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하여 도래한 신들의 사회이 연재의 마지막에서 다룰 내용은 ‘타자성(他者性)과 신앙’에 관한 문제다. 어떤 대상을 낯선 존재로 바라보고, 그렇게 함으로써 발생하는 신앙의 효과에 관한 얘기다. 이것은 한국 그리스도교를 위기로 내몰았고, 또한 한국 그리스도교가 여전히 의미 있는 신앙의 장으로 남게...2011-11-04 16:33
작은 자들의 반란 ‘작은 종교’의 탄생 지난 연재 글들에서 보았듯이 최근 한국 개신교는 시민사회로부터 집중적 성토를 받고 있다. 이는 개신교 내부에서 대안교회를 지향하는 다양한 모색을 낳았고, 그 시도들의 기저에는 규모 중심의 성공주의에 대한 성찰이 깔려 있다. 이 연재를 마무리하는 두 편 중 첫 번째인...2011-10-07 14:48
돌아온 신들의 사회에 교회 자리는 없다교회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가 붕괴된 시간, 교회는 대중, 특히 실패한 대중을 외면하고 자본주의 사회의 성공한 자들을 위한 종교로 거듭나고 있다(지난 몇 회에 걸쳐 이야기했듯이). 한국 개신교는 점차 중·상위 계층의 신앙적 동우회가 돼가고, 한국 보수주의의 태반(胎盤)이...2011-09-02 17:28
착한 기독 청년 풍요의 신학에 취하다산업사회로 질주하던 시절, 교회는 한국 자본주의의 성공주의를 가장 잘 체현하는 공간이었다. 그런데 이 시기에는 ‘민족’이라는 공동체성이 사회를 지탱하는 힘이자 교회 신앙 속에 담긴 이념이었다. 하여 성공한 자에게는 축복을 주었지만, 실패한 자에게도 위로와 재활의 메시지...2011-08-03 14:35
한국 교회를 위한 해외 선교1998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 교회의 큰 화두 중 하나는, 어울리지 않게도, 해외 선교였다. 시민사회에는 ‘단군 이래 최대 재앙’이라는 말이 유행했는데 교회에는 ‘세계 2위의 선교대국’이라는 말이 널리 회자됐고, 교회마다 해외 선교사를 파송·지원하는 붐이 일었으며, 심...2011-07-07 18:18
자본이 된 신, 신이 된 자본지난 글에서 보았듯이 민주화와 소비사회화의 빠른 변화 속에서 권리의식과 욕망의 주체로서의 자의식이 급격하게 신장한 시민층이 교회를 떠나기 시작했다. 1990년대 이후의 현상이다. 교회는 그들을 포섭하기에는 너무 권위적이다. 또 지난 글에서 말하지는 않았지만, 전통적 경...2011-06-09 19:52
시민K 교회를 떠나다2005년 통계청이 실시한 인구센서스에서 한국 개신교는 1995년과 2005년 사이에 -1.6% 성장했다. 같은 기간에 최대 종단인 불교는 3.9% 증가했고, 가톨릭은 무려 74.4%나 증가했다. 한국전쟁 직후를 제외하면 한국 개신교로선 처음 겪는 마이너스 성장의 경험...2011-05-12 15:38
성공한 소수, 개신교 운동오늘의 한국 교회를 살펴보기 위해 개신교의 과거 족적을 더듬고 있다. 이번 글은 과거로의 시간여행의 마지막이자, 지난 글에 이어 기독교 내 진보적 운동이 성장주의에 취해 있던 대다수 교회와는 다른, 의미 있는 소수로서 어떻게 비판자의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는지 살피려...2011-04-21 17:53
1970~80년대 신학의 봄향년 90살의 원로 신학자 유동식은 1982년 발표한 글에서 한국 신학이 꽃피우던 시기로 1970년대를 평한다. 나는 이런 평가를 1980년대까지 연장해도 무방하다고 본다. 우선 지난 연재글에서 본 것처럼 교회는 한국판 번영신학을 이 시기에 발전시켰다. 비록 학문적 체...2011-03-31 17:03
교회 vs 신학1970~80년대를 전후로 하는 시기에 한국 개신교가 이룩한 가파른 양적 성장의 요인을, 이전 연재 글들에서는 크게 세 가지 범주로 설명했다. ① 도시 빈민으로 편입된 이농민의 대대적인 신자화 ② 빌리 그레이엄 목사 전도집회를 비롯한 대규모 선교대회를 매개로 한 시민계...2011-03-16 18:37
예배당에 기타를 허하라1970~80년대를 전후로 하는 전대미문의 개신교 대부흥기에 대중이 교회로 유입되는 경로는 크게 두 가지로 대별된다. ‘순복음 현상’을 상징으로 하는 기도원식 부흥운동(나는 이것을 지난 글에서 ‘기도원의 교회화’라고 불렀다)이 그 하나고, 빌리 그레이엄을 상징으로 하는...2011-02-24 17:24
시민 K 교회에 나가다지난 연재글에서 1970~80년대 한국 교회의 양적 성장을 당시 대형화된 교회의 두 축인 월남자형 대형교회와 새로운 유형의 대형교회를 대조하면서 이야기했다. 전자가 대형화되는 데는 정치적 유착이 큰 요인이 되었지만, 후자는 사회적·경제적 요소에 방점이 찍힌다. 지난번에...2011-01-27 17:29
개발시대 고통 흡수해 대형교회를 세우다한국전쟁 이후 개신교회는 빠르게 성장했다. 이 시기 교회 성장의 핵심에는 반공주의와 증오의 정치가 있었다. 한데 본격적인 성장을 한 것은 1960~90년대 초까지의 기간이었다. 지난 연재글에서 보았듯, 이 시기의 성장은 반공주의를 성장·발전의 동력으로 전환시킨 ‘생산적...2011-01-06 10:31
치유와 기복, 개신교 성공시대 열다개신교 근본주의자들의 신사참배는 그들에게 씻을 수 없는 수치심을 안겨주었다. 한데 해방을 전후로 한 시기에 ‘자기에 대한 수치심’은 ‘타자에 대한 증오심’, 곧 ‘고강도의 반공주의’로 전환됐다. 이것은 테러에서 전쟁으로 이어지는 ‘파괴의 심성’이었다고 지난 연재에서 밝...2010-12-15 15:57
신사참배 수치심을 공산주의 증오로사회학자 조희연에 따르면, 남한 사회는 건국 초기부터 빠른 속도로 ‘반공규율사회’로 조직돼갔다. 이것은 일종의 ‘심성의 정치학’(politics of mentalite)으로, 반공주의라는 증오의 정치가 어떻게 남한 사회를 강력한 결속력을 가진 사회로 전환시킬 수 있었는...2010-11-24 1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