련암. 낙산사 전체를 태워버린 산불에도 남아 모든 것을 버려야 얻을 수 있다는 의상의 믿음을 증명하고 있다.

바위 절벽에 제비집처럼 들어선 홍련암. 낙산사 전체를 태워버린 산불에도 남아 모든 것을 버려야 얻을 수 있다는 의상의 믿음을 증명하고 있다.

눈길에 미끄러진 택시는 조침령 터널 앞에서 구르기를 멈추었다. 조침령도 통제구간인지라 대간 마루금에서 물러나 방태천을 따라 걸었다. 오른편으로 국내 최대 규모의 진동리 양수발전소가 있다. 고지대에서 물을 떨어뜨려 전기를 생산하는 양수발전은 상대적으로 공해가 적다. 그러나 해발 940m 산간지역에 대형 인공호수와 댐을 만드느라 법정 보호식물과 천연기념물이 생존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산은 파낸 만큼 다치고 물은 가둔 만큼 썩는다는 자연의 이치를 고통스럽게 되새긴다.

파낸 만큼 다치고 가둔 만큼 썩는다

진동리 북편은 설피밭으로 일제시대 평안도 사람들이 풍수지리설에 따라 집단 이주한 마을이다. 오지 중의 오지인 이곳에도 도처에 통나무로 지은 펜션과 민박집이 늘어서 있다. 마을 주변 들판엔 언 채로 눈밭에 잠긴 가을배추들이 가득했다. 밭고랑으로 다가서자 배추 냄새가 코를 찌른다. 머지않아 추위가 물러가면 저 밭에 봄동 새싹이 돋고 진동리 사람들은 봄맛을 제대로 느낄 것이다.

설피밭을 지나면 단목령(박달령)과 곰배령이 갈리는 삼거리다. 오래전 이 길을 지나던 산꾼들은 삼거리 하늘찻집에서 쉬어가며 다리를 두드렸다. 하늘색 지붕이 예뻤던 찻집에서 일흔이 넘은 노부부는 길손을 불러 차를 따라주었다. 본래 그 찻집은 노부부의 아들이 운영하던 곳인데, 아들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노부부가 그 자리를 지켰다. 이제 다시 찾은 삼거리에 찻집과 노부부는 보이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10년 전 아들의 뒤를 따랐고 할머니도 어딘가로 떠났다고 했다. 찻집이 있던 자리를 맴돌며 아련한 기억을 떠올렸다.

곰배령은 곰이 누워 있는 모양이다. 곰배령에서 점봉산까지 이어지는 능선은 사계절 멋진 경관을 자랑한다. 산나물이 많고 계곡까지 깊어 등산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곰배령은 너무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기에 자주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산이 되었다. 요즘은 정해진 기간에 예약한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다. 등산로 입구를 지키는 산림청 직원은 “사람들이 줄어들면서 희귀식물이 위기를 넘겼다”고 말했다. 언제나 그렇듯이 산에서 문제가 되는 건 사람이다.

산골에 어둠이 깃들면서 기온은 빠르게 내려갔다. 멀리 보이는 불빛을 찾아 집 안으로 들어서자 진돗개 두 마리가 사납게 맞았다. 머리가 희끗한 노인이 개들을 물리치고 방으로 안내했다. 문 앞에 한자로 ‘다락산방’(茶樂山房) 네 글자가 쓰여 있었다. 그도 한때는 대간꾼이었고 10년 전 은퇴해 이곳에 머무르고 있다고 했다. 다락산방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약 냄새가 그윽한 차도 따라주었다.

진동계곡과 오색을 잇던 고개인 단목령. 단목령에서 사람의 길은 하늘의 길인 백두대간과 만나지만, 늦은 겨울에 찾아온 폭설로 발길이 끊겨 장승만이 외롭다.

진동계곡과 오색을 잇던 고개인 단목령. 단목령에서 사람의 길은 하늘의 길인 백두대간과 만나지만, 늦은 겨울에 찾아온 폭설로 발길이 끊겨 장승만이 외롭다.

일흔네 살의 노인이 저녁을 준비했다. 미안한 마음에 거들려 했으나 정중히 사양했다. 산에서 채취한 나물과 텃밭에서 기른 채소가 밥상 위에 올랐다. 정성에 감복해 밥 한 알,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깨끗이 비웠다. 노인은 설거지도 혼자서 했다. 식탁을 닦은 뒤에는 구약성서를 펴고 공책에 세로쓰기로 옮겨 적었다. 벌써 두 번째 그는 성경을 통째로 베끼고 있었다. 읽을 때는 보이지 않던 이치를 쓰면서 깨치게 되었다고 한다.

일흔네 살 노인이 차려준 밥상

노인은 길손이 잠자는 새벽에 일어나 아침을 차렸다. 길손의 배낭을 살피고 부실한 점을 일러주기도 했다. 내가 빗물에 눈이 얼추 녹았을 것 같다고 하자, 그는 최소한 허벅지까지 빠질 것이니 조금 걷다가 샛길로 빠지라고 권했다. 단목령으로 올라설 때까지는 내 말이 맞았으나 그 뒤로는 노인의 예측이 정확했다. 해가 들지 않는 산길로 들어서자 눈이 허리까지 빠졌다. 설상가상 짙은 안개에 비까지 내려 앞길을 가늠할 수 없었다. 결국 노인의 충고를 따라 계곡으로 내려섰다.

남설악의 준봉 점봉산은 그 위세만큼이나 깊은 계곡을 만들어 발 아래에 흘림골·주전골·십이담계곡·가는고래골 등을 펼쳐놓았다. 특히 한계령 자동차 길에서 접근이 쉬운 흘림골은 우리나라에서 해외여행이 보편화되기 이전 가장 인기가 높은 신혼여행지였다. 남설악의 수려한 계곡이 마을과 만나는 지점마다 약수터가 있는데 가장 널리 알려진 곳이 오색약수다. 오색이란 명칭은 다섯 가지 색깔의 꽃나무에서 나왔다. 오색약수도 톡 쏘는 맛이 일품인데 남설악 일대에 숙박시설이 급증하면서 물맛과 수량이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다.

오색에서 한계령으로 오르는 길은 남설악의 백미다. 굽이굽이 돌아가는 골짜기마다 절경이 펼쳐진다. 자연히 사람의 발길이 잦고 그만큼 상처도 깊어졌다. 2006년에는 도로 곳곳이 산사태로 무너져 2개월 넘게 차량 통행이 금지되기도 했다. 불과 2시간 만에 240mm가 쏟아진 기록적인 폭우가 빚은 자연재해의 성격이 짙지만, 설악산 일대의 마구잡이식 개발이 지반을 약화시켜 피해 규모를 키웠다는 지적도 있다.

날씨가 좋은 날 한계령 휴게소에서 점봉산은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점봉산에 오르면 설악산의 장쾌한 암릉과 동해 바다를 시원하게 조망할 수 있다. 점봉산 밑으로 불룩하게 솟은 봉우리가 망대암산으로, 도적들이 망을 보던 산이라는 뜻이다. 망대암산 아래는 용소폭포·주전폭포·등선폭포가 늘어선 주전골이다. 12담구곡으로도 불리는 주전골은 위폐범들이 몰래 엽전을 만들던 땅이라는 데서 연유했다.

양양의 서쪽 끝이 한계령이라면 동편 끝자락은 낙산사다. 한계령이 산사태로 무너지기 1년 전 낙산사는 도량 전체가 불에 타는 참변을 겪었다. 재앙이 찾아온 때는 온 나라 사람들이 함께 나무를 심고 가꾼다는 식목일 오후였다. 양양 산자락을 불바다로 만든 그날 기적적으로 홍련암과 의상대가 살아남았다. 하지만 공들여 키운 숲과 모나지 않게 어우러진 낙산사 경내의 위엄은 영원히 사라졌다.

의상 스님이 일생을 걸고 부딪쳤던 낙산사

홍련암에서 삼배를 올리는 불자들 곁에서 낙산사가 태어나던 순간을 상상했다. 신라의 의상 스님은 홍련암에서 기도하다 뜻을 이루지 못하자 바닷물로 뛰어들려 했다. 이때 동해의 관음보살이 여의주와 수정 염주를 건네주며 절터를 일러주었으니 그곳이 바로 낙산사 원통보전이 섰던 자리다. 누구에게나 일생을 걸고 부딪치는 순간이 있기 마련이다. 의상 스님에게는 낙산사가 그런 곳이었다. 우리는 그곳을 허망하게 태워버렸다. 나무 관세음보살.

인제·양양=글·사진 육성철 저자

신백두대간기행 24. 구룡령∼한계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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