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석에는 외국인이 앉아 있었다. 피고인은 무슨 이유인지 합법적인 체류 자격을 잃은 사람이었다. 같은 동네에 사는 한국인 남성 몇 명이 이것을 빌미로 그의 아내를 성희롱했다. 항의하면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신고하겠다고 협박했다. 하루는 그 한국인 남성들이 술을 잔뜩 마시고 피고인의 집에까지 찾아와 문을 차며 죽여버리겠다는 등 고함을 질렀다. 그와 아내는 두려움에 떨며 집 안에서 숨죽이고 있었다. 한참 후 바깥이 조용해졌다. 다시 한참 후 정말로 그들이 돌아갔는지 나가보기로 했다. 이미 생명에 위협을 느꼈던 터라, 그는 집에 있던 식칼을 가슴에 품고 문 밖으로 나섰다. 골목을 조심스레 살피며 걷는데 갑자기 그 한국인 남성들이 나타나 그의 목을 조르고 폭행을 했다. 그는 저항했고, 그러다가 그들 중 한 명을 칼로 찌르게 되었다. 그가 구속되어 재판을 받게 된 사건의 전말이다.
견디거나 추방당하거나
성희롱을 당하고 협박과 모욕을 당해도 그는 법의 문을 두드릴 수 없었다. 법은 나라 밖으로 그들을 추방시킬 것이므로. 그래서 그는 이미 법으로부터 추방당한 상태였다. 법은, 그를 홀로 내버려두다가, 그가 ‘국민’에게 위해를 가한 순간 그를 불러주었다. 그는 대한민국이 내준 옷을 입고 대한민국이 제공한 통역서비스를 받으며 대한민국의 법 앞에 섰다. 평등하게. 몇 년 전 우연히 보게 된 이 재판 장면이 떠오른 것은, 지난 9월29일 있었던 헌법재판소의 결정 때문이다. 고용허가제를 통해 입국한 이주노동자가 직장을 세 번까지만 바꿀 수 있는 법 조항이 심판 대상이었다. 헌법재판관 한 명이 “외국인은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의 주체가 아니므로 권리를 침해당했다고 헌법재판소에 재판을 청구할 자격도 없다”는 의견을 냈다. 다행히 이것은 소수의견이었다. 헌법재판소는 “이주노동자도 직장 선택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주체”라고 인정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 결정의 본질은 다르지 않았다.
헌법재판소는 사업장 변경 가능 횟수 등은 “정책적으로 결정되어야 할 사항”이고, 이 법률조항이 사업장 변경 자체를 금지하는 것이 아니므로 위헌이 아니라고 결정했다. 그러나 이것은 횟수의 문제가 아니다. 사실 직장을 자주 바꾸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경력이 쌓이고 급여가 올라가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자신을 키우는 것은 모든 사람이 바라는 바다. 몇 년 안 되는 체류 기간에 몇 번 바꿀 수 있는지가 심판 대상이 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도저히 일할 수 없는 곳이 많기 때문이다. 반말, 욕설, 구타, 장시간 노동, 임금 체불, 산업재해 위험…. 이런 악조건을 견디거나 체류 자격을 잃고 추방당한다. 이주노동자가 누리는 자유란 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자유일 뿐이다.
법은 고상하게 경계를 가르지만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경계를 가른다. 얼마 전 식당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 트랜스젠더인 그녀는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가족들을 떠나 서울로 무작정 상경했다. 구할 수 있는 일이 달리 없어 지금까지 식당 일만 해왔다. 인터뷰 도중 ‘게으르고 약삭빠른’ 중국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식당 일을 구할 때 최대의 경쟁 상대인 중국인에 대한 본능적 적대가 묻어 있었다. 그 말이 결국 자신을 향해 돌아온다는 걸 그녀는 알고 있을까. ‘쉬지 말고 일해라’ ‘자신을 챙기기보다 식당을 더 걱정해라’. 그녀가 거쳐간 식당은 벌써 수십 개도 넘는다. 한국인이라 직장 선택의 자유를 한껏 누리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트랜스젠더를 고용하지 않으려는 직장에서 살아남으려고 휴일도 없이 일해야 하는 그녀는 진정 자유로울까.
법은 인권을 나눈다
차별은 언제나 가장 약한 사람들을 먼저 겨냥한다. 법은 그 자리에 벽을 치고 누군가를 밀어낸다. 그러나 기본권의 주체를 가를 때 법이 수행하는 것은 기본권 자체를 허무는 일이다.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인권의 원칙은 어느 누구도 그 무엇도 사람을 가를 권한을 갖지 않는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법이 누군가를 문 밖으로 밀어낼 때 공격당하는 자유와 평등은 바로 우리, 사람의 권리다.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미류의 노땡큐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애독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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