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남구 기자의 주말농장]
▣ 정남구 기자/ 한겨레 경제부 jeje@hani.co.kr
“웬 뚱딴지 같은 소리야?”라고 하자, 아들 녀석이 눈이 동그래져서 되물었다. “뚱딴지가 뭐예요?” 아직도 말을 배우는 중인 일곱살짜리에게 설명하기 참으로 어려운 단어다. ‘어처구니가 없다’는 말에도 아들녀석은 똑같은 반응을 했었다. 어처구니란 맷돌의 손잡이다. 그럼, 뚱딴지는? 제일 먼저 생각한 답은 ‘돼지감자’인데, 그렇게 설명해봐야 아이가 알아들을 리가 없다. 맷돌 손잡이를 보여줬던 것과 똑같이 나는 ‘뚱딴지’를 직접 보여주기로 했다.
주말농장에 다녀오는 길, 내가 출퇴근할 때 지나다니는 농촌마을의 길가에 뚱딴지가 자라고 있는 것을 여러 번 본 적이 있다. 강북 강변로를 타고 일산에서 서울로 들어갈 때 성산대교에서 양화대교 사이 길가 언덕에도 뚱딴지가 많이 자란다. 국화과의 이 식물은 언뜻 보면 해바라기로 착각하기 쉽다. 이파리는 해바라기보다 조금 길쭉한 편이지만, 키가 쑥쑥 잘 자란다. 루드베키아와 닮은 꽃은 지름이 7~8cm가량이지만 영락없이 꼬마 해바라기 같다.
아들녀석을 데리고 찾아간 길가 양쪽에 50여 그루씩 뚱딴지가 자라고 있었다. 키는 대부분 2m가 넘는데, 이미 이파리가 다 시들어 있다. 꽃이 진 자리에는 씨앗도 맺혀 있다. 줄기를 잡고 뿌리째 뽑아들었더니 자갈이 무성한 곳이라 아주 쉽게 뽑혔다. 뿌리 끝에 뚱딴지가 1~2개씩 달려나왔다. 표주박처럼 생긴 것도 있고 토란 모양도 있는데, 둥글지 못하고 제멋대로인 것이 정말 ‘뚱딴지’ 같다. 덜 여문 초가을에 캐보면 여기저기에 혹 같은 것이 붙어 있어서 모양이 더 우스꽝스럽다.
내가 살던 고향에서는 뚱딴지를 밭에 재배한 적이 없다. 그래서 나도 중학교 때 노력봉사를 나가서야 처음으로 뚱딴지를 보았다. 1960년대에는 정부가 뚱딴지를 알코올 생산용으로 농가에 재배하도록 권장한 적도 있다고 한다. 길가 빈 터에 제멋대로 자라는 뚱딴지는 아이들이 들에서 놀다 심심하면 하나씩 캐먹던 것이다. 먹어본 친구들이 ‘맛있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뚱딴지 3개를 캐다가 방 안에 그냥 놔두자 하룻밤 만에 껍질이 쭈글쭈글해진다. 애써 캐왔으니 한번 먹어보기로 했다. 칼로 뚝 써니 속살이 우유만큼이나 하얗다. 얇게 썰어 입에 넣어보았다. 수분이 많아 시원하고 구수한 맛이 난다. 감자처럼 비릿하지 않고, 씹을수록 단맛이 생기는 게 고구마에 더 가깝다. 그래도 돼지고구마가 아니라 돼지감자인 것은 구근이 줄기가 부풀어 만들어진 ‘덩이줄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고구마는 뿌리가 부풀어 생긴 ‘덩이뿌리’다.
뚱딴지는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란다. 하지만 사람이 많이 먹으면 속이 쓰리고 소장에서 흡수하지 못해 발효가 많이 돼 곤란한 일이 생긴다고 한다. 그래서 가축 먹이로나 쓰다 보니 돼지감자가 됐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 뚱딴지가 약재로 인기를 끌고 있다. 뚱딴지에 많이 들어 있는 이눌린이란 성분이 당뇨병에 효과가 뛰어나 천연 인슐린 소리를 들을 정도라고 한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뚱딴지를 재배해 파는 사람들도 있다. 세상엔 쓸모없는 식물은 없다는 걸 뚱딴지가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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