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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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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부 F4의 탄생

출산 동기와 선배들의 풍요로운 지지
등록 2012-03-08 11:12 수정 2020-05-03 04:26
임신부 F4의 탄생. 임지선 제공

임신부 F4의 탄생. 임지선 제공

“캬, 에 날 일이야.” 소식을 들은 사람들 중 몇몇은 입을 샐쭉거리며 이렇게 말했다. “도대체 그즈음 무슨 일이 있었기에 한꺼번에 이런 일이 일어나느냐”며 분석적인 자세를 보인 이도 있었다. 어떤 이는 “여기자들이 회사에 불만을 품고 테러를 일으킨 게 아니냐”는 말까지 했다.

어렵게 임신 사실을 부서에 알렸을 때 한 선배가 놀라며 이렇게 되물었다. “너도?” 알고 보니 이미 타 부서에서 3명의 여기자가 임신을 ‘보고’했단다. 여기자가 그렇게 많지도 않은데 취재기자 4명이 거의 동시에 임신한 것은 창간 이래 처음이라나.

재빠르게 수소문해 임신부 여기자 4명이 모처에서 회동했다. 모여보니 기가 막혔다. 30대 초·후반 여기자 4명의 출산 예정일은 2월6일~3월1일 한 달 사이에 오글오글 모여 있었다. 급기야 나와 지난해 7월 초에 만나 폭탄주를 엄청 마셨던 선배도 포함돼 있었다. 그러니까 그때, 둘 다 임신 상태였던 것이다! 어쩐지 둘 다 너무 취하더라니. 신기하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런저런 회사 쪽의 반응에 주눅 들지 말자며, 키위 주스 건배로 서로를 격려했다.

이후 ‘임신부 모임’은 입덧이 심한 임신 초반기를 지나 배가 나오기 시작한 임신 중반기, 손발이 붓고 몸이 무거워져 황제펭귄처럼 걷게 된 임신 후반기까지 나에게 아주 큰 힘이 되어주었다. 선후배들과 정기적으로 모여 몸 상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지금 얼마나 간식이 당기는지, 치골통으로 잠들기가 얼마나 괴로운지 서로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유모차는 뭘 살 거니, 산후조리는 어쩔 거니, 고민도 같았다.

‘출산 선배’들의 참여도 이어졌다. 출산한 지 2년이 지났든 20년이 지났든, ‘출산 선배’들은 열과 성을 다해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해주었다. 평소 인사만 나누던 한 선배는 선뜻 ‘젖꼭지 문제’를 상담해줬고, 기수가 높은 한 선배는 자기 때는 출산휴가가 2~3개월뿐이어서 젖이 흐르는 가슴을 부여잡고 일하느라 너무 힘들었다고, 그러니 너희는 1년의 육아휴직을 모두 잘 사용하라고 힘을 주었다. 맛있는 밥을 사주는 이도 여럿이었다.

신기하게도 친정과 시댁 양가에서마저 임신이 속출해 ‘여성 연대’는 더욱 확대됐다. 시댁의 시누이가 나와 이틀 차이로 임신했고, 동서도 둘째를 가졌다. 친정 여동생은 나보다 두 달 늦게 아이를 가졌다. “이거, 한국의 저출산은 이제 끝났나봐” 하며 때로는 얼굴을 보고, 때로는 전화를 걸어 속 시원하게 ‘임신 수다’를 떨었다.

임신과 출산은 분명 남녀 공동의 일이지만 임신을 하는 순간 나는 여성들에게 진한 연대감을 느낄 수 있었다. 임신 전 “왜 아기를 안 낳느냐”고 다그치는 쪽은 남성이 훨씬 많았지만, 막상 아기를 갖고 보니 도움을 주는 쪽은 대부분 여성이었다. 아이 배냇저고리부터 임부용 속옷에 이르기까지 선배들이 집에서 정성껏 챙겨다 준 물품은 세상 어떤 선물보다 값졌다. 자신의 아이가 사용하던 물건, 자기가 임신 중에 긴요하게 사용한 물건을 싸다 주는 정성 덕분에 나는 임신 기간을 누구보다 소박하게, 누구보다 풍요롭게 보낼 수 있었다.

임신부 4명이 낳을 용띠 아이들은 앞으로도 같이 커나갈 것이다. 처음 가보는 ‘엄마의 길’에 여성 연대가 있어 든든하다. 임신으로 이런저런 고민을 하는 이들이여, 주변의 누구라도 좋으니 여성 연대를 맺으시기 강력 추천한다.

임지선 한겨레 기자 sun21@hani.co.kr

*이 글은 육아 사이트 ‘베이비트리’를 통해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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