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남구 기자의 주말농장]
▣ 정남구 기자/ 한겨레 경제부 jeje@hani.co.kr
내 친구들은 거의 모두 어릴 적에 빨간 내복을 입고 자랐다. 아크릴 섬유 이름에서 딴 ‘엑슬란’이란 상표까지 기억하는 이들도 있다. 왜 내복은 빨간색뿐이었을까? 염색이 비교적 쉬워 그랬다는 얘기도 있지만, 역시 따뜻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색깔을 가장 잘 표현한 이는 아마도 시인 기형도일 것이다. 그는 ‘위험한 가계 1969’라는 시에서 “작은 누나의 스웨터 밖으로 나와 있던 ‘죽은 맨드라미처럼 빨간’ 내복”을 우리에게 보여줬다.
빨간 내복을 생각나게 한 것은 갈수록 따스해져가는 늦겨울의 햇살이다. ‘빨주노초파남보’가 모두 들어 있는 그 빛. 나는 노랑을, 노랑 중에서도 치자로 물들인 노랑을 가장 좋아한다. 구경만 해봤을 뿐이지만, 치자 염색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럭비공처럼 생긴 마른 치자 열매를 하루 정도 물에 담가 색을 우려낸 뒤, 그 물에 백반과 염색할 천을 함께 넣고 삶는다. 염액이 어느 정도 끓은 뒤 깨끗한 물로 헹궈 잘 말리면 천에 병아리털 같은 보드라운 색이 든다.
부러진 뼈가 빨리 달라붙게 하는 데 씨앗이 특효가 있다 하여, 몇해 전부터 곳곳에서 많이 심는 홍화(잇꽃)의 꽃도 붉은색 물을 들이는 데 쓴다. 그 외에 멋진 붉은빛을 내는 소목(사진 왼쪽) 등 천연염색 재료들이 우리나라에도 적지 않다. 그런데 우리 민족은 왜 그토록 흰옷만을 즐겨 입었을까? 최남선은 “태양의 자손으로서 광명을 표시하는 흰빛을 자랑 삼아 흰옷을 입다 나중에 온 겨레의 풍속이 된 것”이라고 했다. 빛의 모든 것을 합한 색이 흰색이니 그럴듯한 추리다. 그러나 흰옷은 세탁에 너무 많은 시간을 요구한다. 갑오경장(1894) 때 “흰옷을 입지 말라”는 칙령을 내리고, 1906년에는 아예 법으로 흰옷 입는 것을 금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우리 조상들이 흰옷을 즐겨 입던 무렵, 세계적으로 가장 흔한 옷 색깔은 염료를 쉽게 구할 수 있는 파랑이었다. 합성염료가 나오기 전까지 유럽인들은 대청이란 식물에서 얻은 파랑을 썼다. 그런데 16세기 초 대청보다 30배나 짙은 색을 내고 값도 싼 ‘인디고’가 인도에서 들어오면서 대청 재배 농가들이 파산지경에 놓이게 됐다. 각국은 인디고의 사용을 법으로 막아보았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이때 프러시아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대제는 대청 재배 농민을 보호하기 위해 군복을 대청 염료로 물들이게 했다고 한다. 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독일군의 군복 색깔이 된 ‘프러시안 블루’다. 19세기 후반, 프랑스 군인들이 빨강바지를 입기 시작한 것도 비슷한 경우다. 독일에서 개발된 합성염료에 맞서 꼭두서니 재배 농가를 보호하려던 것이었다. 에바 헬러의 <색의 유혹>에 나오는 이야기다.
대청도 꼭두서니도 결국은 값싼 합성염료들에 밀려났다. 국가의 보호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그렇긴 해도, 나는 농업 개방의 파도가 더욱 거세게 몰아치는 요즘, 우리 정책 결정자들이 군인들에게 감히 빨강바지를 입힌 프랑스인들의 고민을 꼭 한번 생각해보기를 간절히 바란다.
‘정남구 기자의 주말농장’은 이번호로 연재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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