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미화원(청소노동자)으로 일하며 혼자 살던 말없는 한 남자가 죽었다. 그의 이름은 헨리 다거(Henry Darger). 누군가 그의 구석진 방에 들어가보니 파노라마처럼 가로로 길게 그려진 그림이 가득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이상한 꿈을 복구해내듯이, 소년· 소녀들의 환상적이고 섬뜩한 세계가 펼쳐졌다. 수수께끼투성이였던 헨리 다거의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일기에는 날씨에 관한 이야기가 참 많았다. 헨리의 관심사는 어쩌면 오직, 세계를 감싸는 날씨에 관한 것이었다. 우울한 기분과 상냥한 날씨 그리고 새까만 비와 하얀 안개가 눈앞에서 어떻게 펼쳐지는지 그는 자신만의 어휘로 관찰하고 또 적었다.
날씨에 관한 이야기를 날마다 쓸 수 있는 건 오늘의 날씨가 언제나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 있는 수많은 이야기와 그림 중에서 은연중에라도 날씨가 묘사되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날씨의 변화는 그리스 비극경연대회에 나간 코러스들의 목소리처럼 극적이기도 하고 때론 탐정소설처럼 쥐도 새도 모르게 은밀히 진행되어 사람 속을 태운다. 우리는 기후의 변화를 놓칠세라 날마다 ‘기상도’를 보며 산다. 기상캐스터가 읽어주는 ‘오늘의 날씨’부터 종이 신문, 포털 사이트, 전광판 등등 날씨를 나타내는 문자와 이미지는 어디에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만인을 위한 정보다.
‘일정한 시각의 날씨 상태를 숫자와 기호 등을 사용해 나타낸 지도’로 정의되는 기상도는 쉽고 분명하게 디자인된다. 1930년대 미국의 초기 그래픽디자인을 주도한 디자이너 레스터 비얼이 대중에게 정보를 ‘쉽게’ 전달하려고 포스터 디자인에 미친 듯이 화살표 기호를 사용했다. 우리가 보는 기상도에도 ‘화살표’가 차갑고 뜨거운 공기의 이동을 말한다. 화살표와 함께 세모, 동그라미, 사선, 등고선 등이 곳곳에 등장한다.
내가 지금 보는 기상도도 그렇다. 바람의 방향이 화살표로 떠 있고 블라디보스토크에는 회색 구름이, 평양 위엔 먹구름 아래로 비가 똑똑 떨어지는 기호 표시가 있다. 서울에는 구름 뒤로 노란 해가 반쯤 고개를 내민다. 어제의 날씨가 아닌 내일의 기후에 관심 있는 기상도는 변화무쌍한 날씨를 ‘명확’ ‘분명’하게 예측해 나타내야 한다는 점만으로도 표현의 불가능성과 싸우고 있다. 단순하게 상징화된 해님, 구름, 비 형상만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공식적으로 오늘과 내일의 날씨를 예측하고 있지만 형태는 미치광이의 댄스 동작처럼 산만하다. 동에서 서로 부는 바람, 등고선이 현란하게 펼쳐지고, 태풍 등의 이동 경로는 정신착란자의 그림처럼 좀체 그 의미를 읽기 어렵다. 이런 기상도에선 회오리가 불어올 것 같은 두려운 기분을 느낀다.
일기예보가 틀려 비를 맞아본 경험이 있나. 한반도에는 편서풍이 부니 안심하라는 예보가 뉴스를 탄다. 공기청정기와 마스크가 동나고 있단다.
현시원 독립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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