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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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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둔 부모는 콘돔을 준비하세요

등록 2006-03-02 00:00 수정 2020-05-02 04:24

아이 방에서 피임기구를 발견하고 “성폭행범이 되지는 않겠구나” 안심하다
딸 부모가 불안해하지만 가해자 될 수 있는 아들 부모는 더 전전긍긍해야

▣ 김선주/ 전 <한겨레> 논설주간 칼럼니스트

아들만 둘을 키우면서 특별히 성교육을 하지 않았었다. 성교육은 딸들에게만 필요한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들의 성교육은 아버지가 시켜야 한다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어느 핸가 중학교에 다니던 큰놈이 여름방학이 끝나고 학교에 갔다 오더니 자신의 동급생 사이에서 방학 동안에 뭔 일이 벌어져 여학생이 임신을 했고 그래서 학교를 그만두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고 했다.

“아이구 아이구… 엄마… 왜 거기까지 갔어”

변성은 했지만 아직도 솜털이 보송보송했던 아들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아이고 큰일났다 싶어서 어렵게 말을 꺼냈다. 여자들만 자기 몸을 보호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남자들도 자신의 몸을 보호해야 한다, 여자와 남자가 같이 자면 여자는 임신을 하고 배가 불러오고 남자는 아무 신체적인 이상은 없지만 아빠가 되는 것이다, 네가 아빠가 될 준비가 안 되어 있는데 그런 불상사가 생기면 어떻게 되겠니…. 뿐만 아니라 병에 걸릴 수도 있는데 너의 몸, 그러니까 아이가 될지도 모르는 너의 정자를 보호하기 위해선 하며 우물쭈물하니까 아들은 거침없이 “그러니까 꼭 콘돔을 사용하라는 것이죠” 하는 것이었다. 깜짝 놀라서 “그래, 맞다 맞다. 하늘이 두 조각이 나는 일이 있더라도 콘돔이 없으면 절대로 여자와 몸을 접촉하면 안 된다”고 누누이 일러주었다. 좀더 본격적이고 구체적인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으면서도 영 자신이 없어서 더 이상의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나 우연히 아들의 방에서 콘돔을 발견했다. 한 개가 아니고 줄줄이 이어진 세트였다. 가슴이 철렁했다. 이 녀석이 이 물건이 이렇게 많이 필요한 것인지 아니면 그냥 가지고만 있는 것인지 정말로 묻고 싶고 알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물어볼 수 없었다. 물어봤자 대답할 리도 없을뿐더러 이미 성년이 지난 아들에게 그런 것을 묻는 건 부모라도 해선 안 될 일 같았기 때문이다. 그저 콘돔을 꼭 사용하거나 사용할 마음만은 갖고 있구나 하는 것에 위안을 삼았다. 아들에게 제대로 된 성교육을 해볼 새도 없이 아들은 이미 그런 문제에 관한 한 어른이 되어 있구나 싶었다. 콘돔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로 미루어볼 때 성폭행범이 될 가능성은 없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은 들었다. 성폭행범이 콘돔까지 준비한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서였다.

엊그제 후배가 열두 살 먹은 딸과의 대화를 전해주었다.

“요즘 우리 애가 섹스에 대해 관심이 많아. 그래서 이런저런 걸 계속 물어오는데 ‘엄마 아빠도 그렇게 했느냐. 어떻게 하느냐. 나는 몇 살 때 키스를 해볼까’ 하기도 하고 대학 가면 기숙사 방에서 하겠다느니 계속 그러더라고. 며칠 전에는 ‘오늘 딱 하나 물을 거 있는데…’ 하더니 ‘엄마… 내가 책에서 봤는데… 막 있잖아… 고추를 빨고… 짬지를 빨고… 음 그런 것도 하더라. 엄마 아빠도 그런 거 했어?’ 그러는 거야. 그래서 내가 좀 망설이다가 ‘으응…’ 그랬더니 딸이 뭐라는 줄 알아? ‘아이구 아이구… 엄마… 왜 거기까지 갔어’ 그러는 거야.”

내 세대의 감각으로는 충격적일 정도로 솔직한 대화이다. 딸과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후배가 부러웠다. 참 건강한 딸과 엄마의 관계가 아닐 수 없다. 아마도 많은 청소년들이 이런 유의 의문과 호기심을 갖고 있겠지만 자녀는 부모에게 물어볼 수 없고 부모는 자녀에게 차마 이런 대답을 하기 어려운 것이 보통의 경우일 것이다.

그까짓 몸 버린 여학생 하나?

성에 대해 누가 가르쳐주지 않는데 아이들은 잘도 안다.

내 어린 시절을 돌아보아도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나는 성에 대해 잘 알았다. 물론 잘 안다고 생각했을 뿐 실제로 잘 알았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그 뒤 오랜 세월이 흘러서였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은 부모보다도 어쩌면 성에 관한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있을지 모른다. 옆에서 쌔근쌔근 잠들어 있는 초등학생 아들이 인터넷의 포르노 사이트를 매일 드나들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최근 성폭행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면서 성폭행범에게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는 여론이 높다. 특히 성범죄자의 경우 미성년자라 해도 구속하겠다는 이야기까지 나올 지경에 이르렀다. 성교육이란 딸들보다 아들에게 더 필요한 것이다. 생리적으로 성적 욕구를 주도적으로 행사하게 되어 있는 남자, 그러니까 아들에게 성교육이 꼭 필요하다는 말이다.

몇 년 전인가 밀양에서 고교생들의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이 벌어졌을 때 가해자 어머니들이 경찰서에서 당당하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 아들은 공부도 잘하고 모범생인데 호기심에서 한 일이다, 그까짓 몸 버린 여학생 하나 때문에 창창한 우리 아들들의 장래를 망칠 수 없다고 오히려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들에게 큰소리를 쳤다는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아들 가진 부모들이 오히려 더 전전긍긍해야 할지도 모른다. 딸들이 성범죄의 피해자가 될까봐 우려를 하는 것 못지않게 아들이 성범죄의 가해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부모들이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한겨레 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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