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김봉규 기자
섬에서 자란 소년은 ‘일인자’라는 단어에 누군가를 떠올리곤 했습죠. 제주섬 사람들이 보통 ‘육지’라고 부르는 한반도 소년들과는 상상의 방향이 달랐습니다. 가령 섬소년이 코 흘리며 학교에 들어간 1980년대엔 전두환 대통령이 일인자였습니다. 그러나 소년의 머릿속 ‘일인자’ 모습은 머리 벗겨진 장군님이 아녔습니다. 섬소년은 생각합니다. 모름지기 일인자란 떡 벌어진 어깨에 구릿빛 얼굴을 해야 한다. 튼튼한 허벅지에 거대한 몽둥이를 들 괴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 송충이 같은 눈썹을 한 일인자는 왼손에 코코넛을 들고 있습니다. 옆에는 중요 부위만 가린 젊은 여자들이 거대한 나뭇잎으로 된 부채를 흔들고 있죠. 이런 형상의 일인자에 어울리는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추장’입니다. 일본판 문고본 중역이 틀림없었을, 계○문고판 <15소년 표류기>를 너무 열심히 읽어서였을까요? 일인자라는 단어에서 대통령도 아닌 추장을 연상한 섬소년은 오리엔탈리즘의 불쌍한 희생자였던 셈이죠. 섬소년은 대학에 입학한 1990년대 중반부터 “제주도엔 전기가 들어오냐”라거나 “한라산 백록담에서 축구공 차면 바다에 빠지냐”는 따위의 ‘육짓것’들의 오리엔탈리즘적 우문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나저나 1942년생이신 우근민 제주도지사님은 <15소년 표류기>를 읽으셨을까요? 제주 성산수고를 나오셨으니 ‘바다 사나이’를 꿈꾸셨을 법도 합니다. 지사님은 바다 사나이의 꿈을 잠시 접습니다. 총무처에서 오래 관료 생활을 합니다. 국무총리 소속하에 설치됐던 중앙행정기관으로 1998년 행정자치부로 변경됩니다. 1991년엔 아직 지방자치 선거가 없었습니다. 우근민 지사는 최초로 그해 제주도지사로 임명됩니다. 섬소년이 대학생이 된 1996년엔 신한국당 국책자문위원도 지냅니다. 1998~2002년 국민회의 소속으로 또 도지사를 지냅니다. 2002년 또 당선됐지만 불법 선거운동으로 2004년 대법원에서 당선 무효형을 받습니다.
아무리 봐도 우근민 지사님, 추장을 꿈꾸신 것 같습니다. 2002년 2월 집무실에서 여성 직능단체 간부를 성추행한 혐의가 대법원에서 확정됩니다. 그래도 2010년 민주당에 복당됩니다. 탈당해서 6·2 지방선거 때 당선됩니다. 20여 년 전 섬소년이 꿈꾼 추장이 된 겁니다. 육짓것들의 오리엔탈리즘적 우문에 시달리다 보니 자연스레 오리엔탈리즘에서 벗어난 섬소년은 생각합니다. 우근민 지사도 추장을 꿈꾸셨던 게 틀림없습니다. 중문관광단지 매각 반대 행정이나 해군기지 건설 갈등 치유 같은 큰일엔 관심이 별로 없으시다죠. 대신 여자 문제엔 민감하십니다. 최근 확대간부회의에서 “일본 아오모리현에 가봤더니 ‘사과 아가씨’가 있었고, 우리나라에는 ‘인삼 아가씨’ ‘고추 아가씨’ 등이 있는데 왜 ‘제주 감귤 아가씨’는 없어졌는지 모르겠다”며 “관련 부서에서 대회 개최를 검토하라”고 지시했다죠. 없어진 지 5년 넘은 대회를 부활하라! 젊은 여성들의 감귤 같은 몸매를 평가하자! 지역 시민단체가 발칵했습니다.
우 지사님, 얼굴도 크신 게, 선탠만 하시면 20여 년 전 섬소년이 꿈꾸던 추장과 얼추 모양새가 비슷합니다. “제주도지사가 무슨 추장이냐”고 육짓것들이 제게 놀려도 이번만은 뭐라 할 말 없습니다. (추장이라는 비유법을 사용함으로써 추장을 비하하고 있는 걸 보면 섬소년, 아니 섬아저씨는 여전히 오리엔탈리즘에 빠져 있다굽쇼? 죄송합니다. 그게 금방 고쳐지나요.)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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