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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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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지법 취재하다 ‘폭도’ 몰린 그 감독 “국가의 예술인 탄압 막는 첫 판례 만들 터”

정윤석 다큐멘터리 감독 인터뷰
언론 보도에도 수사에도 그의 영상 쓰였는데 2심서도 벌금 200만원 유죄… 함께 취재했던 JTBC만 불기소
등록 2026-01-01 21:46 수정 2026-01-06 13:44
2025년 8월1일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판결 직후 기자회견을 마치고 나오는 정윤석 감독. 배명현 작가(bae6459@gmail.com) 제공

2025년 8월1일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판결 직후 기자회견을 마치고 나오는 정윤석 감독. 배명현 작가(bae6459@gmail.com) 제공


 

“제가 만든 그 어떤 작품보다 이 사건의 수사·재판 과정이 가장 중요한 기록이란 생각이 듭니다.”

정윤석은 다큐멘터리영화를 만드는 예술가이자, 사회적 사건과 현상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저널리스트다. 그는 지난 20년 동안 카메라를 들고 ‘시대’를 누볐다. ‘논픽션 다이어리’(2013)는 지존파 사건과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를 통해 1990년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와 형법제도의 모순을 다뤘고,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2017)는 반공이데올로기·권위주의·무한경쟁이 공존하는 사회 속에서 발버둥 치는 2010년대 청년들의 모습을 그렸다. 그리고 ‘진리에게’(2023)는 페미니즘·악플·여성인권 문제를 모두 받아안은 세대의 아이콘 설리의 마지막 모습을 담아냈다. 또한 광우병 촛불집회, 용산 참사, 노무현 대통령 서거, 세월호 참사,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태원 참사 등 사회를 관통한 각종 사건 현장을 발로 쫓으며 생생한 기록을 남겨왔다.

1만5천 명 ‘무죄 탄원서’에도 또 벌금 200만원 판결

그런 그가 이번엔 윤석열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 당시 서울서부지방법원 난동 사태 현장을 영상으로 담던 중에 ‘피고인’이 됐다. ‘기록하는 자’에서 ‘사건의 당사자’로 위치 전환이 된 셈이다. 정 감독은 2025년 1월19일 서부지법에서 체포돼 특수건조물침입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고, 1심에서 200만원의 벌금형을 받았다. 박찬욱·김성수 감독 등 영화인과 시민사회단체, 우원식 국회의장 등 정치인, 일반 시민 등 1만5천 명이 연명한 ‘무죄 탄원서’와 국제영화인단체 등의 성명서에도 불구하고 2025년 12월24일 열린 2심에서도 벌금 200만원 판결은 그대로 유지됐다. 2심 판결 뒤 일주일이 지난 12월30일 오후 정윤석 감독을 만났다.

2심에서 ‘무죄’가 나오리라는 모두의 예상을 빗나간 허탈한 결과지만, 정 감독은 놀랄 만큼 담담했다. “저를 대리한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변호사님들도 당황했다지만, 저는 예상했던 결과예요. 1심부터 법원이 국민참여재판 요청도 거부하고, 다른 극우 난동자들과 재판을 분리해달라는 요청도 거부했잖아요? ‘전원 유죄’라는 자신들의 도그마(신념)를 깨지 않으리라는 게 제 생각이었어요.”

2025년 8월1일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판결 직후 기자회견을 하는 정윤석 감독. 배명현 작가(bae6459@gmail.com) 제공

2025년 8월1일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판결 직후 기자회견을 하는 정윤석 감독. 배명현 작가(bae6459@gmail.com) 제공


경찰도 “죄 없는 것 안다” 했는데 구속영장 청구에 충격 받아

사건 당시를 정확히 설명해달라는 요구에 정 감독은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며 연신 미간을 찡그렸다. 아직도 당시 기억은 상처로 남아 있다. 2024년 12월3일 비상계엄이 선포된 뒤 그는 동료에게 빌린 이엔지(ENG) 카메라를 들고 국회로 향했다. 계엄군에 항의하기 위해 몰려든 시민들의 모습을 기록하고, 이후 윤석열 탄핵 찬반 집회가 잇따라 열린 용산구 한남동의 풍경을 담아내며 길 위에서 20여 일을 보냈다. 그리고 윤석열의 구속영장이 발부된 2025년 1월19일 문제의 ‘서부지법 폭동’이 벌어졌다. “윤석열 구속 반대를 외치는 시위대는 계속해서 ‘스톱 더 스틸’(Stop the Steal)이라는 부정선거 음모론 구호를 외치며 ‘죽여라’ ‘저항권을 행사하라’고 소리쳤어요. 사실상 서부지법 폭동은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였던 겁니다.”

폭동 사태를 인지한 정 감독이 서부지법 맞은편에 택시를 타고 도착한 시각은 1월19일 새벽 3시43분. 이미 경찰의 검거가 시작됐고 제이티비시(JTBC), 문화방송(MBC), 티브이(TV)조선 등 언론사 기자들도 집결하고 있었다. 서부지법 안으로 진입이 불가능했고, ‘폭동 가담자들이 일부 언론사 기자를 폭행하고 카메라를 빼앗는 사태까지 벌어졌다’는 사실도 전해 들었다. 말 그대로 전쟁터였다. 경찰의 (검거 장면) 촬영 불가 조치에 서부지법 골목길에서 대기만 하던 그는 ‘펑’ 하는 소리에 본능적으로 카메라를 켠 뒤 후문 울타리 쪽에 서서 촬영을 시작했다. 서부지법 안으로 들어선 시간은 새벽 5시15분께였다. 그러다 5시30분께 최루액까지 뿌리는 경찰에 그는 체포됐다.

“저는 카메라를 들고 있었고, 경찰에 저항하지도 않았어요. 당시 네이버 프로필, 제이티비시 보도 영상 크레디트, 촬영본이 담긴 메모리카드까지 제출했고, 제가 찍은 영상은 경찰이 폭동 가담자를 선별·수사하는 데 쓰였습니다. 경찰서에서 담당 경찰조차 ‘감독님은 죄가 없는 것을 안다’고 했으니까요.”

하지만 ‘훈방조치’로 끝날 줄 알았던 그의 혐의는 어느새 ‘일반건조물침입’도 아닌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공동주거침입)’으로 바뀌어 있었고, 구속영장까지 청구됐다. 영장은 실질심사 과정에서 기각됐지만, 정 감독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영등포서 사건 담당 경찰의 진술조서에도 “그가 비디오카메라로 집회 참가자들을 촬영 중이었고, 다른 가담자들과 함께 돌멩이 등을 던지는 것을 보지 못했으며, 법원 울타리 내로 침입한 사람들은 전원 체포하라는 윗선의 지시에 따라 체포했을 뿐”이라고 돼 있다.

2025년 8월1일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판결 직후 기자회견을 하는 정윤석 감독. 배명현 작가(bae6459@gmail.com) 제공

2025년 8월1일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판결 직후 기자회견을 하는 정윤석 감독. 배명현 작가(bae6459@gmail.com) 제공


카메라 든 예술가에게 공포감 느낀 이, 한 명이라도 세웠나

그의 체포·기소·재판은 함께 서부지법 안으로 진입했던 제이티비시 취재진이 공익성을 인정받아 ‘불기소 처분’을 받은 것과도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이티비시는 이 사건 보도로 ‘이달의 기자상’ ‘이달의 방송기자상’ 등을 잇달아 받았다.

“제가 계엄·탄핵 사태 과정에서 찍은 영상은 제이티비시가 2024년 12월14일 방영한 ‘특집 다큐-내란 12일간의 기록’에도 활용됐어요. 다큐 방송 엔딩 자막에도 ‘화면 제공 정윤석’으로 표기됐고요. 함께 서부지법 안에 들어갔던 제이티비시 프리랜서 취재진과 제가 달랐던 점은 딱 한 가지인데, 저는 어떤 언론에 속하는 것을 거부하고 ‘개인 예술가’로 활동했다는 점입니다.”

정 감독 사건은 ‘예술가와 언론사 소속 기자의 공익적 활동이 근본적으로 다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 보고서를 보면 ‘저널리스트는 사건을 기록하고, 문제를 분석하며, 사실을 수집하고, 정보를 처리해 공익적 사안에 대해 사회에 알리는 사람들’을 말한다. 기록자로서 카메라를 들고 사건 현장에 뛰어든 정 감독과 제이티비시 취재진의 ‘공익성’은 전혀 다를 바가 없는 셈이다. “검찰과 법원의 논리에 따르면 앞으로 언론사 소속 기자가 회사를 떠나 카메라나 펜을 들고 현장에 갔다가 경찰에 체포될 경우 그들 모두가 정윤석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정 감독은 이번 사태를 ‘예술가의 공익적 활동의 가이드라인을 국가가 정하겠다’는 폭력적 선언이라고 단언했다. 그런 점에서 2심 판결은 1심 판결보다 오히려 더 후퇴했다고 했다. 2심 재판부는 “다수의 건조물 침입 등 범행으로 피해자들이 심각한 정신적 피해를 보았는데, 그들로선 정 감독의 침입 동기를 구분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정말 카메라를 들고 기록하는 예술가를 보고 서부지법 근무자들이 공포감을 느꼈다면, 최소한 그렇게 진술하는 증인을 단 한 명이라도 법정에 세웠어야 합니다. ‘침입 동기를 구분할 수 없다’는 건 재판부의 자의적 판단일 뿐이잖아요.”

박근혜 정부 ‘문화계 블랙리스트’ 피해자 중 한 명인 정 감독은 이번 사태가 예술인에 대한 국가의 탄압을 막고자 2022년 시행된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의 보장에 관한 법률’(예술인권리보장법)에도 어긋난다고 주장한다. “제6조는 예술인 지위·권리 보장에 관해 이 법이 다른 법률보다 우선하고, 제7조는 공무원 등이 폭행·협박·불이익 위협 등으로 예술인의 활동 등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검찰·법원 모두 공무원인데, 왜 이 법의 적용을 받지 않을까요?”

2024년 12월3일 비상계엄 선포 뒤 정윤석 감독이 촬영한 국회 내부 모습. 정윤석 감독 제공

2024년 12월3일 비상계엄 선포 뒤 정윤석 감독이 촬영한 국회 내부 모습. 정윤석 감독 제공


“법 무시해 벌어진 계엄이기에, 법원 존중하지만”

자신의 촬영본이 폭동 가담자 채증 자료로 쓰인 탓에 극우 유튜버들의 공격까지 받으며 심신이 지치고 그 과정에서 ‘모멸감’마저 들었다는 정 감독이지만, 현재는 이 사건을 ‘나의 사건’이 아닌 ‘사회의 사건’으로 바라보고 있다. “최루액을 맞고 수갑을 차고 유치장에 입감되고 폭도로 기소되며, 예술가·기록자로서의 정체성이 부정당했다는 생각에 ‘수치심’이 들기도 했어요. 정윤석이란 예술가는 수십 년간 국가가 지원해서 만든 사회적 자산입니다. 그 감사함을 잊지 않았고 언제나 공동체를 위한 작품을 만들어왔어요. 블랙리스트 사건 때도 예술가로서 제 할 일을 한 것이라고 담담히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검찰 구형 논리에 따르면 예술가·기록자로서의 정윤석을 부정하고 폭도라는 꼬리표를 붙인 거잖아요? 문화예술계뿐 아니라 시민사회까지 검찰과 사법부의 비겁함에 분노했고, 다 함께 연대했다고 생각해요.”

정 감독은 민변 변호사들과 상의해 대법원 상고는 물론 위헌 제청을 하는 방안까지 고민 중이다. 그렇다고 그가 싸우는 이유가 단순히 ‘무죄’를 받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최종적으로 유죄 판결을 받고 위헌 제청도 기각될 수 있다는 각오를 해요. 다만 저는 이 싸움이 결국 계엄 사태가 훼손한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하는 과정이라고 봅니다. 표현의 자유, 다양성 존중, 국가의 불법적 통제에 대한 저항이 얼마나 중요한지 계엄 사태로 배웠잖아요. 그런데 도리어 검찰과 사법부는 국민의 의혹과 지탄을 받는 자신들의 권위와 정당성을 세우기 위해 잘못된 법 적용을 하며 그걸 위협하고 있어요.”

많은 사람이 정 감독에게 묻는단다. 이 싸움 역시 나중에 ‘문제적 영화’로 만드는 것 아니냐고. 정 감독은 이런 대답을 내놨다. “저는 유무죄와 상관없이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받아들일 생각입니다. 현재 시스템에 한계가 있더라도 민주시민으로서 그 결정을 존중하고 싶습니다. 계엄과 탄핵 사태가 벌어진 것은 윤석열이란 사람이 그 모든 걸 무시했기 때문 아닌가요? 하지만 만일 제가 (이 사건으로) 영화를 만들게 된다면, 그것은 ‘예술인권리보장법’ 제6조의 정신을 지키기 위해서일 겁니다. 저는 이 법의 첫 번째 판례를 만들고 싶어요. 그것이 가능하다면 제가 만든 어떤 영화보다 더 아름다운 기록으로 남으리라 믿습니다.”

지난 1년 가까운 시간 동안 ‘억울한 피고인’으로서의 자아와 ‘사회적 책무를 지닌 예술가’로서의 자아가 끊임없이 충돌하는 경험을 하며 깊은 고민 끝에 내린 정윤석 감독의 결론이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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