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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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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팡 아니면 뭐하고 노나

등록 2012-10-24 16:11 수정 2020-05-03 04:27

게임 ‘애니팡’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노는 시간이 부족하거나 잘 놀 줄 모르는 어른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요즘 지하철을 타면 옆자리 사람들 중 두세 명은 팡팡 시원하게 터트리고 있다. 눈에서 빛을 뿜으며 게임하는 어른들을 보며 난 뭐하고 노는 건가 자문한다.

피터르 브뤼헐의 는 말하자면 ‘월리를 찾아라’ 같은 그림이다. 틀린 그림을 찾아내려고 뚫어지게 바라봐도 화면은 전혀 밀리지 않는 팽팽함으로 긴장감 있게 꽉 짜여 있다. 그림 속 사람들은? 모두 놀고 있다. 한 화면 안에 80여 가지 놀이를 하고 있는 플랑드르 지역의 아이들이라니! 80여 가지의 따로 또 같이 노는 놀이법이 퍼즐처럼 포진해 있다. 굴렁쇠를 굴리는 아이 위로는 4명이 짝을 이뤄 팔로 의자를 만들어 친구를 태우고 있다. 혼자 빗자루에 올라타 말놀이를 하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보자기를 말아 머리에 뒤집어쓰고는 공주 흉내를 내는 여자아이도 보인다. 이 놀이가 지루해지면 다른 놀이로 옮겨가라는 화가의 조언도 숨어 있는 걸까? 그러니까 그림은 세상에는 집중해야 하는 하나의 놀이 외에 무지막지하게 다양한 놀이의 바다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비슷한 시기에 그린 (1559)에서 브뤼헐은 게으름과 낭비, 질투와 시기심, 인간의 우매함에 관한 네덜란드 속담 100여 가지를 그림으로 담아냈다. 그는 에서도 보는 이에게 무언가 ‘전달’하려는 의지를 숨기지 않는다. 하지만 이 어른을 향한 엄숙하고 교훈적인 뉘앙스를 겹겹이 품고 있는 반면, 는 좀더 구체적이고 알기 쉽게 ‘노는 방법’을 펼쳐 보인다. 뭘 하고 놀아야 하는지, 그림은 놀이에 관한 한 백과사전이나 지도 구실을 한다.

아이들은 공터에 산만하게 흩어진 것으로 보이지만 화가의 엄격한 구도 아래 배치돼 있다. 화면 오른쪽 위에서 대각선을 아래로 그어보면, 아이들이 사선 구도로 소실점을 향해 꽤 질서 있게 줄지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혼잡스러우면서도 질서 있는 그림. 아이들은 어디든지 달려갈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 선원근법 구도 안에 갇혀 있다. 그러고 보니 아이들은 죄다 하나같이 웃음기 없이 무표정한 얼굴이다.

요즘 꼬마들은 어떻게 놀까. 지난 주말엔 서울 동대문에 있는 완구 전문 시장을 걸어다닐 일이 생겼다. 시장에서 그다지 새로운 장난감을 찾지는 못했지만 오랜만에 장난감이라는 물건을 주의 깊게 만져봤다. 이런 장난감을 만들어 노는 방법을 찾아내고야 마는 인간이라는 족속은 신기하다는 생각과 함께.

독립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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