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남구 기자의 주말농장]
▣ 글 · 사진 정남구 기자/ 한겨레 경제부 jeje@hani.co.kr
민들레를 볼 때마다 그 강인한 생명력에 자주 놀라곤 한다. 봄이면 거리의 보도블록 사이 좁은 틈을 비집고 자라나 꽃을 피운 민들레를 그리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올해 초 해발 3800m에 있는 볼리비아의 라파스 공항에 내렸을 때 산소 부족으로 현기증을 느끼는 나를 가장 먼저 반겨준 것도 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 꽃을 피운 노란 민들레였다. 올겨울은 100년 만에 따뜻한 겨울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12월에 핀 민들레꽃을 보니 또한 반갑다. 수확이 끝난 주말농장의 풀밭에서 민들레가 노란 꽃을 피워올렸다.
민들레는 자라서 엄마 품을 떠나는 딸의 상징이다. 가수 진미령이 부른 란 노래의 영향이다. “나 어릴 땐 철부지로 자랐지만 지금은 알아요 떠나는 것을, 엄마 품이 아무리 따뜻하지만 때가 되면 떠나요. 할 수 없어요.”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1979년 방송된 TV드라마의 주제가였다. 어릴 적 누이들은 이 노래를 참 많이도 따라불렀다.
그런데, 노랫말 속의 하얀 민들레는 보기가 쉽지 않다. 지난 봄에 고향에 갔다가 담 밑에 피어 있는 하얀 민들레를 발견했을 때, 나는 마치 태어나서 처음 그것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좀 퍼뜨려볼까 하고 여문 씨앗을 따다가 주말농장 밭 한켠에 뿌려보았는데 전혀 싹이 트지 않았다. 나중에야 그 이유를 알았다. 하얀 민들레 씨앗은 휴면기가 60일 이상으로 길다. 게다가 온도가 20도는 넘어야 싹을 틔운다. 그러니 봄에 맺힌 씨앗은 이듬해나 돼야 싹이 트는 것이다. 하얀 민들레를 보기 어려운 것은 이 때문이다.
실은 노란 민들레도 우리가 보는 대부분의 것은 토종이 아니라 서양 민들레다. 서양 민들레는 휴면기가 짧은데다 온도에 별 영향 없이 씨앗이 싹을 틔우기 때문에 일년 내내 꽃이 핀다. 이에 비해 토종 민들레는 하얀 민들레만큼 까다롭지는 않아도 역시 씨앗의 휴면기가 길고 온도가 높아야 싹이 튼다. 서양 민들레는 번성하고 토종은 갈수록 설 자리가 줄어들 수밖에 없게 돼 있는 셈이다.
국립수목원 이유미 박사에 따르면, 서양 민들레와 토종 민들레를 구분하는 간단한 방법은 이렇다. 꽃받침이 아래를 향해 뒤집어져 있는 것이 서양 민들레(사진)이고 꽃받침이 꽃에 가지런히 붙어 있는 게 토종이다. 여러 번 본 사람이라면 굳이 꽃을 뒤집어보지 않아도 쉽게 구분할 수 있다. 서양 민들레는 꽃잎이 170장 안팎인데, 토종 민들레나 하얀 민들레는 80장가량에 불과하다. 그래서 서양 민들레가 훨씬 풍성해 보인다.
민들레로는 김치도 담근다. 고들빼기로 김치를 담는 것은 많이 알려져 있지만 민들레 김치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사찰에서는 예부터 꽃피지 않은 민들레를 뿌리째 캐어 데쳐서 무쳐먹었다고 한다. 전북 임실군의 농업기술센터는 지난 2003년 ‘민들레 김치’와 ‘민들레 환’을 개발하기도 했다. 꽃을 가지고 우리 것, 서양 것을 따지는 게 좀스러워 보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토종 민들레쪽이 김치 맛도 좋을 것이다. 주말농장에서 토종 민들레를 재배할 날도 머지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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