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을 건너온 이들의 목에 초록빛 수건이 차례로 걸렸다. 촛불은 고난의 길을 걸어온 자에게 보내는 경의의 표시다. 절절한 마음은 수건에 새겨진 ‘이우(以友)처럼 함께 가라. 백두(百頭)처럼 우뚝 서라’로 더욱 빛났다. 후배들은 등산용 스틱에 리본을 매달아 공중에 쳐들고 백두대간 종주자들의 무사 귀환을 축하했다. 선배들은 리본이 휘날리는 스틱 터널을 행진하며 2년여에 걸친 국토순례 여정을 뿌듯하게 마무리했다. 이우학교 백두대간 동아리의 종산식 풍경이다.
해마다 수많은 이들이 백두대간을 탄다. 대부분 산악회를 중심으로 한 어른들만의 주말 나들이다. 이우학교 백두대간 종주대가 돋보이는 건 학교 이름 그대로 가족과 이웃이 친구처럼 어울리며 함께 산에 오른다는 점이다. 부모야 그렇다 치고 입시학원을 오가기도 바쁜 중고생들이 주말마다 산을 찾는다는 건 꽤나 별스런 일이다. 효율이 경쟁이라고 믿어지는 시대에 세태를 거스르며 자연과의 소통을 우직하게 밀어붙이는 그들이다.
2004년 가을의 일이다. 덕유산 삿갓재에 놀러간 이우학교 학부모들 사이에서 조심스레 백두대간을 종주해보자는 의견이 나왔다. 처음엔 25인승 버스 한 대면 충분하겠다는 생각으로 회원 모집에 나섰는데, 무려 100명이 넘는 신청자가 몰려 버스 두 대에 맞춰 인원을 제한해야 했다. 예상을 뛰어넘는 폭발적 인기에 동을 뜬 사람들조차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그들의 절반은 아직 산에 제대로 취한 적이 없는 청소년이었다.
백두대간은 분명 산을 사랑하는 마음만으로 너끈히 즐길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아무리 낮은 산이라도 쉽게 머리를 보여주지 않는 게 산의 이치고 매력이다. 하여 1500리가 넘는 대간 마루금을 오가는 동안 신산의 고통이 따라붙는 건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다. 이우학교 종주대는 대설주의보가 내려진 것도 모르고 길을 나섰다가 눈밭을 헤매기도 했고, 고속도로에서 아찔한 버스 충돌 사고를 당해 노상에서 긴급대책회의를 열기도 했다.
이우학교의 대간 종주는 2주 간격으로 2년간 이어진다. 장기 레이스다 보니 도중에 탈락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종주대의 내공은 깊어지는 양상이다. 완주한 사람들의 무용담은 신입생을 자극하는 전설이 됐고, 산행으로 다져진 우정은 세대를 뛰어넘는 인연이 됐다. “백두대간은 학교와 학생, 학부모를 하나로 묶는 구심체가 되고 있다”는 게 초창기 멤버로 대간을 종주한 김태신씨의 평가다.
이우학교 4기 종주대가 대장정을 마치던 날 백두대간을 고리로 만난 동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어른은 어른대로 아이는 아이대로 산에서 배운 마음을 정겹게 나누는 모습에서 현장성을 강조하는 이우학교의 교육철학이 느껴졌다. 학부모 대표는 “백두를 걸었다는 것만으로 어떤 교육보다 훌륭한 프로그램이라 생각한다”며 대간 종주의 의미를 되새겼고, 정광필 교장도 마이크를 잡고 “백두대간의 야성이야말로 이우학교가 키우고 싶은 꿈”이라고 거들었다.
분단의 겨울 녹이는 쇳물처럼2년간 남녘의 산줄기를 돌아다닌 모습이 스크린에 흘렀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이 떠오를 때마다 환호와 탄성이 터져나왔다. 대간을 타기 전과 후의 사진이 나란히 비치자 그들 스스로 놀라는 모습이 역력했다. 2년의 산행은 그렇게 많은 이들의 몸과 마음을 바꿔놓았다. 종주자들의 가슴에 새겨진 백두대간의 의미도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들에게 대간은 이미 삶의 중요한 이정표가 된 듯했다. ‘백두는 보약이다, 이우학교 진입로다, 마약이다, 미친 짓이다, 행복이다….’
종주자들에게 완주 증서가 수여됐다. 문구에서 대간을 대하는 이우학교 사람들의 호방함이 물결처럼 다가왔다. ‘어머니 품처럼 아늑하고 아버지 등처럼 든든한, 우리 땅 큰 줄기를 따라 지리산 천왕봉에서 강원도 진부령까지, 나무와 꽃, 산새 그리고 벗과 걸었습니다. 백두산으로 이어지는 나머지 길도 꼭 밟아가기를 바랍니다.’ 그들의 당찬 포부가 분단의 겨울을 녹이는 쇳물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주말로 넘어가는 도시의 새벽. 이우학교 부근 도로변에 관광버스가 서 있다. 등산복 차림의 가족들이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차에 오른다. 이우학교 백두대간 5기 종주대의 제18차 산행에 참가한 사람들이다.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들은 내년 가을 진부령에 도착한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그들이 대간을 마치고 돌아오는 날 이우학교에서는 또 한 번 특별한 축제가 벌어질 것이다.
밤길을 달려 강원도 태백시 화방재에 이르렀다. 화방재의 옛 이름은 어평재로 영월에서 죽임을 당한 단종의 영혼이 태백산으로 가는 길에 머물렀다는 데서 유래했다. 해발이 높은데다 비까지 내린 터라 자연스레 몸이 움츠러들었다. 이런 날은 옷을 따뜻하게 입고 적절한 준비운동으로 체온을 관리해야 한다. 잠에서 깨자마자 찬 공기에 근육이 노출되면 자칫 몸의 밸런스가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우학교 종주대를 따라 맨손체조를 하고 나니 몸이 한결 가벼워졌다.
화방재에서 수리봉으로 오르는 언덕에 긴 랜턴 불빛이 보였다. 후미에서 천천히 숨을 고르며 하늘의 동태를 살피니 날씨가 변화무쌍이다. 산 중턱에 별빛이 보이고 동편으로 일출을 예고하는 붉은 줄기가 뻗치는가 싶었으나, 이내 구름이 빛을 가리고 수리봉에 이르자 눈덩이가 밟혔다. 태백은 예로부터 폭설이 잦은 고장이지만 지난해엔 겨울 가뭄으로 식수난까지 겪었다. 그런 이유로 올해의 첫눈은 태백 사람들에게 어느 때보다 반가운 선물이다.
수리봉에서 군부대 시설을 지나 함백산 쪽으로 내려서면 만항재다. 영월과 태백을 이어주던 이 고개는 정선과 태백 사이에 두문동재터널이 생기면서 교통 요지의 기능을 잃었다. 대신 고지대의 특성을 살려 수년 전부터 야생화 축제를 열고 있는데 8월에 찾아가면 고갯마루를 뒤덮은 꽃밭에 흠뻑 빠질 수 있다. 산꾼들 사이에서는 만항재 휴게소를 기억하는 이도 많다. 비록 지대가 높아 물이 나오지 않는 쉼터지만 이곳에서 16년째 매점을 운영하는 아주머니의 인심은 산만큼 넉넉하기 때문이다.
이우학교 종주대는 만항재 아래 공터에서 아침을 먹었다. 추운 날씨에 김밥은 말랐고 보온병의 물은 컵라면을 익히지 못했다. 또래 친구들이 단잠에 빠져 있을 주말 새벽, 고생을 자처한 아이들의 속내가 궁금했다. 아빠의 유혹에 빠졌다는 아이는 “주말마다 아빠와 여행을 하게 돼서 좋다”고 했다. 친구 따라 종주에 동참했다는 아이는 “예전에는 우리 땅이 이렇게 넓고 아름다운 줄 몰랐다”며 친구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대간에서 배우고 사귀는 그들이다.
만항재에서 함백산으로 가는 길은 긴 오르막이다. 2주 간격으로 계속되는 대간 산행으로 제법 힘을 키운 남학생들이 멀찌감치 앞으로 치고 나갔다. 한창 자라는 아이들에게 대간 주행은 초강력 엔진이나 다름없다. 단언컨대 대간 종주는 그 자체로 더 보탤 게 없는 체력관리 비법이다. 한번은 전국 규모의 단체 수련회에서 크로스컨트리 경기를 개최한 적이 있는데, 1등부터 5등까지 모두 이우학교 종주자들이 독차지한 일도 있었다고 한다.
함백산 정상엔 제법 눈이 쌓여 있었다. 나뭇가지에 내려앉은 눈은 칼바람에 그대로 얼어붙어 상고대가 되었다. 아이들은 눈을 뭉쳐 던지며 가을 속의 겨울을 즐겼다. 어른들은 구름에 갇힌 태백산과 함백산의 경계를 살폈다.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흥미롭게 바라보는 아빠에게 물었다. 저 아이들에게 대간을 권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그의 답은 단단하면서도 진솔했다. “어릴 적 지리산에 오른 기억이 지금도 힘이 됩니다. 이 아이들에게 백두대간은 평생을 버티는 힘이 될 겁니다.”
구름이 빠져나간 대간 주능선이우학교 종주대는 눈길을 따라 함백산을 내려갔다. 은대봉 위에서 구름이 빠져나간 대간 주능선을 보았고, 두문동재에서 바람을 타고 돌아가는 매봉산 풍력발전기를 보았다. 그곳에서 대간 왼편 정선 쪽으로 자리잡은 적멸보궁 정암사는 보이지 않았다. 산 오른쪽에 위치한 태백의 마지막 탄광도 살필 수 없었다. 5기 종주대를 이끌고 있는 정태선 대장도 그 점을 아쉬워했다. 모자람은 또 다른 도전을 남기는 법이다. 산에 반한 이들은 머지않아 사람의 이야기를 찾아나설 것이다.
산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아이들은 어느새 그들의 세상으로 돌아갔다. 눈, 바람, 바위, 구름의 기억도 모두 잊은 듯했다. 그러나 며칠 지나지 않아 그들이 대간 자락에서 토해내던 숨소리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산을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산들이 내게 다가와 내 마음속을 꽉 채우자 온몸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중1 박나음의 산행 후기에서)
태백=글·사진 육성철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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