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남구 기자의 주말농장]
▣ 정남구 기자/ 한겨레 경제부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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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들이 대개 그렇듯이 내 아버지도 뭐든지 참 잘 만들어내셨다. 나무를 깎아 쟁기틀을 만드시는 것은 기본이었다. 군대에 있을 때는 기타를 손수 깎아 만드신 적도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자식들에게 뭔가를 만들어주시기엔 너무 바쁘셨다. 그래서 나는 직접 썰매나 얼레(연줄을 감는 것) 따위를 만드느라 톱과 망치를 늘 손에 달고 살았다. 아버지가 내게 만들어주신 것은 딱 하나가 기억에 남아 있다. 여섯살이 되던 해, 설을 앞두고 만들어주신 방패연이다. 그날의 하얀 방패연은 지금도 내 고향마을의 파란 하늘 위를 날고 있다.
연은 한지에 살을 붙이고 실을 매면 날아오르지만, 살을 만드는 데 제법 기술이 필요하다. 살은 묵은 대나무를 5mm 넓이로 쪼개, 속살 부분을 벗겨내고 2~3mm 두께로 만든다. 양쪽 끝을 잡고 둥글게 휘어보아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아야 제대로 된 것이다. 어릴 적에는 한지가 귀해서 시멘트 포장지나 달력을 잘라 가오리연을 만드는 것이 보통이었다. 가오리연은 살 2개만으로 뚝딱 만들 수 있으니, 맘에 들지 않으면 하루에도 몇개씩 새로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방패연은 꼭 한지를 써야 하고 살이 5개나 필요한데다, 균형이 잘 맞지 않으면 연이 자꾸 뒤집어진다. 만들기가 쉽지 않아서, 방패연을 날리는 것은 그 자체로 자랑거리였다.
서양에서는 플라톤 시절부터 연을 날렸다 하고, 동양에선 안록산이 양귀비에게 내통하는 신호를 보내기 위해 연을 날렸다는 이야기가 전하니, 연의 역사는 꽤 오래됐다. 외국에는 솔개나 나비 모양의 연 등 종류도 다양하고 모양도 색다른 것이 많다. 그런데 우리 조상들이 날리던 연은 ‘방패연’과 ‘가오리연’ 뿐이고, 모양도 소박하기만 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연날리기가 일반화된 것이 그리 오래되지 않아서일 것이다.
고향을 떠나고 어른이 된 뒤로는 나도 연을 잊고 지냈는데, 몇해 전부터 다시 만들기 시작했다. 시장에서 파는 연을 아들에게 사주고 보니 그림이 인쇄된 비닐에 철사를 테이프로 붙여 대충 만든 것이었다. 그렇게 정성이 없이 만든 것을 어떻게 연이라고 할 수 있겠나 싶었다. 중부 이북지방에서는 연을 만들 줄 알아도 살을 만들 대나무가 없어 못 만든다는 사람이 많다. 나는 주말농장의 지주용으로 쓰려고 고향에서 베어온 대나무를 이용하곤 한다. 어쩌면 내가 연날리기를 너무 좋아해서 아이 핑계로 연을 만들어 날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올해는 ‘새’ 모양을 본떠 연을 만들어보았다. 지난해 멕시코에 갔을 때 대통령궁 앞 광장을 뒤덮은 ‘콘도르’(중남미인들이 신성시하는 독수리처럼 생긴 맹금류) 모양의 연을 잘 봐뒀다가 흉내를 내본 것이다. 모두 3개를 만들었는데, 얇은 부직포로 만들어 바람을 덜 받게 만든 것이 가장 안정감이 있었다. 한지로 만든 것은 바람을 너무 받아 꼬리를 달고서야 비로소 균형을 잡고 하늘로 올랐다. 그 연을 이제 겨우 두어번 날렸을 뿐인데, 벌써 정월 대보름이 다가오고 있다. 대보름이 지나고도 연을 날리면 옛날에는 ‘상놈’ 소리를 들었다. 농사일을 준비할 때가 됐는데 놀고 있다는 얘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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