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남구 기자의 주말농장]
▣ 정남구 기자/ 한겨레 경제부 jeje@hani.co.kr
어릴 적 내가 가장 먼저 안 서양 화가는 프랑스의 밀레였다. 그의 그림을 찍은 사진들은 액자에 담겨 이발소 같은 곳에 흔히 걸려 있었다. 모델들이 우리네 사는 모습과 그다지 다르지 않았던 까닭에 그것들은 조금도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화가수업 시절 고흐는 밀레를 따라 배웠는데, 그는 자신이 그린 에 대해 이렇게 쓴 적이 있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등잔불 밑에서 감자를 먹는 이 사람들이 접시에 가져가는 바로 그 손으로 감자를 수확했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얼마나 정직하게 음식을 벌었는가를 말하고 싶었다.” 밀레의 그림들을 보면, 나는 밀레 또한 고흐와 같은 마음으로 그림을 그렸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밀레의 그림들은 지금도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그것은 낭만이 아니라, 사람 세상의 먹이사슬에서 가장 밑바닥에 있는 ‘초식동물’들의 고된 노동을 표현한 것이다. 밀레의 그림 가운데서도 추수가 끝난 들판에서 세 여인이 밀 이삭을 줍고 있는 모습을 그린 가 가장 마음을 울린다. 그것은 결코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정지용의 시 ‘향수’에도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이란 대목이 있다.
가을걷이가 끝난 텅 빈 들녘을 보고 있노라니 벼 이삭을 줍던 어린 시절이 눈앞에 그림처럼 펼쳐진다. 거의 모든 일을 사람이 손으로 하던 시절, 가장 고전적인 벼수확 방식은 낫으로 벼를 베어 묶어 낫가리를 지어놓았다가 겨우내 훑테로 훑는 것이었다. 요즘은 콤바인으로 벼를 수확하는데 기계는 사람의 손만큼 섬세하지 못해서, 손으로 할 때보다 논바닥에 흘리는 이삭이 훨씬 많다. 그러나 요즘은 이삭줍기를 하는 사람을 거의 볼 수 없다.
하지만 예전에는 벼를 베어 거두고 나면 온 가족이 망태기나 비닐포대를 들고 논바닥에 떨어진 벼 이삭을 주으러 다녔다. 그렇게 한나절 이삭을 주워봐야 한 마지기에 벼 몇 되밖에 거두지 못하지만, 한톨이 아쉬울 때였으니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벼 이삭만 주워모은 것은 아니다. 고구마를 캔 밭, 땅콩을 캐고 난 밭을 다시 뒤엎어 흙 속에 남아 있던 ‘이삭’들을 주워모으기도 했다. 원래 이삭은 가난한 이들과 날짐승들을 위해 남겨둬야 하는 것이었지만, 그때는 모두가 가난했다.
구약성서 시대의 형법·민법서라 할 수 있는 ‘레위기’(19장 9~10절)에는 이삭줍기에 대한 규정이 나와 있다. 거기엔 여호와의 명령으로 “너희 땅의 곡물을 벨 때에 밭 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며, 너의 포도원의 열매를 다 따지 말며, 포도원에 떨어진 열매도 줍지 말고 가난한 사람과 타국인을 위하여 버려두라”고 쓰여 있다. 밀레의 그림 속의 여인들도 주인이 따로 있는 밭에서 이삭을 줍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사람이 함께 어울려 살려면 나눔이 있어야 한다. 지금 우리는 가난한 이들을 위해 과연 이삭을 남겨놓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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