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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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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두콩을 아십니까

등록 2005-01-26 00:00 수정 2020-05-03 04:24

[정남구 기자의 주말농장]

▣ 정남구 기자/ 한겨레 경제부 jeje@hani.co.kr

몇해 전 일본에 갔다가 과자처럼 포장된 선물을 하나 받았다. ‘아마낫토’라고 했다. ‘아마’는 일본어로 ‘달다’는 뜻이고, ‘낫토’는 콩요리다. 요즘은 우리나라에도 제법 많이 알려진 일본 음식 낫토는 젓가락으로 집어올리면 끈적끈적한 거미줄 같은 것이 많이 생기는데, 이것은 우리나라의 청국장 비슷한 ‘이토히키 낫토’다. 아마낫토는 이와 달리 콩을 설탕과 함께 졸여 과자처럼 만든 것이다. 나는 그때 아마낫토를 처음 먹어봤는데 놀란 것은 콩의 크기였다. 어른 엄지손가락 한마디만 했다.

그것이 우리나라에서도 한때 많이 재배하던 작두콩이라는 사실을 안 것은 꽤 시간이 흐른 뒤의 일이다. 작두콩은 우리가 아는 콩 가운데 가장 크다. 샘플을 재본 연구가들에 따르면, 익어서 바짝마른 작두콩은 길이가 2~3.5cm, 넓이는 1~2cm, 두께는 0.5~1.2cm나 된다고 한다. 작두콩이란 이름은 콩 꼬투리가 작두날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인 것이다. ‘칼콩’(영어이름도 ‘sword bean’이다)이라고도 하고, 한자로는 ‘도두’(刀豆)라고 쓴다.

열대아시아 원산인 작두콩이 우리나라에는 언제 들어왔는지는 모르지만 꽤 오래전부터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전쟁 이후에 거의 사라졌다니, 내가 어릴 적에 그것을 못보고 자란 것은 당연하다. 물론 내 기억에는 전혀 없지만, 어릴 적 우리 고향 마을에도 작두콩이 있었다고 누이는 말했다. 작두콩이 점차 사라지게 된 것은 면적당 수확량이 적어서였을 것이다. 콩알 하나의 크기는 아주 크지만, 잎만 무성하고 열매가 많이 열리지 않는 것이다.

이제야 고백하는데, 실은 지난봄 나도 작두콩을 주말농장 밭에 심었다. 고향집에 갔다가 서랍 속에 있던 씨앗을 다섯개 얻어다 심은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도무지 싹이 올라오지 않았다. 대개 껍질 부분이 두꺼운 씨앗들은 싹이 잘 트지 않는다. 수분을 잘 흡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심은 자리를 파보니 씨앗조차 보이지 않았다.

낙심하고 있던 차에 우연히 형님 댁에 들렀다가 화분 여러 개에 작두콩을 심어놓은 것을 보았다. 형님은 씨앗을 미리 물에 불려 싹을 틔운 뒤에 심었다고 했다. 그런 방법 말고도 콩의 배꼽 반대편에 0.2~0.4mm 깊이로 상처를 내면 수분 흡수율이 높아져 발아율이 올라간다고 한다. 형님이 미리 싹을 틔워 심어놓은 작두콩 화분을 두개 얻어왔지만, 이번에도 실패였다. 싹이 더 올라오지 못하고 곰팡이가 슬어버린 것이다. 벌레들에게 공양한 셈 친 여름 배추와 함께 지난해 내 농사의 두 가지 실패작이었다.

형님 댁 작두콩은 씨앗 하나가 제대로 자라 6월께 꽃을 피우고 커다란 꼬투리를 드리웠다. 우리동네 어느 집 화분에서도 작두콩 넝쿨이 계단 난간을 타고 올라 열매를 맺은 것을 보았다.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작두콩이 얼마나 몸에 좋은지는 잘 모른다. 그러나 어떤 작물이든 그것이 사라지게 해서는 안 된다고 나는 믿는다. 한때 사라졌던 작두콩을 되살려 요즘 상업적으로 재배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으니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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