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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스타’ 에게 묻지 못할 말

등록 2005-05-27 00:00 수정 2020-05-03 04:24

▣ 김수현 기자 groove@hani.co.kr

친구에게 ‘요새 하루라도 듣지 않으면 입 안에 가시가 돋치는 음악이 있다’고 고백했다. “뭔데?” “쥬얼리의 <슈퍼스타>.” “요즘 텔레비전, 라디오 틀 때마다 (지겹게) 나오던데.” “국민가요라니까.”
처음 그 노래가 귀에 꽂힌 날의 풍경은 잠실 야구장. 노릇한 저녁 냄새를 피우는 푸른 잔디에 앉아 ‘소릴 높여봐’라는 언니들의 계시를 듣는 순간, 기분이 다섯 계단 상승했다. 인터넷을 몸 안의 칩으로 간주하고 사는 이 몸은 검색창으로 ‘지쳐 있던 모든 것을 버려’라고 설득하던 그들이 쥬얼리였음을 알게 됐다. 4월 초 그때, 내가 기사를 써야 했다.
나 홀로 설치한 ‘아이템 자가 검열기’ 덕분에 쥬얼리를 만날 생각은 하지 못한 채 매일 뮤직비디오를 봤다. 야구장에서도, ‘나이트’에서도, 리어카에서도 어울린다. 보편성 90점. ‘미친 듯이 밤새 춤추자’는 정도는 오늘 밤 날 가지라는 끈끈이 가사들에 비하면 씩씩하고 예쁘다. 건전성 90점. 응원단처럼 힘차게 뻗는 손발 동작은 국민체조다.
영상의 코드들이 은밀한 전략인지는 모르겠다. OL(오피스레이디), 보이시 걸, 엉금엉금 핫팬츠, 오토바이족. 하지만 가수 ‘하유선’이 에로배우 ‘하소연’을 버리고 노래 으로 “날 가수로 좀 봐줘요”라고 말하면서, 뮤직비디오의 카메라에는 육체의 아슬한 곡선들을 쉬지 않고 더듬을 것을 요구하는 그런 경우보단 덜 모순돼 보인다. 여하튼 통닭집에서 편집장이 ‘쓸 수 있지’라고 말했지만, 쥬얼리가 데뷔 5년 만에 처음으로 정상에 오른 순간 아이템의 생명력은 끝나버렸다.
그런데 사실 만남을 망설인 이유는 따로 있었다. 물어봐야 할 것 같은데 정말 물어봐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질문 두 가지. 멤버 중 한명이 팝송 <2 become 1>의 가사 ‘get it on’을 ‘게리롱’이라고 발음해버린 문제의 동영상이 ‘게리롱 푸리롱 사건’이라 명명되어 마구 떠돌고 있는데, 가십은 명확하고 독자들은 그저 궁금할 텐데, 당사자에게 소감을 물어야 할까. 하지만 피차 내 발음도 그런 걸 또 희화화할 것까지야. 고민. 또 다른 질문은 ‘<슈퍼스타>는 스티비 원더의 를 일부 베낀 것입니까?’ 리메이크와 복사와 우연을 따질 자신도 없고, 돈벌이가 제1의 목적인 그 바닥에 이 질문이 유용한가 싶기도 하고, 걔 중 누가 답할지 상상도 안 됐다. 그렇다면 내 사랑 국민가요 <친구여> <슈퍼스타>를 배출한 작곡가 박근태에게 물어야 하나. 포기. 아무튼 ‘TV음악’을 진실되게 마주하고 싶다는 위험한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조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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