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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

부글부글
등록 2011-10-12 16:52 수정 2020-05-03 04:26
한나라당 신지호 의원. 한겨레 박종식 기자

한나라당 신지호 의원. 한겨레 박종식 기자

주(主), 어디?

문장의 주는 주어다. ‘임자말’이라고도 부른다. 주어는 문장을 책임지는 주인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문장이 성립하려면 특별한 경우만 생략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불이야”나 “수염이 석 자라도 먹어야 산다”는 말에는 관용적으로 쓰지 않는다. 명령문에도 쓰지 않을 수 있다. 건설현장을 오래 누비셨다는(그래서인지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말을 곧잘 하는) 청와대 그분도 주어를 쓰지 않는 언어 습관으로 유명하다. 물론 건설현장에서 명령문만 쓰이는 게 아니다. 긴 말보다는 빠른 삽질이 우선시돼야 하는 게 그곳이다. 앞뒤 문맥이나 상황으로 주어를 알 수 있다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된다. 어법상으로도 틀리지 않은 그분의 언어 습관을 문제 삼는 건 치사한 일이다. 그분의 용례를 보자. “가장 도덕적인 정권”임을 앞세우며 “측근 비리”를 언급하지만 주어는 없다. 과거를 되짚자면 미국산 쇠고기 파동 당시 “식탁 안전에 대한 국민의 요구를 헤아리지 못했다”는 말 속에도, 더 거슬러 올라가면 “BBK를 설립했다”는 말 속에도 주어가 없다.

그분의 언어 습관은 전염된다. 박태규 로비와 관련해 실명으로 등장한 이동관 대통령 언론특보, 그의 이름을 언급한 박지원 전 민주당 원내대표에게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인간인지 몰랐습니다”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지난 10월4일이다. 논란이 일자 이 특보는 “저를 지칭하는 주어가 생략돼 오해가 생겼다”고 항변했다. 문맥상 그 문장의 주어가 누구를 의미하는지 알고 있지만, 이 특보는 그렇게 말하면 끝이다. 이 특보는 이미 주어 생략의 비법을 전수받은 그분의 ‘입’이다.

주(酒), 오다.

예사로운 주가 아니다. 특급 소믈리에들도 그 풍미를 인정한다는 맥주 카×와 소주 참이×(레드라벨)이 2:8로 엮인 폭탄, 그것도 10개가 한 사람에게 장착됐다. 나경원 서울시장 후보 선대위 대변인 신지호 의원이 그렇게 폭탄(주) 무장하고 찾은 곳은 문화방송 ‘D-20일, 서울의 선택은’이었다. 이날 신 의원의 발언에는 폭탄의 위력이 고스란히 담겼다. 상대편인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쪽의 송호창 변호사가 양화대교 교각 확장공사를 두고 “도대체 이게 다리라고 할 수 있느냐”고 따지니, 신 의원은 “그럼 다리가 아니고 팔입니까”라는 센스를 발휘했다(“팔”이라고 했는지 “파리”라고 했는지는 여전히 분분하다). 그는 나 후보를 “온실 속의 꽃”이라고 하는 등 피아를 구분하지 못하는 발언을 이어갔다. 시청자가 먼저 알아봤다. 생방송 중 게시판에는 음주 도핑테스트를 주장하는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다음날 신 의원은 호기롭게 나섰다. “만약 내가 방송 중에 잘못된 행동을 했고, 원인이 음주였다면 문제일 것”이라며 민주당을 향해 “일고의 가치도 없는 비열한 행위”라고 반박했다. 나아가 “ 출연 전에 찬물로 샤워했다”고 주장했다. 을 다시 본다. 문득 궁금해진다. 찬물로 샤워한 건 누구인가. 신 의원 말에도 주어는 없다.

주여….

지난 10월5일에는 미8군 제1통신여단 소속 ㄹ이병이 한 여고생을 성폭행하고 노트북을 훔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지난 10월6일 경기 동두천에서는 TV를 보던 한 여고생을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는 미군 제2사단 소속 ㅋ이병이 검찰에 구속 기소됐다. 그들 모두 음주 상태였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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