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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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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한 작은 점

등록 2012-08-14 19:27 수정 2020-05-03 04:26

2012년 8월6일 오후 2시32분(한국시각)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탐사로봇 ‘큐리오시티’(호기심)가 화성과 첫 키스를 했다. 화성까지 가느라 8개월간 5억6700만km를 이동했다. 앞으로 2년간 화성에 생명체가 있는지 탐사한단다. 화성에 뭔가 있기는 한 걸까. 외계 생명체에 대한 인류의 못 말리는 호기심을 칼 세이건은 이렇게 풀이했다. “우리가 지구 생명의 본질을 알려고 노력하고 외계 생물의 존재를 확인하려고 애쓰는 것은 실은 하나의 질문을 해결하기 위한 두 개의 방편이다. 그 질문은 바로 ‘우리는 과연 누구란 말인가?’이다.”(<코스모스>·사이언스북스)
외계 생명체를 만나야만 ‘우리가 누구인지’ 알 수 있는 건 아니다. 인류는 지구 생명체 가운데 유일하게 같은 종을 이유 없이 살해한다. 우주와 외계 생명체에 관심을 쏟느라 이웃 지구인의 삶에 무심할 수 있는 별종이다. 1969년 7월20일 닐 암스트롱이 인류 최초로 달 표면에 발을 내딛는 걸 보려고 남산 야외음악당에 10만여 명이 운집했다. 암스트롱이 “한 인간에게는 작은 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커다란 도약이다”라던 그 순간, 베트남의 하늘엔 미군이 퍼부은 포탄이 비처럼 쏟아졌다. 대량 학살은 우주적 스펙터클에 묻혔다.
런던올림픽과 화성의 ‘호기심’ 따위에 사람들의 이목이 쏠린 요즘도 세상은 여전히 미쳐 돌아간다. 12월 대선의 가장 유력한 후보라는 새누리당 박근혜 의원은 “아르바이트 최저 시급이 5천원은 넘지 않나요?”라고 태연하게 되묻고(올해 법정 최저임금은 4580원이다), MB는 한강·낙동강을 뒤덮은 유독성 남조류의 녹조 현상이 “폭염이 지속돼 발생하는 불가피한 현상”이란다(4대강 죽이기 탓이 아니라는 MB식 물타기다). 8월10일 MB의 뜬금없는 독도 방문도 일본의 반발과 국민의 반일 감정을 부추겨 자신의 옹색한 처지를 가리려는 무책임하고 위험한 돌려막기 쇼와 다름없다. 최저임금이 얼만지도 모르는 대통령 후보도, 불리하면 남 탓과 면피와 돌려막기로 일관하는 대통령도, 낯설지 않다. 슬픈 현실이다.
힘없고 가난한 다수의 삶에 무관심하며 성찰 불능의 멘털을 지닌 이런 사람들에게, 지구에서 64억km 거리의 보이저 1호가 1990년 2월14일 찍은 사진의 짙은 어둠 속 작은 점, 그러니까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을 보며 칼 세이건이 호소한 ‘따뜻하고 겸손한 책임감’은 안드로메다 저편의 헛소리겠지.
“여기가 우리의 고향이다. 이곳이 우리다. 지구는 우주라는 광활한 곳에 있는 너무나 작은 무대다. 승리와 영광이란 이름 아래, 이 작은 점의 극히 일부를 차지하려고 했던 역사 속의 수많은 정복자들이 보여준 피의 역사를 생각해보라. 이 작은 점의 한 모서리에 살던 사람들이, 거의 구분할 수 없는 다른 모서리에 살던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던 잔혹함을 생각해보라. …이 작은 점을 본다면 우리가 우주의 선택된 곳에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사는 이곳은 암흑 속 외로운 얼룩일 뿐이다. 이 광활한 어둠 속의 다른 어딘가에 우리를 구해줄 무언가가 과연 있을까. 우리의 작은 세계를 찍은 이 사진보다, 우리의 오만함을 쉽게 보여주는 것이 존재할까? 이 창백한 푸른 점보다, 우리가 아는 유일한 고향을 소중하게 다루고, 서로를 따뜻하게 대해야 한다는 책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있을까?”(<창백한 푸른 점>·사이언스북스)
폭염의 끝자락에서, 콘크리트와 녹조에 질식당하는 강과 뭇 생명을 비추는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우주를, 지구를, 사람을 다시 생각한다.
편집장 이제훈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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