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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특권층의 모범이다

부글부글
등록 2011-10-28 11:19 수정 2020-05-03 04:26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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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흠. 경기가 안 좋지요? 이럴 때일수록 나라에서 좋은 정책을 펴는 게 중요하지요. 우리나라 정부에서는 무슨 정책을 펴냐고요? 섭섭하군요. 제가 최근에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내가 있을 때 경제위기를 두 번 맞아 다행”이라고요. 물론 세 번 맞아도 다행이겠고, 네 번 맞아도 다행이겠지만, 두 번 정도도 뭐 나쁘지 않습니다. 위기가 아무리 와도 경제를 살릴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정책이 뭐냐고요? 대표 정책만 말하겠습니다. 우리에게는 감세정책이 있습니다. 부유층에 세금 혜택 몰아주면, 돈은 돕니다. 경제는 살아납니다.

그런데 우리 특권층은 아직도 부자 감세의 취지를 이해하지 못한 듯해서 영 안타깝습니다. 아무래도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이 부족한 탓이겠지요. 그러니 정부가 알아서 세금을 깎아주려니 하는 안이한 태도가 보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뭐든지 해봐서 잘 아는 제가 또 나서야지요. 제 입으로 말하긴 쑥스럽지만, 새집을 아들 명의로 감정평가액보다 많이 싸게 샀습니다. 저 좋자고 하는 거 아닙니다. 세금 적게 내자는 취지입니다. 저라도 먼저 솔선수범을 보여야지요. 속 깊은 분들은 이미 눈치 채셨을 겁니다. 뿐만 아닙니다. 논현동에 있는 집 공시가격도 지난해 35억원에서 올해 19억원으로 똑 떨어졌습니다. 강남구청에서는 눈치 없이 “행정착오”라고 말한다지요? 저의 심중을 행정 일선에서도 이렇게 모르니, 그저 안타까울 뿐입니다. 제가 바로 감세정책의 최전선에 서 있습니다. 잊지 마십시오.

몇 안 되는 모범적인 특권층 가운데 눈에 띄는 분이 있어서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분이 생활 속에서 몸소 감세정책을 실천하는 모습에 저 역시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변호사 사무실을 열던 시절에 수임료를 본인 대신 직원 명의로 받아서 세금을 줄였다고 하지요? 멋집니다. 특권층의 모범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이분의 행적은 여러모로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부유층 감세정책을 쓰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부유층이 세금을 덜 내면, 그 돈으로 소비를 더해서 생산을 촉진한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분은 몸소 소비의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한 해 1억원짜리 피부관리 클리닉을 드나든다고 하셨죠. 부유층이 이렇게 화끈하게 돈을 푸셔야 경제가 돌아갑니다. 혹시 위화감을 조성한다고요? 괜찮습니다. 폐품 재활용장에서 가서 헬멧 쓰고 잠시 포즈 취하면 됩니다. 물론 이것도 너무 오래 하면 안 되지요. 피부 상하게요.

부유층과 대기업을 위한 감세정책의 효과요? 바로 나타났습니다. 최근 세계은행의 발표를 볼까요. 기업하기 좋은 나라들의 순위를 보면 우리나라가 1년 사이 8단계나 올랐더군요. 그래서 세계에서 8번째로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됐습니다. 영국이나 일본보다 낫다는 말입니다. 눈치 빠른 기획재정부 관료가 얼른 언론에 말했더군요. “현 정부 들어서 기업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대책을 내놓아 평가순위가 올라갔다”고요. 잊지 마세요, 이 부분. “현 정부 들어.” 제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내가 있을 때 경제위기가 온 게 다행이라니까요. 그런데 왜 경제고통지수는 올라가냐고요? 금융위기가 닥친 2008년 7.8%이던 고통지수가 올해 왜 8.1%까지 올라갔냐고요? 글쎄요? 제가 약속한 ‘747 공약’에는 경제고통지수 같은 약속은 없었는데요?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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