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남구 기자의 주말농장]
▣ 정남구 기자/ 한겨레 경제부 jeje@hani.co.kr
나는 선물을 받는 데 익숙하지 못하다. 아무리 선의라고 해도 선물은 그만큼의 무게로 마음에 남곤 한다. 내가 속 좁은 사람이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요즘 세상에서는 의례적인 선물은 ‘안 주고 안 받는 것’이 사람 사이를 오히려 더 돈독하게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정말 따뜻한 마음이 담긴 선물도 가끔은 있어 나를 곤혹스럽게 한다. 얼마 전 정말 기쁜 마음으로 선물을 받았다. 꽤 오래 알고 지내온 한 기업 관계자가 밭에서 직접 기른 고구마 한 상자를 보내왔다. 고구마라면 고향에 계신 부모님께서 직접 농사를 지어 해마다 몇 상자를 보내주시고 나도 주말농장에서 기르니, 우리 식구가 먹기에 전혀 부족하지 않다. 그러나 그분의 마음을 거절하는 것은 예의가 아닌 듯했다. 농사짓는 사람들끼리는 제 논밭의 먹을거리를 나누곤 한다. 가족이 먹기에는 남고, 그렇다고 내다팔 것도 아니어서 서로 이웃에게 인심을 쓰는 것이니 어찌 보면 선물이랄 것도 없지만, 그렇게 나누는 마음이 세상을 살 만한 곳으로 만든다.

나는 사실 고구마 덩이뿌리에 대한 욕심보다는 드물게 핀다는 그 꽃을 보기 위해 고구마를 길러왔다. 혹시나 했지만 올해도 역시 꽃은 볼 수 없었다. 옆 밭을 기웃거려도 꽃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평생 고구마밭을 그렇게 살피고 다니다가 정작 꽃은 한번도 못 보고 세상을 뜰지도 모른다. 그래도 기대를 갖고 사는 일은 즐겁다. 여름엔 몇 차례 고구마순을 뜯어 살짝 데쳐서 무쳐먹었다. 갈수록 그런 음식이 더 맛있어지는 건 나도 나이를 먹어간다는 증거일 것이다. 고구마순을 사람이 먹는 것은 아마 우리나라뿐이 아닌가 싶다. 몇해 전 중국에 갔을 때, 한 동포가 고구마순을 삶아 말린 것을 한 묶음 들고 있었다. 한국에 보내려고 중국 농민에게 받은 샘플이었는데, 그 중국인은 주문을 받고는 “그것을 사람이 먹느냐”며 놀랐다고 했다.
마음 급한 사람들은 추석 때부터 주말농장의 고구마를 캐기 시작했다. 나는 게으름을 피우며 그냥 놔뒀는데, 상강이 지나면서부터 찬 서리에 고구마순이 쓰러져갔다. 더 늦기 전에 캐내기로 했다. 모종은 겨우 4개를 심었는데 캐보니 포기마다 5개가량 고구마가 나왔다. 지난해에는 가늘고 길쭉한 고구마뿐이었는데, 올해 것은 고향에서 올라온 것보다 더 크고 색깔도 곱고 생김새까지 예쁘다. 예전 같으면 그 자리에서 쓱쓱 가마니에 껍질을 문질러 그냥 먹었을 것이다. 시원한 고구마 맛이 입 속에 느껴져 침이 가득 고인다.
옛 농촌에서는 수숫대를 발처럼 엮어 둥글게 원통을 지어 방 윗목에 세우고 고구마를 저장했다. 찬 곳에 두면 얼고, 더운 곳에 두면 썩으니 그 방법이 최선이었다. 부지런한 어머니들은 겨울이 오기 전에 찐 고구마를 5mm가량 납작하게 썰어 말리기도 했다. 꼬들꼬들하게 말려 찬 곳에 두고 먹으면 젤리 맛이 난다. 설이 다가오면 고구마 조청을 고는 냄새가 온 동네에 퍼졌다. 날로 먹고, 삶아먹고, 구워먹고, 사람과 쥐가 나눠먹는 동안 고구마는 아래쪽부터 썩어가 방 안을 고약한 냄새로 채워놓곤 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냄새마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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