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 슬로건의 탄생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장부결심칠년성’이라는 휘호를 굵은 붓글씨로 쓰던 옛날 정치인들은 바이바이(bye bye). 요즘 대선 후보자의 슬로건과 몸짓은 초성 따기부터 초딩 뉘앙스까지 행복의 모습을 취하느라 바쁘다. 하물며 어제 택시 안에서 난 ‘119’ 대통령 후보 김문수가 부르는 노라조의 을 들어버리고 말았다. 악. 그 가사는 “아들아~지구를 부탁하노라. 아버지~ 걱정은 하지 마세요”다.
오윤의 판화 (1984)는 아빠 등에 업힌 아이의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박근혜)를 보여준다. 동시에 할머니, 엄마, 아빠, 형제가 한 공간에 모인 ‘저녁이 있는 삶’(손학규) 한 컷을 따온 듯하다. 동네 사람과 주변 노동자들을 그리는 일을 숙명으로 알았던 오윤의 세계에서 ‘사람이 먼저’(문재인)인 것은 당연하다. 고무판에 채색으로 새긴 이 판화에서 노는 아이를 위해 아빠는 몸소 호랑이가 된다. 작가가 남긴 수많은 사람의 얼굴 중에서 아빠는 가장 익살스럽고 자신감에 찬 얼굴을 가졌다. 현실의 시름을 잊고 퇴근 뒤 저녁 밥상을 받은 이후에나 호랑이를 ‘연기’할 수 있었기 때문일까. ‘어흥’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듯하다. 아빠는 오윤이 작고하기 직전 제작한 의 표정과 닮았다. 오윤이 사람 대신 웃고 춤추게 했던 도깨비! 머리에서 지글지글 기운이 타오르는 도깨비 표정은 행복과 불행의 기준을 뛰어넘는다.
오윤이 행복한 모습을 그렸던 화가냐고? 절대 아니다. 그는 동시대의 행복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물었고 쉽게 ‘행복’을 그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글 ‘행복의 모습’에서 오윤은 잘 만들어진 제품 같은 행복을 얻느라 현실에 만연한 부조리를 고심한다. 그의 인물들도 오윤처럼 고민한다. 오윤의 판화 속 사람들은 얼굴에 까만 자국이 움푹 파였다. 판화 의 선생님 얼굴엔 시름이 쌓였다. 작업복 입고 모여 있는 젊은 여인을 담은 에서도 오늘을 사는 노동의 어깨는 무겁기만 하다.
그와 함께 작업한 판화가 이철수는 오윤이 표정에 굉장히 민감한 사람이었다 기억한다. “어떤 화해로운 세상에 대해서 꿈이나 기대를 많이 가지고 계셨을 것 같고, 그런 세상에 살면 꼭 좋을 얼굴, 혹은 그런 표정, 그리고 우리가 다양한 싸움을 통해서라도 얻고 싶어 하는 그런 세상에서 어떤 표정을 짓고 살면 좋을지에 관한 얼굴 도상을 그리는 경우도 많았던 것 같아요.”(현실문화연구, 1권) 7월은 백남준이 태어난 달이기도 하지만, 1986년 오윤이 지상을 떠난 계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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