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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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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리모컨’ 문

등록 2005-06-08 00:00 수정 2020-05-02 04:24

▣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리모컨이 멈춘 것은 31번 캐치온의 네거티브 화면으로 바뀌고 나서였다. 가끔 리모컨이 자동으로 VCR이나 케이블, 위성으로 바뀌어 채널이 안 눌려지는 경우가 있다. 이런 생각이 머리에 떠오르긴 했지만 잘 돌아가던 채널이 그렇게 바뀌기야 하나. 가슴에 한번, 따끔 하는 압박이 왔다. 곧바로 TV 버튼을 눌렀다.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TV로 수신호가 바뀌었다는 표시가 뜨지 않았다. 등의 땀구멍에서 식은땀이 분사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버튼을 누르는 것이 이제는 반응하지 않는 죽어가는 몸에 심폐소생술을 하는 것처럼 결사적이 되었다. 채널 버튼에 음량 버튼에 화면표시에 취침예약에 아무 버튼이나 마구 누르기 시작했다. 네거티브 화면의 영화는 소리를 키우지도 조용해지지도 않고 표준화면 그대로 멈춰 있었다. 그래, 이제 인정해야 한다. 리모컨은 숨을 거둔 것이다.
유세차 모년 모월 모일에 구씨는 두어 자 글로써 리모컨의 행장과 회포를 총총히 적어 영결하노라. 애통하도다. 리모컨아. 너를 손 가운데 지닌 지 우금 10년이라. 어이 인정이 그렇지 아니하리오. 앉으나 서나 누워서나 너만 손 안에 있으면 네가 갖다 바치는 세상을 걸신 들린 듯 탐했으되, 네가 귀한 줄을 모르고 살았구나. 텔레비전이나 비디오 닦을 때 그 걸레로 너의 몸을 닦았고, 얼마 전에는 채널 버튼에 낀 때가 심각해 내가 너를 ‘더러운 놈’이라고 욕까지 했다. 버튼을 누를 때면 너는 오른편 머리의 빨간 불빛을 앙증맞게 반짝였고 TV는 그 빛을 받아 파란 빛을 윙크했다. 집은 좁아서 1m 앞에 텔레비전을 두고 있지만 텔레비전의 버튼을 신용치 않은 것은 너의 민활함과 우직함, 멀티플레잉을 믿고 높이 샀기 때문이다. 텔레비전에 채널 설정 기능이 있더냐, 음성다중 기능이 있더냐. 텔레비전도 너를 믿고 채널, 음량, 전원 버튼만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가끔씩 조카들이 놀러와 너를 사랑해 온 종일 나에게 너를 만질 기회가 돌아오지 않아 나의 화를 돋우기도 했지. 너를 갖고 화장실도 가고 부엌도 가고 그러다 어딨는지 몰라 애를 태우며 너에게 위치추적 장치라도 달아 너의 출처를 바로바로 알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랐던 적도 있었지. 모두 다 너로 인해 행복했던 시절이었음에랴. 오호 통재라. 내 너에게 무쇠 같은 놈으로 짝을 맞춰 새로운 생명으로 소생시킬 터이니 너의 자장을 뻗쳐 다시 나를 기쁘게 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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