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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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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만든 빗자루

등록 2005-01-07 00:00 수정 2020-05-03 04:23

[정남구 기자의 주말농장]

▣ 정남구 기자/ 한겨레 경제부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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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의 수확물은 알곡만이 아니다. 작물 재배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과 들판의 풀, 숲의 나무도 긴요하게 쓰이는 수확물들이다. 농사꾼들이 자연소재로 쓰임에 딱 맞는 도구들을 얼마나 다양하게 만들었는지 안다면 사람들은 아마 깜짝 놀랄 것이다. 쓰레기를 쓸어담는 빗자루만 해도 손가락으로 꼽아보니 내가 아는 것만 대여섯 가지나 된다.

싸리비 얘기는 다들 들어보았을 것이다. 늦가을에 1~2년 자란 싸리나무를 잘라 말린 뒤 이파리를 털어내고 그것을 끈으로 단단히 묶은 것이다. 마당을 쓸면 싸리의 가느다란 가지 부분이 바닥에 쓸리면서 ‘싸~싸~’ 소리가 난다. 싸리는 산촌에는 흔하지만 평야지대에는 그리 흔하지 않다. 있더라도 물고기를 잡는 통발, 지게에 얹는 바작 따위를 만드는 데 써야 한다. 그래서 농촌에서 싸리비를 쓰는 일은 그리 흔하지 않았다.

농촌에서는 마당 쓰는 빗자루는 대개 대나무 가지로 만들었다. 큰 대나무 한 그루의 가지를 모두 훑어내면 빗자루를 딱 1개 만들 정도가 된다. 손잡이용으로 쓸 대나무를 가운데에 꽂고 하나로 묶어 만든다. 말려서 이파리를 떼내는 것이 보통이지만, 고운 땅을 쓸 때는 푸른 댓잎이 달린 것을 쓰기도 한다. 닳아서 거의 못 쓰게 된 대빗자루는 빨리 태워없애야지 그대로 두면 도깨비가 된다는 이야기도 있다.

빗자루를 만들기 위해 일부러 집 근처에 심은 식물도 있다. 명아줏과의 식물인 댑싸리(사진)다. 크리스마스 트리 모양으로 키가 1.5m가량 크는 댑싸리는 밑동을 통째로 베어 퍼진 가지만 묶어서 비로 쓴다. 요즘도 농촌 마을을 지나가다 보면 댑싸리를 자주 볼 수 있는데, 그 쓰임새를 기억하는 사람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싸리나 대나무 가지, 댑싸리로 만든 비는 너무 거칠어서 방을 쓸기에는 적당하지 않다. 방 빗자루는 갈대 이삭으로 만든 것이 가장 좋다. 갈대 이삭이 고개를 조금 내밀 때, 그것을 뽑아다가 소금물에 푹 삶아 말린다. 이런 과정을 여러 차례 반복하면 갈대 이삭이 샴푸한 머릿결처럼 아주 부드러워진다. 손잡이 부분은 둥글게 묶고, 아랫부분은 한줌씩 묶어 부채살을 편 것처럼 모양을 만든다. 너무 품이 많이 드는 게 단점이다.

가장 흔한 것은 수수 빗자루다. 급하면 방 빗자루로도 쓰지만, 주로 부엌 바닥을 쓸 때 사용한다. 수수는 빗자루를 만들기에 좋은 품종이 따로 있을 정도로 빗자루를 만드는 대표적인 재료다. 마른 이삭을 두들겨 알곡을 빼내고 남은 것이 재료다. 갈대 이삭 비를 만들 때처럼 모양나게 묶으면 된다. 물물교환이 거래의 기본을 이루던 시절, 엿장수나 ‘아이스께끼’ 장수는 돈 대신 이 싸리 빗자루를 받아가기도 했다.

봄이 되어 문에 창호지를 바를 때면, 풀을 칠하는 데 쓰는 빗자루가 필요하다. 풀비는 알곡을 떨어낸 벼이삭으로 만들었다. 겨울날 따스한 햇살 아래 앉아 볏짚에서 이삭을 하나씩 뽑아내는 것은 손힘이 부드러운 아이들의 몫이었다. 수천개의 벼이삭을 뽑아야 하나의 비를 만들 수 있다. 이것들을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게 될 날도 머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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