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5일은 일본 역사에서 뜻깊은 날로 기억될 것이다. 원전이 모두 가동을 멈추어 처음으로 ‘원전 없는 세상’이 됐기 때문이다. 물론 정기점검을 위한 가동 중지 조처인데다 중앙정부도 재가동을 고집하고 있으니, 지역민의 눈치를 살피고 있는 지방자치단체 수장의 마음이 바뀌면 언제라도 원전이 가동을 재개할 상태에 놓여 있기는 하다. 경제불황, 고용불안, 전기 부족을 근거로 원전의 재가동을 주장하는 기업과 정부 쪽의 반격도 거세질 것이다. 그래서 ‘원전 없는 세상’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사실 1년 전의 원전 사고와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방사성물질의 확산을 떠올려보면, 사고 뒤 1년 만에 찾아온 ‘원전 없는 세상’은 오히려 때늦은 감이 없지 않다.
원전 폐기 위해 일장기 용인하는 좌파
1960년대 이래 자취를 감췄던 대중의 항의 행동이 후쿠시마 이후 여기저기에서 일어나기는 했다. 때로는 1만 명이 넘는 항의 시위도 있었고, 젊은 층의 자발적인 시위 참가자도 과거보다 눈에 띄게 늘어났다. 하지만 대중의 열기가 눈에 띌 만한 정치적 변화를 가져다준 것은 아니다. 일본의 어느 지식인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기존의 모든 패러다임에 혁명적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 예상했지만 적어도 정치 영역에서는 거의 변화가 없었다. 사고 당시 집권 여당이던 민주당은 여전히 집권 여당이고, 후쿠시마 원전 사고 약 한 달 뒤에 있었던 지방선거에서도 원전 문제는 쟁점이 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심지어 원전 지지 후보들이 당선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아무런 변화가 없었던 것일까?
지난해 일본의 어느 언론인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원전 폐기를 위한 집회에 히노마루(일장기)를 내걸고 참석한 우파들의 문제가 일본에서 논쟁거리가 됐을 때다. 그는 후쿠시마 사고로 자신의 세계관이 바뀌었음을 강조했다. 그는 그때까지의 진보적 세계관을 일단 ‘유보’하고 모든 역량을 원전 폐기에 쏟아야 한다고 말했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되는 것’이니 우파든 좌파든 원전 폐기를 위해선 힘을 합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원래 일장기와 내셔널리즘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졌던 사람이다. 그런데 후쿠시마 사고 이후 원전 폐기를 위한 대중의 항의운동에 히노마루가 도움이 된다면 이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으로 바뀐 것이다. 굳이 말하자면 원전 폐기를 위한 통일전선 구축의 필요성이라고나 할까? 아니면 원전 폐기를 위해서라면 내셔널리즘도 용인할 수 있다는 뜻일까? 그만큼 후쿠시마 이후 일본 사회의 위기감이 얼마나 커졌는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생각해보면, 우파가 원전 폐기를 주장하는 집회에 참가하고, 좌파가 원전 폐기를 위해 일장기를 용인하는 현상이 후쿠시마 이후에 나타난 패러다임의 변화일지 모른다.
냉전 해체 이전에는 일본에서 통용되는 보수·혁신의 구분법이 있었다. 정치 지형상으로 보면 훨씬 더 복잡한 구도가 있지만 대체로 미-일 안보조약 및 자위대의 해체를 주장하고 현행 헌법을 지지하는 쪽을 혁신이라 한다면, 이에 반대하는 쪽을 보수라 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구분법이 바로 원전 문제였다. 대체로 원전 폐기를 주장하는 쪽이 혁신 진영이었고, 원전 지지를 주장하는 쪽이 보수 진영이었다. 물론 이 구도가 철옹성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평균적인 감각에서는 이런 구분법이 작동하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원전 반대 집회에 참가한 우파단체들의 행동은 이런 경계를 뛰어넘는 것이었다. 후쿠시마 이후 나타난 보수 우파의 ‘전향’이라고나 할까?
신이 내린 축복의 땅을 위하여
물론 이런 ‘전향’이 보수 우파에게 일반적인 현상은 아닌 듯하다. 대중문화 출판사로 유명한 소학관이 발행하는 이 지난해 8월 흥미로운 기사를 실었다. 보수 우파 지식인 26명을 대상으로 원전 문제에 대해 의견을 물었더니, ‘무조건 계속’이 4명, ‘조건부 계속’이 17명, ‘장래 폐기’가 1명, ‘어느 쪽도 아님’이 4명으로 나왔다. 물론 26명이 일본의 보수파를 대표한다고 할 수 없는데다 보수라는 개념도 반드시 명확한 것은 아니니 이 결과만을 가지고 보수파의 원전에 대한 태도를 모두 판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26명 중에 ‘원전 계속’을 주장하는 사람이 21명이고 ‘폐기’를 주장하는 사람이 1명에 불과하니, 위에서 말한 보수·혁신의 구분법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인상적인 것은 이 설문에 참여하지 않은 유명 보수 우파 지식인 중에 후쿠시마 이후 공개적으로 원전 폐기를 주장하는 사람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인물은 니시오 간지다. 우파 수정주의 교과서 단체인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의 초대 회장인 니시오는 지난해 7월 발표한 ‘탈원전이야말로 국가 영속의 길’이라는 글을 통해 원전 찬성에서 원전 반대로 ‘전향’했음을 선언했다. 그가 말하는 것은 아주 단순하다. 후쿠시마 사고로 원전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깨달았으니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신이 내린 축복받은 풍요로운 이 나라’를 원전이 오염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이렇게도 말한다. 전후 일본 사회는 전통을 잊고 자신을 부정하며 무방비 상태에서 후쿠시마의 재앙을 예상하지 못하고 맞이했다. 즉 후쿠시마 사고는 ‘전쟁 (가능성)을 망각하다가 습격당한’ 꼴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예상되는 외적(아마 중국이나 북한)의 침략도 예상하지 못하고 무방비 상태에서 맞이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원전을 추진하는 대신 헌법을 개정해 군사적으로 유비무환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말하고 싶은 것은 원전 자체라기보다는 후쿠시마 사고를 계기로 퍼지고 있는 일본 사회의 무력감을 유비무환의 군사대국의 길로 돌려놓기 위한 교훈으로 삼자는 것이다.
다케다 쓰네야스 게이오대학 교수의 탈원전론은 훨씬 더 복고적이다. 황족 출신답게 그는 원전은 “신성한 국토를 더럽히며 일본인의 자연관에도 맞지 않”고 ‘신의 나라’ 일본에 어울리지 않을 뿐 아니라 “천황 폐하의 신금을 울리는 일이니 반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일본인의 정신은 “사회적 약자의 생명”을 아끼는 것이니 다수의 원전 노동자를 방사선에 노출시키는 원전산업은 폐기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회적 약자의 생명”을 중시하는 것이 일본인의 정신이라는 대목에서는 흔해빠진 국가주의자들의 편의적인 ‘정신론’을 보는 것 같아 뒷맛이 개운치 않지만, 중요한 것은 탈원전을 위해 일본의 전통과 천황제를 호출하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따라서 이들의 탈원전론은 평화주의가 아니라 군사주의이고, 생태주의가 아니라 복고적 내셔널리즘에 가깝다.
탈원전이 오히려 핵무장에 도움된다
그런데 이들의 탈원전 주장이 반드시 반핵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사실 우파들은 오래전부터 일본의 핵무장을 주장해왔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도 원전을 계속 증설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우파들은 핵무기 개발을 위한 원료 확보에 원전이 유리하다는 근거를 내세워왔다. 재처리 시설을 통해 핵무기의 원료인 플루토늄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 우파 논객인 사쿠라이 요시코는 “핵을 만드는 기술은 강한 외교로 이어진다. 원전 기술은 군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며 원전 폐기가 핵무장의 기술적·원료적 기반의 붕괴로 이어질 것을 우려한다. 도쿄지사인 극우파 정치인 이시하라 신타로도 마찬가지 관점을 취하고 있다.
그렇다면 탈원전을 주장하는 우파들은 어떨까? 이라는 만화를 그린 대표적인 국가주의자 고바야시 요시노리는 탈원전을 주장하며 동시에 핵무장도 주장한다. 앞에서 예로 든 다케다 쓰네야스는 원전이 핵무장에 유리하다는 기존 우파들의 견해를 논박하며 오히려 탈원전이 핵무장의 걸림돌이 되지 않음을 역설한다. 일본은 대량의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는 다량의 플루토늄을 확보하고 있으니 핵무기 개발에 필요한 원료에는 전혀 문제가 없으며, 따라서 핵무기 개발에는 원료를 제공해주는 원전이 아니라 기술력과 국가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즉 우파들의 탈원전론은 평화주의적 반핵론도 아니고 생태주의적 관점도 아니다. 복고주의적 내셔널리즘과 핵무장론의 변형이다. 따라서 우파들의 탈원전론은 엄밀하게 말하면 사상적 ‘전향’이 아니라 일본을 군사적으로 대국화하려는 전략에 맞춘 ‘전술’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파들의 ‘전술’을 전술적으로 이용해 원전 폐기의 움직임에 ‘검은 고양이와 하얀 고양이’를 모두 결집시키려는 탈원전을 주장하는 혁신 진영의 시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후쿠시마 이후, 일본 사회에 퍼진 실제의 위기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지진과 해일이 있었고 후지산 분화 가능성이 현실로 다가왔다는 분석도 나왔다. 소설과 영화에 등장한 까지는 아니더라도 후쿠시마 사고로 일본 사회가 벼랑 끝에 내몰렸다는 위기의식이 풍선처럼 부풀어져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탈원전을 주장하는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지사 같은 파시스트가 대중의 열광적인 인기를 얻어 일본 사회를 바꿀 수 있는 ‘백마 타고 온 초인’으로 추앙받는 현실을 목도하게 되면, 그리고 탈원전을 주장하며 핵무장을 소리치는 우파들의 소리를 듣게 되면, ‘닥치고 탈원전’이 갖는 또 다른 위험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일본의 ‘선택 아닌 선택’을 대하는 자세
원전 불감증에 걸려 후쿠시마를 ‘바다 건너 불’로만 보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는 ‘원전 없는 세상’에 돌입한 일본 사회의 ‘선택 아닌 선택’이 부럽게 보일 수도 있다. 분명히 그렇다. 원전의 ‘볼모’에서 헤어나지 못할 뿐 아니라 그 자각조차 없는 한국 사회에 일본의 선택이 주는 의미는 크다. 하지만 동시에 그 ‘선택 아닌 선택’에 가려진 복잡하고도 미묘한 내셔널리즘의 ‘재구성’을 보수 우파의 ‘전향’을 통해 읽어내는 것 또한 잊어서는 안 된다. 후쿠시마와 그 이후는 원전 문제이면서 동시에 일본 문제이기 때문이다.
권혁태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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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9일 한겨레 그림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