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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돈의 맛

부글부글
등록 2012-05-23 19:24 수정 2020-05-03 04:26

돈의 맛. 어렸을 때 100원짜리 동전을 입안에 넣고 이리저리 빨았던 기억이 있다. 더러워 미치겠다. 어디서 굴러먹었는지도 모르는 그걸 빨다니. 뭔가 쇠맛이 비릿하게 났던 거 같다. 나이 든 요즘도 철분 부족을 못 느끼는 데는 이유가 있다. 어쨌든 어린것이 그때부터 돈맛을 알았다.

‘방통대군’과 ‘왕차관’으로 불리며 이명박 정부 지난 4년을 군림한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박영준 전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이 파이시티 개발사업 인허가 과정에서 수억원을 받은 혐의로 지난 5월18일 구속 기소됐다. 고기도 드셔본 분이 제대로 먹을 줄 안다고, 돈도 받아본 사람이 돈맛을 음미하며 제대로 챙길 줄 안다. ‘더러운 돈’은 얘기가 조금 다르다. ‘돈맛 신동’인 기자가 어린 시절 경험한 바로는 별로 맛나지 않다. 최 전 위원장은 맛없는 걸 서둘러 드시다가 ‘급체’까지 했다. 돈을 건넨 업자의 운전기사가 인터넷에 아무렇게나 떠도는 ‘자동차 트렁크 돈다발’ 사진을 내려받아 최 전 위원장을 협박했더니, 세상을 호령하던 그가 덜컥 돈을 내줬다는 것이다. 방송통신위원장 시절 인터넷을 그리도 검열하려 했던 데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진심을 몰라줘서 미안하다.

이하 제공

이하 제공

돈맛 하면 이 사람을 빼놓을 수 없다. 전두환.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일을 앞두고 전두환씨가 29만원짜리 자기앞수표를 들고 있는 그림(사진)이 전씨 집이 있는 서울 연희동 근처에 나붙었다. 디지털 화가 이하씨의 작품이다. 그는 그림 70여 장을 붙이다 현장에서 경찰에 붙잡혀 광고물 무단 부착 혐의로 즉결심판에 넘겨졌다. 전씨는 ‘전 재산 29만원’을 가지고 벌써 20여 년째 골프장을 떠돌며 ‘화려한 외출’을 하고 있다. 그런 전씨라도 이씨의 벌금을 대신 내줄 수는 있겠다. 즉결심판은 법으로 최대 20만원까지만 벌금을 부과할 수 있으니까. 전 재산이 9만원으로 줄면 어떤가. 돈맛은 전씨의 부인부터 자식, 손녀까지 실컷 맛보았거늘.

재벌가의 속내를 다룬 임상수 감동의 영화 이 개봉했다. 삼성가의 경영권 불법상속 등을 연상시키는 내용이 많다고 해서 화제다. “60억으로 200조짜리 그룹을 통째로 물려받았다”는 대사가 그렇다. 딱 3년 전 이맘때,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발행 사건의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삼성이 이겼다. 삼성가는 여전히 돈 가지고 형·동생이 싸운다.

얼마 전 동문모임에 나갔다가 파업 중인 방송사에 다니는 한 선배를 만났다. 잘 아는 사이가 아니었다. 어디 다니냐고 나에게 물었다. 한겨레에 다닌다고 했다. 표정이 이상해지더니 ‘그래도 ○○신문보다는 낫네’라는 답이 돌아왔다. 뭔가 걱정을 해주는 것은 고마운데 월급이 기준이라니. (파업 중이라 월급도 못 받는) 그쪽 사정보다는 낫다고 대꾸해줬다. ‘디스코의 여왕’ 도나 서머가 암으로 숨졌다는 소식이 들린다. 그의 대표곡 중에는 (She Works Hard for the Money)는 노래가 있다. 설마 그럴라고.

어쨌든 이번달 카드값이 월급만큼 나왔다. 이건 다 고대 마야인의 달력 때문이다. 마야 달력에 따르면 2012년에 인류가 망한다고 했다. 아내와 나는 그따위 얘기를 다룬 영화를 본 뒤 저축을 하지 않았다. 어차피 다 같이 망할 거 2012년까지는 팍팍 쓰자는 거였다. 그런데 최근 7천 년 이상의 미래를 기록한 마야인의 새 달력이 발견됐다고 한다. 망할. 당구장에 걸린 ‘야시꾸리한’ 달력에도 다음해 첫 달 정도는 서비스로 붙어 있거늘. 젠장.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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