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에 “채용신의 눈은 살아 있다”고 썼는데 대체 눈이 살아 있으려면 어찌해야 하는 건지 얼마간 따져보았다. 눈알을 이경규처럼 막 굴려야 하나. 가끔은 낯선 사람과 눈 마주치며 대화하는 게 힘겨운데 눈까지 살아 있어야 한다니! 바라는 게 많다. 어쨌든 지난 주말 홍상수의 영화 를 보고 ‘다른 나라’라는 표현이 참 새삼스레 예쁘다고 생각했다. ‘다른’이라는 말이 좋은 건지 ‘나라’라는 말이 싱그러운 건지 이게 다 홍 감독이 빚어낸 귀엽고 맑은 맛 때문인지 모르겠다. 북쪽 나라라면 경기를 일으키는 이곳의 6월, 종종 다른 나라의 어떤 장면을 생각한다.
데이비드 호크니(1937~)가 찍은 프랑스 파리의 어떤 골목이다. 나에게도 다른 나라이고 영국 출신 호크니에게도 타국인 장소. 내가 한 번도 가보지 않는 곳의 해체된 풍경 사진인데 낯설지 않다. 호크니는 결정적인 하나의 순간에는 관심이 없었다. 작가는 두 개의 초록 나무와 흰 건물이 품은 어제와 오늘, 그리고 빛이 들어오는 오전과 볕이 나가는 오후 사이에 존재하는 시간을 담았다. 나뭇잎과 바닥면을 보면 밝고 어두움의 차이가 느껴진다. 장면들을 모아 붙였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원래 전체인 풍경을 조각조각 잘라냈다고 해야 할까. 분명한 것은 ‘August 7, 8, 9’라는 단서로 보아 작가는 3일 동안 초록 나무 주변을 오가며 셔터를 눌렀다는 것. 그리고 청명해 보이는 하늘이 어떤 한순간의 ‘포착’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무의 빛과 결도 모두 다른 날의 것이 한데 섞이고 묶여 있다.
다른 나라의 모두 다 다른 순간이랄까. 지도 없이 길을 걸을 때의 흔들림 또는 의 여주인공 안느처럼 깡소주를 먹고 바다를 바라볼 때 동공이 흔들리는 시점이다. 얼마 전 엘리자베스 여왕한테서 공로훈장을 받은 데이비드 호크니는 그림 못지않게 포토콜라주 작업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작가는 입체파에 영향받은 다중원근법과 좌우 옆면이 길게 펼쳐진 중국 두루마리 회화가 가진 풍경의 다차원을 오랜 기간 탐구했다. 하지만 이런 포토콜라주 작업은 1986년 (Pear Blossom Highway) 작업을 끝으로 마무리됐다. 사진의 본질은 ‘존재·부재 증명’이 아니라 ‘움직임’이라는 것을 몸소 보여준 호크니. 애초 붙들어놓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듯 또 다른 곳으로 관심을 옮겨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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